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녀

유신의 사랑에 대하여

by 엽서시

천관녀(天官女)는 이름이 천관일 뿐이요, 천한 기생의 여종이었다. 그 보다 더 천한 여자는 없을 것이라 우리는 믿었다. 주인들이 기방에서 기생들과 함께 어울려 법석거리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뽐내기 바빴다. 대우리끼리 다투고 노는 서열은 우리 주인들의 옷 색깔에 따라 나뉘었다.

여느 때나 그러하듯 기방은 손님만큼이나 소문이 오가는 곳이다. 우리는 소문을 듣고 옮기기에 바빴다. 또한 서로의 집에서 하인들끼리 떠들고 속닥거리는 것을 엿들은 것을 다시 옮겼다. 때로는 거짓부렁을 일삼는 녀석도 있었고, 때로는 고지식하여 곧이곧대로 듣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녀석도 있었다. 그러나 대저 우리의 일상이란 그러한 것이었다.

그는 우리와 달랐다. 그는 군마(軍馬)였다.

내가 여태까지 본 군마는 단 한 마리뿐이었다. 과하마(果下馬)라고 불리는 말이었다. 우리는 그 말의 보잘것없음을 비웃었다. 그 말은 우리와 달리 작았으며 또 늙었다. 우리는 공연히 그 말을 뒷발로 차기도 하고 슬근슬근 이빨로 물기도 하며 괴롭혔다. 그 노마(老馬)는 정말 자신이 포로라도 되는 양 그러한 괴롭힘을 인내했다.

그 말은 어느 장수가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이기고 노획한 말이었다. 그는 하등 도움 되지 않는 그 늙은 말의 고삐를 기생집 종에게 건네며 온갖 거드름을 부렸다. 기생의 아양과 주변의 아첨 속에서 그날 장수는 머리 꼭대기까지 취해 돌아갔다.

그 말은 천박한 일을 도맡았다. 우리의 괴롭힘과 조롱 속에서 말은 야위어갔다. 결국 어느 겨울 그 말은 머리를 앞으로 푹 고꾸라뜨린 채 쓰러져 죽었다. 여느 말이 그러하듯, 그 노마는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자신의 고통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을 때 그저 그것을 알고 쓰러져 죽었을 뿐이다.

그 장수 역시 그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백제와의 일전에서 목이 베여 장대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천마(天馬)를 보게 된 것은 그 겨울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그 역시 군마였다. 역시 노쇠한 군마였으나 과하마처럼 작은 키는 아니었다. 다만 그는 우리의 일을 잘 알지 못하였으며 늘 놀라 허둥거리는 모습이였다.

그는 나에게 처음 말을 걸었다는 이유로 다른 말들의 비난을 받았다.

우리는 서로를 서로의 주인의 골품에 따라 입는 관복의 색으로 불렀다. 나의 주인은 자줏빛 옷을 입었다. 그래서 나의 이름은 자마(紫馬)였다. 마구간에 자마는 적었으나, 녹마(綠馬)와 청마(靑馬)는 많았으며 황마(黃馬)는 적었다.

천마의 주인은 미천한 출신이었고 다만 낭도에 불과했기에 우리는 그를 업신여겼다. 다만 나는 그의 솔직한 성격이 싫지 않았다. 나는 그를 노형으로 대접했다. 그는 전쟁에서 뼈를 키운 말이었다.

나는 전쟁을 알지 못한다. 말에게 전쟁은 주인을 싣고 빠르게 달려 창과 칼의 방진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말의 천성은 그렇지 않다. 말의 천성은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비껴가거나 뜀박질을 멈추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달려야 했다. 창과 칼의 방진이 자신과 주인의 기세에 눌려 수그러들기를 바라며 뛰어들었다. 그것은 자살과 다름없는 일이고, 그렇기에 그 늙은 군마의 몸에서는 늘 비릿한 죽음의 냄새가 감돌았다.

“나의 주인의 이름은 유신으로,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수로왕의 9대손이자 가야 땅의 마지막 왕인 구해라는 이요, 그의 할아버지는 관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무력이라는 장군이오. 내 주인의 아버지 역시 백제와 맞서 싸운 김서현이라는 장수요, 그의 어미는 만명부인인데 20개월을 잉태한 끝에 유신을 낳았다 들었소.”

늙은 말은 작은 목소리로 제 주인의 일을 읊조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꼭 딴죽거리기 좋아하는 말들이 있어,

“20개월? 살면서 20개월을 잉태하여 나온 인간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누만.”

“족보는 개도 족보가 있는 법이지. 왕의 후손이라 해봐야 망국 가야의 후손아닌가.”

“그리 잘나신 양반이라 기생집에서 기생은 만나지 못하고 여종을 만나는 모양이지.”

하고 이죽거리면 그는 입을 다물곤 했다.

“수행도중에 천관(天官)의 도움을 받아 무예를 닦았으니 그 용맹함이 감히 다른 이가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어느 날은 눈시울이 벌겋게 되어 제 주인을 띄우기도 했다.

천마가 회상하는 주인은 범처럼 강하고 날랜 이였다. 낭도들을 이끌고 백제병들의 방진을 뚫고 들어가 깃발을 손수 빼앗아오기는 예사요, 화살이 빗발치는 속을 뚫고 적 지휘관과 칼로 다투기도 예삿일이었다.

한번은 고구려 기병들과 말 위에서 칼을 주고받은 일이 있었는데 싸움이 끝나고 보니 천마의 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고 했다. 칼이 조금만 더 깊었으면 천마는 죽어 나동그라졌을 것이요, 그렇다면 유신의 목도 몸에 붙어있지는 못했으리라. 국경을 넘어 간신히 도망온 유신은 땀에 젖은 채 천마를 끌어안고 울었다고 했다.

네가 나를 구했다. 네가 나를 구했어.

유신은 기방에서 천관이라는 이름의 여종과 정을 통했다. 앞서 말하였듯, 천관녀는 이름이 거창하고 뜻이 높은 천관일 뿐이요, 천한 기생의 여종이었다,

“세상에 가장 천한 여자가 유곽의 기생인데 그 시중을 드는 것이 천관이니, 그 보다 더 천한 여자는 없을 것이네.”

우리는 서로 뽐내며 천마를 조롱하기 바빴다. 천마는 이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주인은 천관의 이름에 빚이 있어 저럴 뿐이오.”

그러나 다른 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철이 지남철에 끌리듯, 천한 피는 천한 피에 끌리는 법이지.”

“신라의 여종과 가야의 왕족이라면 딱 어울리는 한 쌍이 아닌가.”

“내 저 둘이 혼례를 치르는 것을 보고 싶지만 우리 주인이 그런 예삿일에 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여 걱정일세.”

천마는 제 주인의 선택이 어느 다른 이유에서 온 것으로 짐작했다. 핏줄에 대한 조롱은 날이 갈수록 짓궂었지만 천마는 참고 인내했다.

참말을 한다면, 나는 이것만큼은 천마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마굿간을 보아도 자마는 자마와 어울리며, 황마는 황마와 어울린다. 나는 버려진 왕족의 후손과 유곽의 종은 같은 병을 앓는 환자처럼 서로를 가엾게 여겼으리라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천마는 다르게 생각했다. 나는 천마를 이해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주인이 여종과 만나는 것을 탐탁찮게 여겼을 것이다. 누군들 그러하랴.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라오.”

어느 날이었다. 천마가 중얼거렸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 다소 기쁜 얼굴이었다.

“개가 똥을 끊는 것을 먼저 보겠소.”

“며칠이나 갈까.”

천마는 빈정거리는 말을 듣지 않았다. 오롯이 나를 보고 푸근히 웃는 눈으로 그간의 정리를 고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천마에게서 전장의 일을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서운한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그에게 화랑에게 화랑의 법도가 있듯, 군마에게는 군마의 일이 있는 법이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추어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의 일이었다. 나의 주인과, 여럿의 주인이 한데 모여 흥청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기방 앞 마굿간에 묶여 젖은 풀과 콩을 씹으며 밤을 지샜다. 밤이 깊어지며 기방의 음악소리가 멎어갔다. 주인은 기생과 술에 젖어 어느 방에서일지 쓰러진 몸을 뉘이고 있을 것이었다.

“자마, 저것을 보시게.”

누군가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길을 가리켰다.

어느 말이 술에 죽이 된 주인을 싣고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말은 천마요, 주인은 유신이었다. 키득거리는 비웃음이 번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주인은 물론이거니와, 나로서도 기방을 끊는 젊은이를 아직 보지 못한 탓이었다.

유신이 천관의 이름을 불렀다. 성나고 슬픈 목소리였다. 한참을 울부짖자 기방의 문이 열리고 천관이 뛰쳐나왔다. 천관은 흐느끼고 있었다. 유신이 천관을 끌어안았다. 한참을 그 귀에 무어라 속삭였다. 천관은 여전히 흐느꼈다. 유신은 천관의 볼에 젖은 눈물을 핥았다. 두 젊고 천한 것이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것은 서로 다른 나무가 둥치를 어우르며 한 나무가 되어 자라는 모습과 같았다.

천마가 난동을 피우며 달려든 것은 그때였다.

다른 말들은 천마가 유신에게 달려들었다고 했으나 나는 보았다. 천마는 유신을 뛰어 넘어 천관을 향했다.

천마는 본디 부러진 소나무처럼 언제 주저앉아 쓰러져 죽어도 아쉽지 않은 늙은 말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천마는 말이 아니라 마치 범처럼 날랬다. 과연 자신을 향해 빽빽이 들어찬 창과 칼의 방진을 향해 몸을 날리는 군마의 모습이었다. 천마의 앞발이 몽치처럼 천관의 얼굴을 향해 달겨 들었다.

그 쇳덩이 같은 것이 얼굴에 닿는 순간 천관의 얼굴과 뼈와 이빨이 한데 섞여 부서졌을 것이다. 그러나 유신의 칼이 더 빨랐다.

나는 그저 푸른빛과 같은 것이 마치 선처럼 튀어나와 천마의 앞발과 가슴팍을 긋고 올라가더니 목을 내리치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 빛은 도로 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천마는 엉망이 된 채 죽었다. 뎅겅 잘려나간 앞발은 볼썽사나운 철퇴처럼 나동그라졌다. 잘라진 가슴팍과 목 줄기에서 피거품이 일었다. 천관도 유신도 순간 얼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목이 잘려나간 천마는 유신을 눈에 담았다. 세상이 유신 하나 뿐인 것처럼 유신을 보았고 그리고나서 죽었다.

유신은 울었다. 유신은 칼을 내던지고 짐승처럼 울부짖더니 꿇어앉아 천마의 시체를 안았다. 잘린 혈관과 뭉개진 살을 안으며 유신은 짐승처럼 울었다. 천관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도로 기방으로 들어갔다. 유신은 해가 뜰 무렵 종이 나와 유신을 데려갈 때까지 그 날 밤을 꼬박 세워가며 울었다.

나는 다음날 기생집에서 여종 하나가 목을 매달아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천관이었다. 기방에서는 그 일이 분명 유신과 관련 있을 것이라 말하며 유신에게 여종의 값을 물어내라 했다. 그러나 유신은 천관의 값을 물지 않았다.

기방에서는 젊은 천관과 유신을 엮는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따라 부르게 했다. 유신이 그 노래를 듣고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유신은 다시 기방에 오지 않았다. 그는 훗날 장수가 되어 제 주인을 신라의 왕으로 모셨으며, 전장에 나아가 백제와 왜, 고구려와 당을 토벌했다.

나는 늙어 죽었다. 천운이었다. 나와 함께 기생집 앞에서 시시덕거리던 동료들 중 늙어 죽은 말은 많지 않았다. 고랑이나 구덩이에 다리가 부러져 죽는 것은 말에게 흔한 죽음이다. 나와 함께 늙은 말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목을 따인 채 순장되었다.

그러나 나는 천행으로 늙고 늙은 말이 되어, 어느 봄날 눈을 감았다. 나는 환생을 거부하고 구천을 떠돌며 나의 동료들을 애도했다.
어느 날 무른 장마에 큰 전쟁이 있었다. 많은 말들이 죽어 흐느끼는 소리가 이 곳 경주까지 들렸다. 듣기에는 산과 물을 건너고도 머나먼 이 땅의 끝 황산이라는 벌에서 싸움이 있었고, 기벌이라는 항구에서 또 큰 싸움이 있다고 했다. 백제의 낫과 창이 말의 다리와 힘줄을 끊었고, 신라의 칼과 화살이 말의 목줄기를 뜯었다고 했다. 백제를 돕기 위해 온 왜의 무사와 말들이 수없이 쓰러져 게의 먹이가 되었다,

이어 고구려가 쓰러졌고, 일만의 당나라 군사는 제 땅을 밟지 못하고 죽어 거름이 되었다. 또한 수많은 그들의 말도 함께 쓰러져 썩은 거름이 되었다.

유신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대도 아는 것처럼 유신은 예순하나의 나이가 되어서야 결혼을 했다. 유신이 왕의 여동생과 혼인을 하여 낳은 첫아이의 이름은 원술이었는데 유신은 제 아들이 전장에서 실수를 한 것을 두고 왕에게 목을 벨 것을 청했다. 왕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원술은 울며 집을 떠나 산야를 헤매다 죽었다.

유신은 일흔 아홉의 나이에 죽었다. 유신이 죽기 전 혜성이 땅에 떨어졌다. 왕이 걱정하며 유신을 방문하자 유신은 혜성의 불운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라고 말했다. 유신은 죽기 전 왕에게 일의 시작부터 못하는 것은 어려우나 일의 끝까지 달하는 것 역시 어렵다고 당부하고 죽었다.

유신은 훗날 죽어 흥무대왕에 올랐고 유신의 묘는 릉이 되었다. 신의 무덤은 시체를 묻지 않은 거짓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장군이 죽던 날 장군의 시체가 온데 간데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장군이 죽던 날, 혜성 같은 것이 장군의 집 안뜰에서 솟아올랐다는 것이다.

내가 천마를 천마라 부르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짐승의 눈은 사람보다 어리석어 혼과 혼이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유신의 집에서 혜성이 치솟는 날 나는 그의 혼을 보았다. 그 모습은 말을 탄 젊은 화랑의 모습이었다.

말의 모습은 늙고 주린 모습이 아니었다. 그 길길이 날뛰던 날보다도 오히려 더욱 젊고 생생한 모습이었다. 두 혼 모두 다 푸른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다만 이상한 것은 화랑이 하늘을 향해 기꺼이 치솟아오르는 것이 내가 듣던 데로 적병을 향해 용맹하게 창을 휘두르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애인을 만나러 가는 모습이었다. 그 것은 괴이하고도 후련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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