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위례성 한성부
19. 위례성 한성부
태자 문주가 신라의 구원병 일만 명과 함께 위례성에 도달했을 때, 전쟁은 이미 끝나 있었다. 아차산성 부근에서 누군가가 개루의 시신을 찾았다. 문주는 달려가 푸르뎅뎅하게 부풀어 오른 개루의 머리를 안고 울었다. 개루의 머리는 바둑알처럼 땅에 묵묵히 놓여있었다는 것이 그 병사의 말이었다. 문주는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고구려의 병사들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이미 위례성 안에 성한 건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공사 중이었던 새 궁궐터를 거닐던 문주는 옷깃을 씹으며 뇌까렸다.
다시 위례에 도읍을 트는 일은 없으리라.
신라의 구원병들은 하릴없이, 북쪽 하늘의 묽은 흙먼지를 바라보았다. 멀리서 고구려 병사들이 물러가는 움직임이었다.
記
1.
아랑이 아라리 아리로로
도미이 아랑을 어부디여
한슈를 건너 애오개를 넘어
아랑리 아라리 아랑리로로
아랑이 도미를 끌고디여
한슈를 건너 애오개를 넘어
아루로 아리랑 아랑리 아리로로
2.
모월 모일 왕이 듣기를 달농산 근처에 한 맹인과 아내가 노래를 부르고 밥을 얻으며 살더라 하였다. 왕이 짐작하는 바가 있어 직접 사람을 보내어 그 맹인을 보기 바랐다. 그러나 이미 맹인과 아내는 달농산 근처에서 족적을 감춘 후였다. 왕이 노하여 군을 풀어 (달농산 일대를)샅샅이 수소문하였으나 (맹인과 그 아내의)자취를 알 바 없었다.
《유기(留記)》
3.
(맹인 도미의 처 아랑이)배 하나가 이르러 타고 천성도에 가서 그 남편을 만나 고구려(高句麗)로 가 살았다. 그들 부부가 고구려의 산산(蒜山) 밑에 이르렀다. 고구려인들이 그들 부부를 불쌍히 여겨 옷과 음식을 주었다. 그들은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