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 브랜드 마케터, 이룰 님
마케터의 꽃말은 ‘잡부'라고 하던가요…? ‘회사에서 시키는 업무들을 닥치는 대로 하다 보니 어느새 전문성 없는 마케터가 되어 있더라’는 얘기는 3~5년 차 마케터에겐 아주 흔한 레파토리죠. 지금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면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을 1초라도 더 빨리 만나 보셔야 합니다.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업무 경험을 자신만의 강점으로 바꾼 분이 여기 있거든요.
이분을 첫 인터뷰 주인공으로 선정한 건, ‘이분과 같은 마케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마케터로서의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딱 제가 꿈꾸는 여성 마케터로서의 롤모델이었습니다. 여성 마케터를 위한 뉴스레터를 만든다는 소식에 만사 제치고 달려와주신 우리의 첫 인터뷰 주인공, 바로 만나볼까요?
안녕하세요, 이룰 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메일 마케팅 서비스 ‘스티비*'의 마케팅 매니저 ‘이룰’입니다. 다양한 일을 경험하는 걸 좋아하고 새로운 일을 주저 없이 시도하는 성격이라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요즘엔 저의 반려묘 이야기를 담은 '냐불냐불'이라는 뉴스레터를 보내며 ‘고양이 집사'로 알게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마케터들의 협동조합인 ‘포스트 웍스(@post_works)'의 멤버로도, 주기적으로 글을 쓰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다 함께 글쓰계(@together.writer)'의 리더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스티비 : 이메일 뉴스레터의 제작과 발송, 마케팅을 돕는 이메일 서비스입니다. 쉽고 빠르게 뉴스레터를 만들 수 있어 기업들, 나아가 개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메일 마케팅을 도입하고 싶은 마케터분들이라면 스티비를 추천드려요!(by.타사 서비스 이용하다 스티비로 옮기고 광명 찾은 마케터 J)
스티비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시나요?
‘마케팅 매니저’라는 직함으로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어요. 마케팅팀이 저 포함 둘이라 퍼포먼스 마케팅을 비롯해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해요. 그중에서도 지금은 브랜딩과 콘텐츠 마케팅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일하고 있습니다. 개인 크리에이터 분들의 뉴스레터 사용을 지원하고 홍보하는 ‘크리에이터 트랙' 캠페인 진행, 스티비 이메일 마케팅 리포트 제작, 매주 수요일마다 발행되는 ‘스요레터’ 제작 등의 업무를 해왔습니다. 또 스티비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온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하기도 해요. 가장 최근에는 ‘요즘사'와 함께 ‘유브 갓 메일'이라는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스티비 이전엔 스타트업 컨설팅 회사를 8년 동안 다니셨다고 들었어요. 근속연수가 높지 않은 업종으로 알고 있는데 한 곳에 오랫동안 근무하실 수 있었던 비법(?)이 있었나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컨설팅이라는 게 프로젝트성으로 움직여서 바쁠 땐 정말 바쁘지만 대신 확실한 ‘끝'이 있었다는 점이에요. ‘이번만 끝내면 쉴 수 있다'라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또 하나는 회사에서 얻고자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마케터라는 뚜렷한 직무를 설정하고 입사를 하지 않았고, 되려 회사의 성장을 위한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했어요. 온라인 서비스 기획 / 강연 / 서비스 기획 등 상황에 맞춰 다양한 업무를 했기 때문에 지루할 틈 없이 8년을 다닐 수 있었던 거 같아요.
8년의 시간 동안 불안함은 없으셨나요? 마케터의 숙명이자 두려움인 ‘잡부'가 되기 딱 좋은 환경처럼 보여서요.
맞아요, 사실 잡부처럼 이것저것, 다양하게 했어요. 다만, 잡부보다는 제네럴리스트라고 표현하고 답변드릴게요. 저도 한 가지가 아닌, 여러 일을 해야 했던 부분이 제 약점이 될 줄 알고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우선, 다양한 업무를 한 경험이 제가 원하는 일이 뭔지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퇴사 후 노션으로 업무를 쭉 정리했더니 제가 계속하고 싶은 / 혹은 하고 싶지 않은 업무들이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마케팅 쪽으로 계속 가고 싶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죠.
무엇보다 다양한 일을 해본 경험이 ‘이룰'이라는 마케터의 차별화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제 강점은 회사에서 직면하는 마케팅적인 문제를 마케팅 영역 안에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문제 해결력이라 생각하는데요. 어려운 미션을 받았을 때 ‘그건 못해요'라고 말하기보다는 좀 더 넓은 폭에서 해결책을 찾거나 떠올리는 편이에요. 한 번 했던 경험의 다음 연결고리를 찾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뉴그라운드에서 개인 강연을 했던 경험을 회사와 함께 할 수 있는 일로 연결해 스티비와 뉴그라운드의 협업 행사를 진행한 적도 있어요. 제너럴리스트로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저도 1~3년 차 때까지만 해도 정석적으로 여겨지는 마케터 외 업무를 하라고 하면 너무 싫었거든요. 근데 연차가 쌓이고 보니 그때의 경험이 언젠간 도움이 되더라고요. 일반적인 마케터가 경험하지 못한 일이니까 저만이 가진 인사이트로 발현되기도 하고요.
맞아요. 무엇보다도 8년 차쯤 되니까 전문성에 대한 집념도 점점 사라지더라고요. 주변에 커리어가 다양한 사람이 늘어날수록 먹고사는 방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또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커리어가 바뀌는 경우도 많이 봤고요. 그래서 이제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회사에서 마케팅과 조금 떨어진 영역의 업무를 맡아 고민이 깊어지던 시기여서 그런지 이룰 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울컥하게 되네요. 앞으로 한두 달간은 이룰 님이 방금 해주신 말씀으로 버텨낼 거 수 있을 거 같아요.
8년 동안 다닌 컨설팅 회사를 나오신 뒤에는 현재 계신 스티비에 입사하셨죠. 어떤 과정을 거쳐 스티비로 가시게 된 건가요?
그로스 해킹이라는 단어가 막 주목을 받던 시절, 그 분야에 대해 호기심이 생겨 어느 스터디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때 스티비에서 일하는 분을 알게 되었고, 컨설팅 회사를 퇴사한 후에 연이 이어져 마케팅 매니저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네트워킹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네요.(웃음)
맞아요. 사실 첫 취업도 저희 학교에 컨설팅 왔던 분을 통해, 저를 가르쳤던 교수님의 회사로 들어갔던 케이스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활동들을 하고, 그 활동들을 여기저기에 알리면 주변에서 그걸 보고 다른 커리어나 새로운 기회를 제안 주시는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마케터 분들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거를 많이 얘기하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그렇죠. 때로는 우연한 곳에서 큰일이 시작되더라고요. 그렇다면 마케터로서 일하며 힘든 순간은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있다면 극복 방법도 함께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앞서 제네럴리스트로서의 생활이 제 무기가 되었다고는 했지만 저 역시도 전문성에 대해 고민이 될 때가 있어요. 대학에서 화학 공학과를 전공했던 사람이고, 어떻게 흘러 흘러 마케터라는 직업을 갖게 된 케이스다 보니 마케터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을 하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럴 때 저는 스터디나 책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해요. 앞에서 말했던 ‘그로스 해킹' 스터디도 그 예가 될 수 있고요. 데이터 분석이 궁금할 때는 ‘SQL 스터디'를 하기도 했는데 이런 활동들이 개인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어요. 같은 직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얻어지는 인사이트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다른 마케터에게도 추천하는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어떤 마케터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현재 진행 중이에요. 그래서 조만간 마케터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마케팅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스터디를 하려고 해요. 근데 이 인터뷰 괜찮은 건가요? 마케터J 님께 마케팅에 대한 답을 드리기보다는 더 고민에 빠트리는 거 같은데(웃음).
이룰 님과 같은 연차가 되어서도 이런 고민을 한다는 걸 알게 되어 오히려 좋은걸요! 이 뉴스레터를 통해 ‘내가 하는 고민을 다른 마케터들도 하고 있으니 걱정 말아라, 우린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마침 취지에 딱 맞는 메세지가 나온 거 같아서 괜스레 웃음이 났습니다.�
이룰 님은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마케터이시기도 하죠. 꾸준히,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냥 해볼까?’라는 생각이 든 순간 이미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그리고 사실 꾸준함의 진짜 비법은 제 자신을 행동하게 하는 트리거를 잘 안 다는 거예요. 저에게는 ‘모르는 사람에게 약속을 한다'라는 것이 굉장한 트리거이기 때문에 구독자와의 약속을 깰 수 없어 ‘냐불냐불'을 주기적으로 발송하고 있어요. 또 ‘책임감'이라는 트리거를 활용해 ‘다함께글쓰계’의 리더로서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어요. 약속, 책임감, 그리고 공표하는 것. 이것들이 저를 움직입니다.
사이드 프로젝트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엄청난 의지가 있어서 뭐든지 바로바로 해치우는 줄 알았는데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네요. 사실 저도 이룰 님께서 인터뷰를 이렇게 흔쾌히 허락해 주실지 모르고 일단 제안을 드린 건데 답변이 와버려서 ‘이젠 내 의지로 뉴스레터를 무를 수 없구먼' 했거든요.
저도 오늘 책상 앞에 앉기까지 쉽지 않았는데 ‘내가 인터뷰한다고 답해버렸잖아'하고 괴로워하며 왔어요.(웃음) 큰 약속보다는 이런 작은 약속들을 계속 만드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럼 다른 마케터에게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추천하시나요?
사이드 프로젝트로 많은 걸 얻었지만 억지로 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경험'이라는 게 꼭 사이드 프로젝트로만 얻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 되는 것들도 있고, 여러 사람들을 사귀며 얻기도 하고요. 다만 내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나 상황을 자주 만드는 건 중요한 거 같아요. 어떤 제안이 왔을 때 일단 한번 해보는 거, 혹은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 같은 거요. 새로운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 혹은 사람이 분명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공식 질문 몇 가지를 던져볼게요. '마케터’란 무엇일까요?
어떤 좋은 경험을 했을 때,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요. 내가 써 본 상품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을 써보게 한다거나, 아니면 어떤 좋은 서비스를 경험했을 때 ‘우리 고객들도 이런 경험을 하게 만들고 싶다’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요.
굉장히 벅차오르는 정의네요. 저는 제가 마케팅했던 서비스를 좋아했던 경험이 별로 없어서 부러운(?) 충격을 받았어요.
마케터 J 님도 다른 회사의 좋았던 마케팅, 예를 들면 ‘뉴스레터'라는 수단이나 푸시 메세지의 문구 등을 활용한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그런 맥락으로도 생각해 주셔도 될 거 같아요.
듣고 보니 맞는 말씀이네요. 마케터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게 하는 정의기도 하고요. 마지막으로 여성 마케터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돌이켜보면 주변에서 등을 떠밀어 주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 강연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거나, 혹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을 해야 할 때도 있고요. 종종 내가 정한 안전한 범위에서 새로운 영역으로 담을 넘어가는 게 두렵고, 귀찮을 때도 있는데요. 마음 한편에 ‘해볼까?’하는 마음이 든다면, 흔쾌히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해당 글은 제가 발행하는 여성 마케터 위한 뉴스레터 '우리들의 마케팅 레퍼런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