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역할이 변했을 뿐
AI가 디자인을 ‘예측’하는 시대다. A/B 테스트는 클릭 몇 번이면 끝나고, 와이어프레임은 프롬프트 한 줄이면 뚝딱 나온다. “이제 디자이너의 직감은 쓸모없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근데 정말 그럴까?
직관은 감이 아니라 ‘경험의 속도’다
Matt Strom은 이렇게 말했다.
“Intuition isn’t the opposite of reason.
It’s the speed of reason.”
— Matt Strom, “In Defense of Intuition” (2019)
직관은 무모한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패턴의 기억이다. 수백 번의 실패, 수십 번의 인터뷰, 출시와 철수 사이를 오가며 생긴 몸의 기억이 만든 빠른 판단이다.
AI도 이 속도를 흉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속도 속엔 감정의 결이 없다.
AI는 예측하지만, 해석은 못 한다
AI는 데이터를 읽고, 패턴을 찾아내고, 결론을 낸다.
하지만 그 결론을 사람의 언어로 해석’하는 건 아직 인간의 몫이다.
AI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버튼의 클릭률이 낮습니다.”
하지만 ‘왜 사람들이 그 버튼을 믿지 않았는가’는 말하지 못한다. 그건 수치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 맥락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직관은 ‘판단력’이 아니라 ‘통역력’이다
AI 시대의 디자이너는 이제 더 이상 무에서 유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AI가 생성한 수많은 결과 중에서 ‘사람의 맥락에 맞는 해석’을 고르는 사람이다. 직관은 그 과정의 나침반이다.
“과거의 직관이 데이터를 보완했다면, 지금의 직관은 AI를 해석한다.”
요즘은 디자이너도 프롬프트를 쓰고, AI와 협업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결정하는 건 “무엇을 보여줄지”보다
“무엇을 믿고 보여줄지”다. 그 선택의 순간마다 직관이 작동한다.
나의 직관은 여전히 작동한다
나는 여전히 디자인할 때 데이터보다 먼저 사람을 본다.
숫자가 아니라, 눈빛과 망설임과 멈춤을 본다.
데이터는 그다음을 설명해 준다. 때로는 내가 느낀 걸 증명하고, 때로는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해준다.
그래도 나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일하고 싶다.
AI가 말하는 정답이 아니라, 사람이 느끼는 진짜를 찾는 일.
AI가 모든 걸 말해주는 시대, 직관은 여전히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그건 아직, 사람답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