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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Mar 15. 2020

직장 내 괴롭힘. 제가 해결해 드립니다.

[성장판 서평단 3기]이노우에 유미코, <해러스먼트 게임>, 위즈덤하우스

<해러스먼트 게임>은 직장 내 괴롭힘을 소재로 회사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그리고 갈등의 해소를 통한 서로 간의 이해를 다룬 일본 소설입니다. <하얀 거탑>의 각본가인 이노우에 유미코의 장편 소설입니다. 솔직히 <하얀 거탑>을 보지 못했기에 이 소개 문구에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책날개를 보니 수많은 드라마의 각본을 맡았고, 영화도 여러 작품이 있었습니다. 수상 이력도 화려해 '각본가로서의 입지는 탄탄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해러스먼트 게임>도 TV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더군요.


책날개를 보며 높아진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드라마의 원작이라 그런지 술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주로 읽었는데, 흥미로운 전개에 몰입해서 읽곤 했습니다. 몇 번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기도 했네요. 인물 간의 관계가 적당히 얽혀 있었고 인물들에게 전형적인 모습도 보이지만 적당히 입체적인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구조도 놀랄만한 반전이 있다거나, 치밀하게 사건을 구성했다기보다는 전개가 빠르고 적당히 다음 사건을 예측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 편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예측에서 벗어나는 전개가 벌어지는 통에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 버리곤 했습니다.


이 책에는 주요 인물이 4명 나옵니다.


아키스. 50대의 부장급 인물로 지방 슈퍼의 점주로 있다가 컴플라이언스 실장으로 발탁되어 본사로 올라오게 됩니다. 예전에는 상품개발부의 잘 나가는 부장이었는데 직장 내 괴롭힘(파워해러스먼트, 파와하라-해러스먼트를 일본말로 하라, 파워를 파와로... 그래서 파와하라. 젠더하라, 카스하라 뭐.. 여러 가지 하라가 있더군요-)으로 좌천된 사람입니다.


와키타. 상무. 아키스와 각을 세우는 임원입니다. 회장을 제외하고는 대적할 사람이 없는 회사의 이인자죠. 일도 잘하고, 젠틀하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으로 나옵니다. 예전 아키스가 상품개발부장이던 시절 부하 직원이었다는군요. 벌써 재밌죠?


미나코. 컴플라이언스실의 단 하나뿐인 직원. 아키스를 도와 여러 가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해결하며 커다란 줄기의 사건에서도 조력자의 역할을 합니다.


마루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일본 최고의 슈퍼 체인 마루오 슈퍼의 3대 회장. 전임 회장보다 인성, 역량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와키타 상무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아키스, 와키다, 미나코, 마루오. 이 4명을 중심으로 큰 사건이 흘러가고,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가 해결되어 가면서 큰 사건도 조금씩 베일을 벗게 됩니다.


아키스는 본사의 상품개발부의 부장이었죠. 핵심부서였고, 평판도 좋았습니다. 일 잘하고, 성격 좋고, 리더십도 있고, 상사가 좋아하고, 부하직원이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하 직원에게 '더 열심히 하라'라고 강요했다는 '파와하라(권위에 의한 괴롭힘)' 누명을 쓰고 지방 점포장으로 발령이 납니다. 이 누명을 씌운 사람은 와키타였습니다. 이후 와키타는 승승장구해서 상무까지 승진을 합니다.


아키스는 본사로 들어와 마루오 회장을 만나죠. 마루오 사장은 아키스에게 비밀 지령을 내립니다. 마루오 회장은 비밀 지령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아키스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컴플라이언스 실장으로 인사발령을 냅니다. 그 비밀 지령을 받고 아키스는 힘들어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그 지령을 수행하려 합니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미나코는 20대의 열정 넘치는 직장인입니다. 컴플라이언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키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밀레니얼? 신세대? 90년생? X세대? 아무튼 기존 흐름에 단순히 순응하지 않는 직장인입니다.


여기서 스토리를 풀어놓으면 안 되겠죠? 배경 정도만 말씀드렸습니다.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들은 구매하시거나 빌려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정리된 줄거리를 보는 것보다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해러스먼트 게임>은 저에게 여러 인물을 소개해 주었고, 흥미 있는 이야기를 선물했습니다. 인물들의 성격과 업무 스타일, 그리고 이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저의 회사생활을 2가지 측면에서 다시 바라보게 했습니다.


첫 번째, 

난 어떤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키스는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인물로 나옵니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건 아니지만 순발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성향이 있습니다. 와키타는 분석적인 사람입니다. 사전 준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기 관리도 철저하고요. 순발력보다는 준비의 힘을 믿습니다. 미나코는 자신의 의견을 상사에게 당당하게 개진합니다. 틀릴 때도 있고, 매끄럽지 않을 때도 있지만 상사를 믿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죠.


12년 간 저는 그저 시키는 일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고, 쉬운 일만 원하며 회사를 다녔습니다. 아키스처럼 중요한 일을 판단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고 책임지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하지도 않았고요. 와키타처럼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고 고객을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미나코처럼 자신의 의견을 말하긴커녕 입 다물고 상사의 눈치만 살피곤 했습니다.


그러다 육아휴직을 하고 복귀하면서 상사의 인정을 버렸습니다.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말끔히 버려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력 중이에요. 회사를 위해 일 하지 않고 나를 위해 일합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일을 찾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견도 많아지고 문제 해결 능력도 길러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지는 제 모습을 이 책을 보며 다시금 깨닫습니다.


두 번째,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약 12년간의 회사생활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다할 모욕이나 폭언을 당해본 일도 없고, 따돌림도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목격해 본 적도 없습니다. 상식선에서 서로 이해하고 자기가 챙길 것을 챙기고 줄 수 있는 것은 주면서 회사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직장 내 괴롭힘에 조금 무감각했던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인 심부름을 했던 것이 생각나더군요. 그때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해 보니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상사의 이삿짐을 날랐던 적도 있었네요. 임원의 사무실을 옮길 때는 다른 일을 못할 정도로 사무실 정리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우개와 펜의 위치까지 똑같이 맞춰야만 했습니다. '더 열심히 일해라', '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은 예사로 들었고 들렸던 것 같습니다. 얼굴만 봐도 불편한 데 자꾸 편하게 대하라는 상사도 있었고,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왔을 때는 '너 휴직만 아니었어도 승진할 수 있는 건데...'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책을 읽고 보니 모두 파와하라, 직장 내 괴롭힘의 순간들이었더군요. 순간 욱하고 올라오는 화와 짜증을 참고 다시 일했고, 부딪힐 수 없이 강한 상대였기에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일상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두 그렇게 사는데 나라고 별 수 있겠냐고 생각했죠. 항상 그냥 넘어갔던 일이었습니다. 이젠 그냥 넘어가기 힘들 것 같은데... 걱정입니다. <해러스먼트게임>을 읽은 부작용일까요? 아니면 긍정적인 영향일까요?


이 책이 내 직장생활의 보약이 될지, 독약이 될지 모르겠지만 뭔 약이든 일단 먹었다는 게 중요한 거겠죠. 어제와는 다른 삶이 오늘 펼쳐질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렙니다. 그래서 제가 책을, 그것도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은 성장판 서평단 3기 활동으로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위의 서평은 전적으로 제 주관적인 감상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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