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도 한 발씩 잘 내디뎠다

by 무무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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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한 발을 먼저 내딛고 그다음에 다른 발을 내디디면 된다. 500만번 정도만 그렇게 하면 된다._멘 몽고메리<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요즘 우리 아들의 보물은 쇼트트랙 김길리 선수의 사진이다. 2026 동계올림픽은 끝났지만, 아이는 신문 기사를 보고 또 보고 경기 장면도 틈만 나면 보여달라 조른다. 아이가 너무 좋아해 버릴 수가 없어서 장난감 수납장에 사진을 붙여두었다. 덕분에 나도 매일 김길리 선수의 금빛 질주를 마주한다.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경기를 치르며 정상에 선 그녀의 얼굴은 볼수록 아름다웠다. 저 담대함은 대체 어디서 솟아나는 걸까. 나에게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3월 둘째 주를 보내며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치고 싶었다. 올해 새로 맡은 일들을 잘 해내고 싶었지만 주어지는 일들이 만만치 않아 결국 몸살이 났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는 게 두려워 출근조차 하기 싫은 지경이었다. 학급 아이들에게는 《괜찮아, 우리 모두 처음이야》라는 책을 읽어주며 적응을 독려했지만 정작 내 속마음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교사, 부장, 엄마, 아내라는 1인 4역을 한꺼번에 소화하는 건 내 생애 처음이라 너무나 버거웠다. 모든 역할을 내려놓고 물러서고 싶었다. 질주는커녕 한 발 내딛기조차 버거운 상태였다.


달리기가 없었다면 나는 분명 중심을 잃고 깊은 우울에 빠졌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역할들은 이제 와서 못 하겠다고 남에게 넘길 수 없는 것들이기에 꾸역꾸역 해내면서도 시름만 깊어갔을 테다. 하지만 하루 10분의 달리기 덕분에 "내일도 한 걸음 더 내디뎌 보자"라고 외칠 수 있었다. '그저 한 발을 먼저 내딛고 그다음에 다른 발을 내디디면 된다. 500만번 정도만 그렇게 하면 된다.'《게이트우드 할머니의 발자국》 속 문장을 중얼거리며 뛰었다. 어쩌면 김길리 선수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저 한 발을 내딛고 그다음 발을 내디디면 된다는 그 단순한 마음이 흔들림 없는 질주를 만드는 게 아닐까. 남들은 타고난 기량이 있는데 나만 못나 보였던 시선이 바뀐다. 오직 달리기 덕분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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