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끼 사람 됐네.”
오랜만에 만난 H가 말했다. 고작 저녁 한 끼 사고 나는 사람이 됐다. 백 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은 환웅에 비하면 싸게 먹힌 편이다. 과거에 나를 도대체 어떻게 봤길래. 우리는 술 대신 고구마 라떼를 홀짝이며 근황 토크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늘 그렇듯, 결국엔 대학 시절 이야기로 빠져 버렸다.
H는 함께 자취하던 친한 형이다. 저금통을 깨서 함께 밥버거로 저녁을 때우던 우리는,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이성 문제로, 학업 진로 문제로 늘 불안해하고 갈팡질팡하던 모습은 이제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여전히 다른 문제로 불안하지만, 그 불안을 숨길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점심으로 계란만 먹던 놈이…”
“공책 찢어서 레포트 제출하던 놈이…”
“나영이한테 차이고 울던 놈이…”
H와 이야기하다 보니,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난생처음으로 들었다. 대단히 성공한 것도 아니지만, 과거를 돌이켜 보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말이 안 된다. 대학 졸업 후 딱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강산뿐만이 아니라, 절대 안 변한다던 사람도 변하나 보다. 모두 그럴듯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을 보면 말이다.
가장 가까웠던 H조차 그 당시엔 상상 못 했다. 돈 아끼려고 계란만 먹던 내가 기분 좋게 저녁을 사주는 날이 올 줄은. 공책을 찢어서 개발새발 글씨로 레포트를 써내던 내가 소박하게나마 책을 출판하게 될 줄은. 그리고 연애도 제대로 못 하던 내가 결혼하고 아빠가 될 줄은.
우리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며, 꽤 자주 타인을 오해한다. 하지만 고작 일 이년 지켜본 것으로 한 사람을 평가하고 그의 미래를 예측하는 게 얼마나 우매한 짓인가. 사리 분별 못하던 아이도 언젠간 제 밥값을 하게 된다. 게다가 시대와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될지는 부모조차 알 수 없다.
모두 박사의 길을 걸을 것이라 예상했던 모범생 P는 30살이 넘어 패션 인플루언서가 됐고, 수업 시간 내내 일본 애니메이션만 보던 오타쿠 L은 사업가가 됐다. 게다가 나보고 사람 됐다던 H, 그는 뒤늦은 어머니의 사업 성공으로 극적으로 팔자가 폈다.
이제 나는, 사람에 관해서라면 열을 보더라도 하나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