'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아들의 한복을 만들다.

by 유니

최근 내 직장생활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회사가 내게 기대하는 역할이 바뀌고, 직무와 직책이 바뀌고, 회사의 대표이사도 바뀌었다.

변화란 늘 도전과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기에 그 속에서 난 나름 많이 성장했겠지만... 그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몸은 늘 경직되어 목과 허리의 통증이 떠나질 않고, 복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일도 많았다. 그리고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 늘었다.
고민해봤다. 내가 유난히 스트레스에 취약한걸까. 별것 아닌 일에도 괜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까. 내가 너무 예민한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광명이 오겠지, 내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그들에게도 나름의 사연이 있겠지... 하며 도 닦는 기분으로 아무리 마인드 컨트롤을 해봐도, 스트레스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살고 봐야겠기에,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해봤다. 물론 퇴근 후 나를 반기는 토끼같은 아들이 내겐 힐링 그 자체지만, 육아도 나름의 스트레스가 있기에 상처많은(!) 내 영혼을 위로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내겐 무엇보다, 회사 일을 잠시 잊고 몰두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아들의 한복을 내 손으로 만들겠다"고.

왜 하필 한복만들기냐고?
믿기 어려울진 모르지만, 어려서부터 난 꽤나 손재주가 있었다. 학창시절 미술 실기점수는 늘 만점에 가까웠고 바느질도 꽤 잘했다. 게다가 내가 한복을 좋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겐 사놓고 거의 쓰지 않은 재봉틀도 있었다.

우선 한복 만드는 법이 소개된 책부터 하나 샀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다...
한복 천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을 알아보고, 옷감 종류를 정하고, 색상을 정하고...

그러는 동안 또 한참이 지났다.

제법 시간이 걸려 주요 재료를 다 갖추었으나, 진도는 금방 나가지 않았다. 평일은 퇴근 후 아들 밥챙겨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돌아서면 재울 시간이었다. 야근을 한 날 밤늦게, 아들 재우느라 일찍 잠든 다음날 새벽에 잠깐씩 시간을 투자했다. 주말이 되어도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마트를 가거나 하느라 외출을 한두 번 하고 나면 남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옷 만들기를 만만히 봤으나, 한복 만드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막상 시작하고 안 사실인데... 여자아이 한복보다 남자아이 한복 만드는 게 더 어렵더라.
한복천이 얇고 미끄러운데다 재봉질이 익숙치 않다보니 몇번을 다시 뜯고 새로 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책만 보고 하려니 녹록치 않았다. 남편은 옆에서, 한복 잘못 만들면 빨고 나서 다 뒤틀린다며, 얄밉게 한마디 거든다.
그렇게 바지를 만들고, 저고리를 만들고, 깃을 달고, 고름을 달았다.


"아들, 얼마나 큰지 한 번 입어보자~"
이런, 싫단다. -_-
겨우 얼르고 구슬려 겨우 저고리만 입혔더니, 아프단다. -_-

추석때도 시원하게 입히려고 겉감은 께끼 원단을 하고 까슬까슬한 안감을 썼더니 예민하신 아드님 살갗엔 거슬리는 모양이다.
어쨌든, 다 만들고 보자 싶었다. 매듭단추를 만들어 바지 양쪽으로 달고, 저고리에 스냅단추를 달고, 바지 고무줄을 끼우고.. 드디어, 완성했다.



나름, 뿌듯했다.
혹자는 말했다. 스트레스 해소를 하려고 한복 만들다가 되려 스트레스를 더 받는 거 아니냐고.

물론, 가끔 그런 순간도 있었다. 내가 미쳤지, 왜 이걸 시작해가지고 이 고생인가..

하지만 잠을 줄여가며 한복을 만드는 그 순간은 나름 행복했고,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복이 완성된 후 돌아보니, 한복을 만들기 시작할 때 내가 짊어지고 있던 스트레스 정도는, 이젠 그닥 큰 스트레스라 여겨지지 않을만큼 한 뼘쯤은 자라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그 동안 더 크고 센 놈들이 찾아와서 내성이 생긴 탓도 있겠지만.


자.. 이제 완성된 한복을 추석에 어떻게 구슬려서 아들에게 입힌담. 걱정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