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날아간 새

by 성실한 베짱이
charles-postiaux-frFcQptMhMg-unsplash.jpg


내 옆에는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어요.

목마를 때 마실 물도 채워져 있었죠.

자고 일어나면 다시 가득 차 있었죠.

나는 행복했어요.


가끔씩 귀여운 아이가 찾아와 나에게 말을 걸었죠.

나를 꺼내 어깨에 올려놓기도 하고요.

내가 모이를 먹는 모습도 지켜봤어요.

아이의 눈에서 사랑이 느껴졌죠.


fabrizio-conti-k-c_KmI6b0w-unsplash.jpg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떠나라네요.

더 이상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군요.

이제 멀리 날아가라고, 친구와 함께 살라고.

난 내 친구가 그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난 조심스럽게 날개 짓을 해 봤어요.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죠.

사실 힘껏 날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힘들어 자꾸 땅으로 내려오게 되더군요.


다행히 곧 날개 짓에 익숙해졌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힘껏 날개 짓을 했어요.

기분이 너무 좋더군요.

날개 마디마디가 시원한 느낌이었어요.


창문을 통해서만 보던 나무가 있었어요.

그 나뭇가지에 살짝 앉았죠.

나무를, 꽃을, 흩날리는 바람을 느꼈어요.

뉘엿뉘엿 지는 해도 바라봤지요.


vincent-van-zalinge-77O9GjLptN8-unsplash.jpg


부리에 닿는 바람은 시원했어요.

은은한 꽃향기는 편안했고요.

노을을 바라보는 순간은 황홀했습니다.

내 발 끝에 닿는 나무의 감촉은 특히 좋았어요.


좋은 기분도 잠시,

이내 어둠이 주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난 배고프고 무서웠어요.


배고픈 배를 부여잡고 어찌어찌 잠이 들었습니다.

무서운 꿈을 꾸지는 않을까 걱정했죠.

다른 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어요.

그들은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고 있었죠.


배가 고파 저도 먹어봤습니다.

웩. 맛이 없더군요.

그릇에 가득했던 모이가, 안락한 새장이 그리웠어요.

먹으면 다시 가득 채워지는 그 편안함이 그리웠습니다.


배를 채운 뒤 다시 힘껏 날개 짓을 했어요.

바람을 가르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이대로 하늘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죠.

왜 이제야 이 느낌을 알았는지 후회될 정도였어요.


얼마 후, 산 새들을 만났습니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죠.

자신들은 바다를 건너서 왔다고 했어요.

바다가 뭔지 궁금했지만 무서워 물어보지 못했어요.


나 보다 몇 배는 빠르게 날 수 있었어요.

산 사이, 나무 사이를 쏜살 같이 날았죠.

그들은 앞에 어렴풋이 보이는 산으로 돌진했어요.

그 순간 새들은 무언가에 부딪혀 떨어졌어요.


새 유리창 충돌(2).jpg


난 너무 놀랐어요.

아래로 내려가 보니 산새들은 버둥거리고 있었어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어요.

난 너무 무서웠습니다.


더 이상 빠르게 날아가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결심을 거듭하다 다시 밤이 찾아왔습니다.

또 어찌어찌 잠이 들었죠.

아이의 따스한 눈빛이 그리웠어요.


세상이 무서웠지만 그렇다고 죽을 순 없잖아요?

그렇게 그렇게 버텼어요.

고왔던 깃털이 더러워져 버렸어요.

매끈했던 부리는 거칠어졌고, 발은 딱딱해졌어요.


david-clode-7_TTPznVIQI-unsplash.jpg


그래도 친구가 생겨 좋았습니다.

우리는 같이 벌레를 잡아먹었어요.

나뭇가지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죠.

꽃밭에서는 노래도 불렀고요.


친구는 위험한 것에 대해서 말해줬습니다.

족제비, 오소리, 너구리, 창문, 자동차, 사람...

사람이 위험하다니... 처음 알았어요.

귀여운 아이는 날 아껴줬는데 말이죠.


친구는 사람들과 살아본 적이 없대요.

태어날 때부터 새들과 살았다네요.

여기저기 떠돌다 이 산에 정착했다는군요.

풍족하진 않지만 그나마 안전한 곳이었어요.


친구는 하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내 친구는 하늘 높이 가봤어요!

정말 대단하죠?

구름 위도 날아 본 새가 바로 제 친구예요.


david-watkis-icxVZzu3s9c-unsplash.jpg


하늘 위 세상은 들으면 들을수록 멋져요.

폭신폭신한 구름에, 커다란 비행기까지...

가끔 철새들을 만나는 데 규모가 어마어마 하대요.

자칫 휩쓸리면 떨어질 수도 있다는군요.


친구는 비행기에게 하늘 위에는 뭐가 있는지 물어봤어요.

비행기는 우주라고 하는 공간이 있는데,

자기도 가보지 못했지만 고요한 공간이라 들었대요.

비행기도 못 가본 아주 고요한 공간! 멋지지 않나요?


우주에서는 걱정이 없겠죠?

무서운 것도 없을 거예요. 그쵸?

족제비, 자동차, 창문을 피해서 날아갈 일도 없고.

혹시 아나요? 모이가 천지에 널려있을지?


alexander-andrews-fsH1KjbdjE8-unsplash.jpg


난 우주로 날아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양떼구름에 멋진 비행기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철새들도 만나 신나게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요.

우주에 가면 달님과 해님도 만날 수 있고요.


매일매일 무서운 것들을 피해야 하는

여기가 힘들었어요.

매일매일 먹을 음식을 찾아야 하는

여기가 힘들었어요.


매일매일 춥고 배고픈

여기가 힘들었어요.

매일매일 불안에 떨고 있는

여기가 힘들었어요.


힘들게 마음을 먹었더니 친구가 다시 생각해보래요.

하늘에는 나쁜 비행기들이 많다고 했어요.

새 같은 건 관심 없이 그냥 들이받는 녀석들이요.

그리고 우주는 무서운 곳일 수도 있대요.


고민을 하다 보니 시간이 흘렀어요.

결혼도 하고 둥지도 생기고, 알도 낳았어요.

알을 품고, 먹을 것을 구하는 게 힘들었어요.

우주로 가기는커녕 하늘을 쳐다볼 시간도 없었죠.


나쁜 녀석들이 내 알을 노리고 있어요.

그 녀석들이 빼앗아가지 못하게 지켜야 했어요.

매일매일 무언가를 지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도 지켜야 할 것이 생기니 삶에 활력은 생겼어요.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알에서 새끼가 나올 것 같아요.

정말 얼마 안 남았어요.

느껴져요.


족제비.jpg


어느 날, 깃털이 주삣서는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었어요.

족제비였어요.

그는 날 향해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죠.


난 소리치고 저항했어요.

오지 말라고, 저리 가라고.

부리로 쪼고, 쪼고 또 쪼았어요.

다행히 남편과 친구들이 왔고 족제비는 물러났어요.


몇 번의 위기를 넘기고

내 알에서는 귀여운 새끼들이 나왔어요.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어요.

나를 닮은 새라니 신기했죠.


사랑스럽지만 힘들었어요.

아름다웠지만 부담스러웠어요.

신기했지만 지겨웠어요.

좋았지만 안 좋았어요.


tj-arnold-hZi6Z4lM2h4-unsplash.jpg


새끼들에게 벌레를 물어다 주느라

몸과 마음은 지쳐갔어요.

내가 지친 만큼

새끼들은 자랐죠.


새끼들은 정말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이제 부리의 길이도 나와 비슷해졌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새끼들은 둥지를 떠났어요.


내 피곤함과 맞바꾼 새끼들이 떠났어요.

내 삶의 이유였던 새끼들이 떠났어요.

내 활력소였던 새끼들이 떠났어요.

내 새끼들이 떠났어요.


새끼들이 떠나자 비로소 여유가 생겼어요.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죠.

그리고 그 너머 우주가 생각났어요.

우주로 날아가기로 결정한 '나'도 생각났죠.


harsh-chauhan-9nOsbDqmU9E-unsplash.jpg


갈 수 있을까?

너무 늦었나?

이젠 힘이 없긴 하지...

여기도 그냥 살만해...


여러 생각이 교차되며

그동안 내가 한 일을 생각해 봤어요.

난 뭘 했던 걸까요?

난 뭘 바라보고 살았던 걸까요?


두려움이 날 움직이게 했고

다른 새가 좋다고 하는 것에 움직였어요.

불안함이 날 움직이게 했고

새끼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움직였어요.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난 왜 살았죠?


그렇네요.

난 우주로 가기로 했었죠?

아... 생각났어요.

그렇군요.


greg-rakozy-oMpAz-DN-9I-unsplash.jpg


난 우주로 올라가기로 했어요.

우주에 가면 내가 왜 사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우주로 가는 게 내가 사는 이유일 수도 있고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네요.

이제 우주로 떠나야 하거든요.

준비요?

필요 없어요. 그냥 날아가면 돼요.


내 이야기 들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덕분에 정말 즐거운 시간 보냈어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다시 만날 수 있냐고요?


우주가 너무 좋아서

여기로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만약 다시 온다면,

우주 이야기를 해줄게요.


어떤 곳인지

무엇이 있는지

내가 왜 사는지도

가능하다면 말이죠.


이젠 진짜 가봐야겠어요.

그럼 안녕.


kerem-karaarslan-yvub8gSl3mE-unsplash.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