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배우는 지혜 3.
' 이 세상에서 망한 건 딱 하나, 죽음! 이렇게 살아있는 한 나에게는 낙담할 일이란 존재하지 않아. '
미술시간마다 준비를 넉넉하게 해 둔다. 미술시간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과목 시간에 학습지를 여유 있게 출력해 둔다. ' 선생님, 저 망했어요. 종이 다시 주세요. '라고 하소연하는 학생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의 하소연을 들어주면 하소연하는 학생들이 수가 급증한다. '선생님, 저도 주세요. 저도 망했어요. ' 망했다는 표현은 어디서 듣고 배운 것인지. 9살 인생의 아이들이 '저 정말 망했어요.'라고 말할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아이들은 왜 입버릇처럼 망했다는 말을 달고 사는 걸까.
오늘은 나에게 아이들이 하소연 대신 선물을 들고 왔다. 찢어져서 새로 다시 만들고 싶었지만 붙여서 끝까지 완성해 온 결과물이 오늘 내가 받은 선물이다. " 찢어져서 속상했겠다. 왜 새로 달라고 말하지 않았어?" " 선생님이 나무를 좋아하니까요. " 그렇다. 나는 아이들의 하소연에 하소연으로 응수했었다. '선생님은 나무를 좋아하는데 너희가 망했다며 종이를 더 빨리 더 많이 사용하니까 나무들이 더 빨리 더 많이 없어져서 속상해.' 이런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하소연을 했었다. 그동안 나의 하소연은 공중으로 흩어지는 힘없는 소리였을 뿐 듣고 반응하는 아이가 없었다. 하지만 꾸준히 나무사랑을 외쳤다. 그 결과가 오늘 이렇게 나를 감동시킨 선물로 다가왔다.
이때를 놓칠 수 없었다. " 얘들아, 종이가 찢어졌지만 그 부분을 붙여서 끝까지 완성해 온 우리 친구를 칭찬해 주자. 이 작품을 봐봐. 이 세상에 망한 건 없어. 오히려 더 특별해졌어. 나무를 사랑하는 선생님은 이 작품이 감동으로 느껴져. " 아이들과 함께 감동하고 칭찬하는 시간을 더 누리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나의 좋은 말 대신 '망한 건 없어'라는 주제로 교실 대화의 분위기를 바꿔버렸다.
"선생님, 망한 건 딱 하나 있어요. 바로 죽음이요. 죽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잠시 내 마음속에 침묵이 흘렀다. 정말 의미 있는 것, 지금 이 순간을 또렷하게 바라보게 해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 말대로 이 세상에 내가 없어지는 삶은 무의미한 순간이다. 그것이 바로 망한 삶이다. 아이들에게 망했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훈육하려 마음을 먹었는데 오늘도 나는 마음을 바꾼다. “너희들 말대로 이 세상에 망한 건 딱 하나 있어요.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 그때는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도 죽었다는 결과를 바꿀 수 없을 거야. 얼마나 슬플까? 살아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겠지요? 앞으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있는 한 망했다고 말하지 말자. 다들 약속해 줄 수 있죠? ”
'망한 건 딱 하나, 죽음.' 이 말 덕분에 나는 아이들과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레 나눌 수 있었다. 미술 시간에 작품이 찢어져도 정말 속상해할 일은 아니란 걸. 수학 문제를 틀려도 정말 슬퍼할 일은 아니란 걸. 넘어져도 정말 걱정할 일은 아니란 걸. 아직 두 발 자전거를 타지 못 해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 걸. 이렇게 9살 현자들에게 지혜를 또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