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산책

by 성실한 베짱이
아침이다. 전쟁이 시작된다. 아이는 오늘 짜증이 심할 거다.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인 학교 가는 날이기에. 아이의 짜증을 받아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옥죄어 온다. 위장에서 묵직한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것만 같다. 내 감정과 에너지는 10년간의 육아로 탈탈 털렸다. 남편은 요새 조금 바뀐 듯 하지만 예전엔 별로 도움이 안 되었다. 내 자존감을 갉아먹는 사건들이 많다. 필요하다. 내 감정을 채울 시간이.
학교에 가도 쉬는 시간이 없다. 쉬는 시간에 놀지 말란다. 마스크를 쓰는 데 왜 놀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라는데, 책은 싫다. 아빠는 재밌다며, 매일 읽으라는데 싫다. 어쨌든, 학교가 재미없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떠들고 노는 게 좋았다. 그렇게 놀면 친구들의 마음속에 내가 있는 것 같았다.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그게 사라지니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진다. 필요하다. 뭐라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너무 많다. 하루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일이 쌓인다. 하나씩 걷어내고 옆을 보면 또 해야만 할 일이 쌓여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야 하는데, 해야만 하는 일들만 많다. 아... 쉬고 싶다. 이것저것 일이 많다. 무거운 공기가 가슴을 누른다. 필요하다. 에너지를 채워줄 시간이.
어린이집 가기 싫다. 엄마는 왜 어린이집을 가라고 하지? 싫어. 싫어! 'ㅅㅁ어린이집' 가기 싫어.



예민한 가족의 "토요 산책"

우리 가족은 예민하다. 예민해졌다. 육아에 예민해졌고, 예민한 엄마와 아빠의 보살핌을 받느라 아이도 예민해졌다. 쉽게 감정이 소모되고, 에너지가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짜증내고, 싸우고 상처를 받는다. 소모된 감정을 채우고, 빠져나간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몇 년을 찾고 찾았는데...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았던 그 방법을 드디어 찾은 것 같다.


"어쨌든"이라 외치고 '산책'을 나가는 거다.


아이와 손을 잡고 산길을 걷는다. 우거진 나무가 태양을 막아주고, 적당하게 바람이 분다. 체온이 내려간다. 잡은 손에 집중해본다. 꼼지락 거리는 손가락을 느끼고 맞닿은 피부의 보드라움을 느낀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니, 감사합니다. 고마운 마음에도 빠져보고, 아이의 눈에 담긴 녹색의 편안함에 빠져 본다. 올라선 바위 위, 강이 보인다. 확 트인 시야가 내 콧속에 상쾌한 향기를 남긴다.


처음엔 아이들의 저항이 심했다. 그저 길을 걷는다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산책을 나가자는 말에 입이 튀어나왔고,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 없다 협박을 하기도 했다. 억지로 끌고 나오니, 한 발 내딛을 때 마다 불만이 한 사발씩 뿜어져 나왔다. 다 그만둬,라고 소리 지르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많다.


'토요 산책'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제 둘째는 토요일에 일어나면 "운동"이라 외치며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첫째는 불평불만이 100분의 일로 줄어들었다. 체력도 나날이 좋아져서 1km도 채 못 걸었지만 이젠 3km도 거뜬하다. 이대로면 같이 지리산 종주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역시 어디서든 존버다. 한 달을 버티니 다른 풍경이 보인다.



산책? 그걸 왜 해?

산책 같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로 여겨졌다. 이왕 하는 거라면 남들이 우러러볼 만한 무언가를 하길 원했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에피소드를 풀어놓을 수 없다면, 듣는 이가 우와, 탄성을 지를 정도의 여행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여겼다.


지난 여권을 보면 도장이 꽤나 많이 찍혀있다. 내가 이렇게 많은 곳을 다녀왔다니, 라는 생각이 날 뿌듯하게 했다. 26살, 유럽 곳곳을 다니며 찍은 도장이다.


유레일 패스가 있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든든함으로 기차 지도를 쳐다보며 가야 할 길을 엮는다. 숙박비도 아끼고, 새로운 경험도 할 수 있는 꾸페를 예약한다. 3층 침대의 중간 칸에서 잠을 청한다. 모두 잠든 새벽. 쿠페는 도미노가 드르륵 쓰러지듯, 우수수 일어난다. 플래시 불빛이 나를 비춘다. 여권을 보여달란다. 비몽사몽간에 배낭에서 여권을 꺼내어 보여준다. 내 여권을 확인하고 도장을 꾹 눌러 찍어준다. 졸려움에 취한 건지, 성취감에 취한 건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든다.


북미 대륙을 종으로 횡으로 다녔다. 밴쿠버에서 토론토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밴쿠버까지 차로 내 달렸다. 호수가 있으면 멈춰서 수영을 하고, 밤에는 다음은 어느 도시인지 되뇌며 잠이 들었다.


이런 게 여행이었다. 목적 없이 주변을 그저 걷는다? 왜? 재미도 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그런 무의미한 행위를 왜 하나?



편안한 옷을 입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어떻게 어떻게 첫째를 조금 키워 놓으니 둘째가 태어났다. 특별한 아이였다. 너무나 사랑스러워 눈이 많이 가고 너무나 징그럽게도 손이 많이 가는 아이 었다. 지적장애라는 것이 그렇다. 남들이 이제 다 키웠네,라고 말하는 나이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이제 다 키웠네, 이제 편하겠네, 라는 소리다.


어쨌든, 이런 구성으로 해외여행도 제주도 여행도 여수 여행도 속초 여행도 모두 시도해 봤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힘든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그래도 징그럽게 힘들다는 불만이 동시에 쌓이는 여행이었다. 허리가 맞지 않는 양복바지와 단추가 터질 듯한 와이셔츠를 입고 8시간 일을 하는 느낌이랄까. 별건도 아닌 팀장의 말 한마디에 짜증이 솟구치는 그럼 심정 말이다. 우리의 여행이 그랬다.


산책이다. 산책을 나가는 순간 아주 편안한 츄리닝을 입고 재택근무를 하는 느낌이었다. 팀장이 아무리 메신저와 카톡에서 떠들어도 화가 나지 않는 그런 느낌 말이다.


금요일에 잠이 들며, 내일은 9시에 집에서 출발하기로 한다. 여지없이 내 눈은 9시에 떠진다. 왜인지 여지없다. 그리고 여지없이 10시 30분에 우리는 집을 나선다. 1시간 30분이 걸리는 호수로 가려했으나, 30분밖에 안 걸리는 산으로 간다. 나무가 우거져 시원하다며. 산길, 언덕길, 오솔길을 걷는다.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놓기도 한다.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한다. 서로를 바라보기도 하고, 째려보기도 한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우리들의 시간을 만끽한다.


우리 가족의 토요 산책은 이렇게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긍정적인 감정들이 쌓인다. 일주일을 살아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토요 산책에서 얻는다. 우리 가족은 드디어 편안한 옷을 입었다.



어쨌든, 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