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Q 매거진 그리고 이충걸 편집장

단 한번도 만나본 적 없었지만,
오랜 시간 많은 많은 이들의 영감이 되었던, GQ 매거진의 이충걸 편집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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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매거진 그리고 이충걸 편집장


gq_korea_november_2017_feat_wanna_one_1507906120_b9672b73.jpg ⓒ Pinterest_GQ 코리아 2017년 11월 커버 with 워너원


매거진을 한번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VOGUE와 GQ는 익히 들어 알고 있을 터.
뿐만 아니라, GQ는 남성들에게 한번쯤은 소장욕을 자극하는 '패션의 바이블'로 여겨지기도 했다.
특히, 많은 매거진 에디터들에게는 '에디터'라는 꿈을 키우게 해준 영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에디터 이충걸이 있었다.


style_55ee9120e8a92.jpg ⓒ GQ Korea


언젠가 담백하지만 알찬 글로 오래도록 많은 이들과 호흡하고 싶다는 에디터 한 분과 여행을 함께 간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밤, 하늘을 빼곡히 수놓는 수 천개의 별을 함께 감상하고 난 후, 조용하디 조용한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혹시 GQ 매거진의 이충걸 편집장님 아셔요?


'모를리가 없지않나'라고 생각하던 그 때, 그녀가 다시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했다.

"일전에 저희 모임에서 물어보셨었잖아요? 어떻게 에디터가 되었냐고. 사실은 저 그분처럼 글을 쓰고 싶었어요. 대학 졸업 즈음 우연히 그 분의 글을 읽었는데, 한 동안 머리를 망치로 탁 맞은 느낌이였어요. 그 여운이 너무 오래 남아, 편집장님의 다른 기사들을 읽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더 많은 에디터분들의, 더 다양한 매체의 글들을 읽게 됐어요. 더 많은 글을 접하다 보니, 좋아하고 존경하는 에디터분들이 많이 생겨나더라구요. 그래서 어느날부터 나도 저들처럼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는, 영감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라고 백번, 천번, 만번 되새기다보니 어느새 제가 에디터가 되어있었어요."

"근데 에디터가 되자마자, 사람들은 말해요.. 요즘 같은 시대에 웬 잡지 에디터냐고...요즘은요. 아시다시피 글을 읽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디지털에 밀려 점점 제가 설 자리는 작아져요. 불안하죠 왜 안불안하겠어요. 근데 긴 호흡이 글은 언제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번 읽고 잊어버리는 글이 아닌, 가끔 다시 꺼내보고 싶은 그런 글. 다수를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위안을 주는 글. 그런글이요. 근데 이충걸 편집장님의 글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어요."

"언제까지 에디터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글 쓰는 일은 업이 되었던 그렇지 않던 꾸준히 글을 쓰고 싶어요. 저도 언젠간 누군가에겐 이충걸 편집장님이 나에게 주었던 기분 좋은 충격와 여운을 주고 싶거든요".


sarah-dorweiler-357717-unsplash.jpg ⓒ Unsplash_Sarah Dorweiler


뜨끔했다. 하는 일이 일인만큼, 매달 나오는 모든 잡지는 다 본다 자부했건만, 막상 어렵다는 이유로 글의 인사이트를 찾아보려 애써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GQ는 어려운 매거진이다. 결코 기사가 쉽지 않다.

최근 디지털 시대에 응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테마를 시작으로, 소설, 영화, 쇼퍼홀릭, 역사, 정치 등 다양한 분야와 범위의 카테고리에 대한 글을 써내려간다. 메인스트림 잡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GQ의 기사들에는 유난히 마이너적이고 날카로운 시각의 컨텐츠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에 쭉 읽고 이해가 안가, 두 세번 읽어야 그제서야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기사들도 꽤 있었다. 브랜드 홍보 컨텐츠보다 진한 인사이트가 있는 그런 기사 수가 훨씬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무도 듣지 않는 질문을 던지곤 했다. "광고가 될까?"였다.
하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자존심이 마케팅"이라는 말을 던지곤 했다고 한다.

2008년 신동아에 실린 그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그는 "기자가 앵벌이가 되어 이 브랜드, 저 브랜드에서 돈을 모아 연예인은 퍼스트클래스에 태워 보내고, 기자들이 수발들다 오면 찬양시밖에 더 쓰겠냐. 그건 싫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GQ라면 믿겠다'라는 '마케터블'한 소리를 듣는다. 난 회사에 자존심이 마케팅이라고 주장한다" 라며 그의 소신을 밝힌 적 있다.

(출처: 신동아 - 남성지 'GQ' 편집장 이충걸)


그가 백프로 옳다는 것은 아니다. 소수의 광고만 선별해서 받게 되면 매거진의 퀄리티는 높아지지만 책을 발간하는 출판사는 수익에 대한 고민, 브랜드는 가장 믿음직한 홍보 채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여러모로 비통하고 곤란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대중과 글로 호흡하기 위해 길고 험난한 매거진 에디터의 길을 걷고 있는 에디터의 직업 의식, 그리고 진정성 있는 글을 요하는 독자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를 제공한 그의 뚝심은 가히 박수칠만하다.

그랬던 그가 17년의 편집장 생활을 마무리하며 GQ를 떠난다. 떠나는 이유는 알 수 없다만, 많은 이들의 아쉬움을 자아낼 것임에는 분명하다. 기사의 품질에 병적으로 집착한다는 그, 건강한 외로움을 오랜 기간 꿋꿋하게 견뎌온 이충걸 편집장의 챕터2를 기대한다. GQ의 오래된 독자로서, 그가 GQ를 떠나서도 담백한 글을 남기는 글쟁이로 오래오래 남길 고대한다.

부끄럽지만, 다시 한 번 그의 글을 읽게 되었다. 이번엔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하나하나 읽게 되었다.
매우 담백하고, 어찌보면 너무 날카로운 것 아닐까 하는 그의 글. 어찌보면 엄청 심드렁하기도 한 그의 글은 읽다보면 어느샌가 고개를 끄덕이는 이상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최근 읽었던 그의 글들 중에 짧지만 노트 한편에 스크랩해놓고 싶은 기사를 소개한다.


EDITOR’S LETTER – 낙천주의 연구

EDITOR’S LETTER – 지금이 지나간다
EDITOR’S LETTER – 내 아픔 모르는 당신에게


요즘 내 자신의 정체성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져 의기소침한 요즘.. 내 스스로가 씨를 뿌리고 가지를 펴고 꽃을 필 때까지의 인내와 노력, 시간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 그의 글귀로 이 글을 줄여보려한다.

요즘 내 자신의 정체성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져 의기소침한 요즘.. 내 스스로가 씨를 뿌리고 가지를 펴고 꽃을 필 때까지의 인내와 노력, 시간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 그의 글귀로 이 글을 줄여보려한다.


아무도 꽃을 보지 못한다.
꽃은 아주 작고, 들여다볼 짬도 없어서.
하지만 친구를 만들 때처럼 꽃을 보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지금이라는 시간이

마지막으로, 이충걸 편집장처럼 오래도록 많은 이들과 좋은 글로 호흡하고 싶다던, 나의 여행 룸메이트였던 에디터 분의 글도 매달 기다릴게요! 그리고 지금 글도 충분히 좋아요!

<GQ매거진>
GQ는 미국 미디어그룹 콘데나스트가 발행하는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다. 한국판은 2001년 첫 창간되었다. 스타일, 엔터테인먼트, F&B, 차, 테크(IT), 시계, 여행, 패션 등에 대한 심도있는 기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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