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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밍 Jun 11. 2024

할머니의 시간

내가 모르는 시간을 기록하는 일 

어릴 적 여름방학이 되면 ’탐구 생활‘ 책과 일기장을 챙기고는 며칠씩 할머니 집에서 보내곤 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강원도 원주의 오래된 동네 골목에 자리했던 할머니집은 세월이 지나 돌아가신 옆집 어르신 집도 사들이며 넓히고 여기저기 조금씩 보수를 하며 모습이 변했지만 집의 형태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


증축을 거듭하며 윗집과 아랫집 두 채와 담벼락 사이로 얼기설기 덧붙여진 할머니집에는, 아파트에는 없는 이상한 공간들이 가득했다. 커다란 솥뚜껑, 낙서할 담벼락, 불장난하기 좋은 아궁이, 채소 몇 개 기르기에 좋은 손바닥만하지만 넉넉한 텃밭, 대추가 쏟아져나오는 나무, 어릴 적 사촌이 빠져서 죽을뻔 했다던 공포의 푸세식 변소까지. 


1987년부터 1991년까지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다섯 명의 사촌들이 태어났고 우리는 고만고만한 나이 덕분에 여름방학을 늘 할머니집에서 함께 보냈다. 탐구생활과 일기를 같이 쓰면서 커다랗고 빨간 고무 ‘다라이’에 차가운 물을 가득 받고는 첨벙대며 목욕을 하고, 할머니가 소쿠리 가득 쪄오신 옥수수를 실컷 뜯어먹고 선풍기를 켜놓은 채 낮잠을 자고 나면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여 매미 소리에 다시 자전거 타러 나가던 그 여름, 할머니는 그 때도 할머니였고 지금도 할머니다. 


이제는 증조할머니가 된 나의 할머니. 


머나먼 섬도 아니고 산골짜기 오지도 아니고 집에서 넉넉히 한시간 반이면 닿는 중소도시의 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집에 할머니가 계신다.


벌써 90대 중반의 나이시지만 그 나이대 노인들이 흔히 계시는 요양원 대신 오랜 세월을 보낸 집에서 세 끼를 직접 해드시고 혼자 거동하시며 밭일도 하신다. 같이 지내시는 큰아버지가 계셔서 살뜰히 보살펴주고는 계시지만 기본적으로는 할머니 스스로 거동을 하시고, 아빠, 그러니까 할머니에겐 자식들이 가끔 찾아뵙는 정도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져 아이들을 보고서도 내 아이들인지 헷갈려하시지만 누구 아이들이면 어떻고 누구 손주면 아무렴 어떤가. 할머니는 아이들을 지극히 예뻐하시고, 안아주시고, 그저 평생 그러셨던 것처럼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하신다. 평생을 누군가를 배부르게 먹이기 위해 살아오신 그 삶 그대로 지금도 할머니의 시간을 살고 계신다. 아이들은 그런 증조할머니집을 본능적으로 좋아했다. 


엄마, 증조할머니집은 마당이 있어서 재미있어.

앵두도 있고, 고추도 있고, 상추도 있고 물도 줄 수 있잖아. 그리고 강아지도 있고, 숨바꼭질 할 곳도 많고.

할머니는 혼자 사는데 냉장고도 크고 집도 크네.


나와 남편의 부모님들은 양가 모두 아파트에 사신다.


우리집보다도 훨씬 더 신축 아파트라 (우리 집은 주차장과 집이 연결이 안 된 구축이다보니) 아이들에게 할머니집이란 옥수수와 수박밭이 있는 시골집이기는 커녕 최신식 시설을 갖춘 고층 아파트 단지다. 그런 아이들에게 마당이 있고 집이 여기저기 이상한 모양으로 연결된 증조할머니집이야말로 신기한 세상이겠지.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여름이 되면 자꾸 증조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고 졸라댄다. 


오늘은 오랜만에 할머니를 만난 김에 옛날 얘기를 물어봤다. 아직 할머니는 백살 축하연도 거뜬히 하실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시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기억이 좀 더 생생할 때, 그리고 할머니가 오랜 시간 더 말씀하실 수 있을 때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할머니로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래 전, 할머니가 어릴 적, 그리고 처음 이 집에 오게 된 이야기, 할아버지를 만난 이야기…


결혼하셨을 땐 어땠는지, 

할머니의 엄마아빠는 어떤 분들이셨는지,

어떤 곳에서 자랐고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그런 할머니의 시간이 궁금해서, 아무도 기록하지 않고 앞으로도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질 그 시간들이 궁금해서 한참을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이야기는 삶에서 본인이 가장 힘들었던 시간만 맴돌 뿐이었다. 



태생이 허약해서 일본 유학만 다녀오고는 제대로 직장도 못구하고 농사일도 못한 채 서른이 넘은 할아버지를 만나서는, 툭하면 본가에서만 지내는 할아버지를 두고 할머니는 온갖 수발을 들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술을 먹거나 병에 걸려서 배설물이 묻은 옷을 세탁하다가 도저히 냄새 나는 방에서는 밥을 못먹겠다고 친정에 돌아갔는데 혼만 잔뜩 나고 다시 돌아가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돌아왔다는 이야기, 성한 똥들을 그러모아 밭에 묻기도 하고 똥장수에게 팔기도 했다는 이야기 (이게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엔 비료로 썼으니 그랬을 법 하기도 했겠다만은).. 


그래도 자식을 여섯이나 뒀고 80대까지 건강하게 장수하셨으니 할아버지랑 좋은 기억 정도는 있지 않았냐며, 처음 만났을 땐 어떠셨냐고 여러 번 물었지만 할머니의 시간에서 할아버지는 평생을 책임져야 했던 존재로 남았나보다. 아아, 할머니의 삶은 무슨 시간이었을까.


그 시절 할머니들의 삶이 흔히 그랬겠지만,

열여섯의 나이에 11살 더 많은 할아버지와 결혼해서는 평생 학교도 가지 못하고 아이를 여섯 낳고 그 아이들을 먹이고 키우는 일에 평생을 바쳤던 할머니의 삶. 여자로서 즐거움을 누리는 일도, 자식들 덕분에 여행다니고 취미를 누리는 일도 없이 할머니가 되어서는 자식들의 자식들을 돌보느라 노년을 보내시고는 이제 혼자 남겨진 오래된 집에서 할머니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할머니의 시간에서 자식들이 아닌 온전한 할머니의 시간을 찾고자 했던 건, 할머니의 시간과 삶을 나의 시각에서 보고자 했던 내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삶은 자식들이 배부르게 먹고 크는 걸 지켜보는 것으로 가득하셨고 오늘까지 그 본질은 그대로셨으니.


그렇지만 더 늦게 전에 미처 못 들은 얘기 하나라도 더 들어보고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결국 다들 떠나더라도 남는 건 기록 뿐이니. 


삶은 이어지고, 기록할 거리는 넘쳐나는데 시간도 부족하고 내 실력이 미천해서 글로 다 담아내질 못하는 게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엄마아빠의 이야기도 좀더 부지런히 쓰고 싶은데 일단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지…(이게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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