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냄새

그럼, 안녕

by 엽서시

1.

“너 발에서 이상한 냄새나.”

그녀가 코를 씰룩였다. 일부러 찌푸린 눈살. 미간의 주름. 킁킁, 과장된 숨소리.

“블만이 있으면 말을 해. 헛소리 하지 말고.”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끔쩍했는지 발이 오므라들었다.

“아니, 그런 냄새는 아니야.”

그녀가 다시 코를 과장되게 움직였다.

“이건 거북이 냄새야.”

그녀가 결론을 내렸다.

“뭐?”

그녀의 결론은 이런 식이다. 항상 의문이 꼬리처럼 따라 나왔다. 아니, 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대관절 거북이 냄새라는 것은 또 어떤 냄새인가.

“아니, 불만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헛소리를 구체적으로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나는 예의바르게 대꾸했다. 그녀의 불평이 허구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발가락들이 내 자신감처럼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진짠데.”

그녀가 다시 툴툴거렸다. 나는 대꾸없이 옆에 쌓여있는 만화책을 집어 들었다. 하품이 나왔다. 그래서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눈물이 그렁해진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야, 나 눈물 나와.”

“어디 봐.”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하다.

“야, 눈물은 무슨, 눈곱이나 떼.”

허둥지둥, 나는 고개를 돌려 눈을 비비다가, 진짜야? 의심 섞인 말로 고개를 돌렸다. 킥킥, 그녀는 웃었다. 나도 웃고 말았다. 비스듬하게 쌓여있었던 만화책이 팔꿈치에 부딪혀 무너졌다. 그것을 다시 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 눈에는 아직 눈물기와 웃음기가 어려 있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 눈이 시릴 만큼. 그러고 난 후에야 나는 시린 눈으로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2.

지금도 나는 종종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 때의 기억은 따뜻한 저녁밥처럼, 내 일부가 되어 몸속 어딘가를 기어 다니다가 문득 나타난다. 그럴 때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순간을 천천히 곱씹는다. 기억은 참으로 편한 것이어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재생할 수도 있다. 나는 읽은 만화를 거듭하여 읽는 아이처럼 그 기억을 떠올리고, 떠올리고, 다시 떠올린다.

나는 그 순간을 따뜻한 저녁밥처럼 여겼다. 매일 매일 다시 마주 할 순간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든 순간이 그러하듯 그 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기억은 아직 내게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그 기억에 감사한다.

우리가, 나와 그녀가 보낸 그 어떤 다른 기억들보, 계획하고 준비한, 그 어떤 특별한 순간보다, 나를 울리고 슬프게 하는 기억은 그런 기억이었다. 특별하지 않아, 평범하고 작은 기억. 어떤 거름망에도 걸리지 않고, 몸속 깊숙이 내려앉은 기억. 그리고 문득 문득 떠오르는.

나는 거북이가 되었다. 정말 거북이가 되어버렸다. 나에게만 떨어진 특별한 저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이런 저주륻 하나 둘 쯤 달고 다니니까. 어느 누구에게는 천식이, 어느 누구에게는 교통사고가, 퇴사가, 주가 폭락이 문득 찾아든다. 이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의 순간은 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거북이가 되었다. 어느 날 내 피부는 파충류의 그것이 되었고, 내 혀는 오그라들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거북이의 혀가 되어 버렸다. 그녀가 긴 검지로 톡톡, 두드리며, ‘넌 아랫입술 진짜 독특해.’하던 입술은 손톱처럼 맨들맨들한리가 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나 변화는 서서히 그리고 빠르고 분명다. 우리가 채 그것을 눈치채고 준비하기 전에, 이미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와 전화를 하던 중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긴 침묵이 있었다. 몇 번의 한숨이 있었다.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치지 않는 딸꾹질 소리처럼 울음 소리가 침묵을 메웠다.

그 소리는 침묵보다도 무거운 것이었다.

리고 마침내 나는 완전한 거북이가 되었다. 내가 한 마리의 거북이가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나를 올려놓고 거울 앞에 데려갔다. 나는 심한 근시여서, 겨우, 내 자신을 알아볼 수 있었다. 거울 속에는 작은 거북이가 있었다.

아마도 내 몸에서는 분명한 거북이 냄새가 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냄새를 맡지 못했다.

문득, 그 냄새가 도대체 어떤 냄새인지 궁금해졌다. 그녀가 처음 거북이 냄새가 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냄새를 물어봤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 냄새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치솟는 것 같았고,

같았지만,

흐르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거북이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울 수 없었다.


3.

그녀가 먹이를 준다. 가끔씩.

그녀의 긴 손가락 끝에서 떨어지는 먹이를 나는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고, 부리로 문다.

가끔은 그녀가 나를 오래도록, 들여 보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모른 척한다. 가끔은 그녀가 내게 말을 건다. 물이 은은하게 떨린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물이 아닌, 그녀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내 귓바퀴에 담겨 머릿속을 가득 울리던 것을 떠올린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공기가 축축하다. 그런 날이면,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집어넣는다. 가끔은 그녀가 내게 소리를 지른다. 물이 떨린다. 나는 모른 척한다. 내 머릿속까지 거북이 되어버린 것처럼.

나는 느리게, 화석처럼, 고개를 흔들고, 몸을 돌린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니, 그녀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씩 그녀는 나에게 먹이를 주고, 가끔은 나를 잊은 것 같을 때도 있지만, 또 때때로 나를 들여다본다. 이런 식이다. 그녀는 이렇게 거북이를 기르고 있다.


4.

“미안해”

울먹, 인다. 아니면 울, 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벌써.

그녀가 흐느끼는 소리가, 내 심장 소리 같다. 그녀의 흔들림에 내 몸이 함께 흔들린다. 느리게, 빠르게, 그리고 다시 느리게.

괜찮아, 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말할 수 없다. 머리에 가만히 손을 얹고 싶다. 그녀의 떨림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 떨림을 알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나는 그녀와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 나는 거북이니까.

“이제 너무 힘들어.”

알아. 그리고 고마워. 지금까지. 날 길러줘서.

“너무 힘들어.”

미안해. 나도, 알고 있었어. 그런데 말하지 못했어. 말할 수 있을 때도, 그러지 않았고. 이제는, 정말 말하지, 못하게 되었구나.

나를 담은 통이 들린다. 공중에서 움직인다. 물이 출렁거린다. 어색하고 위험한 출렁임이다. 나는 머리와 팔다리를 움츠린다. 눈을 감는다. 모든 것이 잠잠해질 때까지.

나는 나를 감싸고 있는 잠잠한 온기를 느낀다. 그녀의 손바닥이 천천히 내려간다. 출렁임. 주둥이에 닿는 차가움. 아, 이건 물이다. 눈을 떴다.

눈 앞에는 망망한 물이 펼쳐져 있다. 그 물이 너무도 거대한 것이어서, 나는 그것이 강이라는 것을 머릿속으로만 겨우 이해한다. 그리고 또 다른 사실을 이해하고 만다.

어쩌면 우리가 거북이를 기른다는 것이 그런 것인지 모른다. 누구나 한 두 마리쯤 거북이를 기르고, 또 한 두 마리의 거북이를 떠나보내거나, 아니면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게 또 다른 거북이를 만나게 될지 모른다. 아니다. 이제 그녀에게 앞으로 그 어떤 거북이도 없을지 모른다. 아니, 없을 것이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정말로, 떠날 시간이다. 뒷다리를 뻗는다. 그녀의 손바닥을 천천히 민다. 문득 내 뒷발의 발톱이 떠오른다. 미안, 나는 마지막까지, 널 따갑게 하는구나. 모른 척 나는 힘을 주어 다리를 뻗는다, 이게 오히려 더 나을 거야.

물에 머리를 넣는다. 몸이 가라앉는다.

참, 막막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느 정도는 후련하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이 떠오른다. 다리를 뻗는다. 물을 젓는다. 힘차게, 물을 젓는다. 컴컴한 물 사이로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다. 아니다. 분명하게, 무언가가 보인다. 그 둥근 빛덩이 같은 것을 나는 제멋대로, 그녀의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그 얼굴을 향해 나는 다시 힘차게 물을 젓는다.

나를 놓아 준 그녀와 멀어질수록, 눈앞의 그녀는 또렷해진다. 이제 표정까지 보이는 것 같다. 그래, 이제야 그녀가 웃고 있다.


5.

갑자기 그녀는 코를 씰룩인다. 눈살을 찌푸리다가, 킁킁, 소리를 낸다. 그러더니 결론을 내린다.

이건 거북이 냄새야.

그게 뭐야, 그가 웃는다.

그게 어떤 냄샌데? 그가 묻는다.

그녀가 답한다.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다. 거북이 냄새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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