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삶을 선택한 백수를 위한 본격 백수 인터뷰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718일간의 세계 일주를 떠난 두 친구. 여행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 이 땅의 붙박이 영혼들을 위한 힐링 인터뷰…라고 소개해봤자 여러분이 식상해할 줄 알고 있다. 자기계발류 여행 이야기는 세상에 너무 많으니까.
그런데 <서른, 결혼대신 야반도주>는 다르다. 블로그의 주인장 김 멋지와 위선임은 우리나라에서 글을 가장 재밌게, 지나칠 정도 로 솔직하게 쓰는 블로거다. 1유로짜리 식빵 하나로 하루 3끼를 때우는 짠내 스토리부터, 여행 빚 갚기 위한 공장 노동 비화까지. 불편을 개그로 승화해 풀어낸다.
덧붙이면 이분들을 인터뷰한 데 는 다른 이유가 또 있다. 위선임과 김멋지는 여행이 끝난 후 온갖 창의적 잡기술(?)로 돈 벌며 재밌는 생활을 꾸리고 있다. 만약에 20대 독자가 직장 생활의 테크트리를 끊어내고, 스스로 고안한 먹고사니즘을 추구하는 ‘미취업 생활자’를 택한다면, 팁을 전해줄 멘토로 김멋지와 위선임이 최고다. 그래서 미증유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발적 백수 꿈나무들을 위해 진행한 본격 백수 인터뷰.
- 대학내일 이정섭 에디터
- 서른 결혼대신 야반도주 블로그 http://yabandoju.com/
에디터: 난감하네요. 직업을 뭐라고 설명할지 모르겠어요. 세계 여행 다녀오신 거로 강연하고, 글 써서 돈도 벌고, 명함 제작도 하고, 의류 재고 처리 현장에서도 일하고.
위선임: 인터뷰 제의를 받고 생각해봤는데요. ‘자발적 삶을 위한 선택적 백수’ 정도가 좋을 것 같아요. 세상을 살면서 “늘 어디 다니는 누구야”라고 소개하잖아요. 사실 저희는 직책이나 직업으로 표현되는 게 아니라 그냥 저희 이름이 저희를 표현되는 게 좋거든요.
에디터: 제가 선임님을 브리핑해보자면, 대학 의류학과에 진학했지만 전 공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였죠. 고교 시절 예술적 창의성이 있을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 시키는 것만 잘하던 ‘발주형 인재’더라. 그래서 HRD회사에 입사했고 거기서 5년을 꽉 채워 일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인 사춘기가 찾아왔죠. 의욕이 사라졌고 병마가 찾아왔고요. 목 디스크, 팔 저림 등등. 그러던 어느 날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위선임: 잘 알아보고 오셨네요.(웃음) 제가 2013년 내내 아팠거든요. 병원 갈 때마다 의사가 하는 말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면역력이 떨어져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그땐 의사가 몰라서 저렇게 말하는 거라며 안 믿었어요. 몇 년이 지나고 깨달은 건데 그게 맞더라고요.
에디터: 멋지님 역시 회사 생활의 고통이?
김멋지: (당당한 얼굴로) 전혀 없었어요.
에디터: 그러면 회사는 왜 그만두시고 그렇게 긴 여행을 떠난 거예요?
김멋지: (또 당당한 얼굴로) 재밌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복잡하게 살지 않습니다.
에디터: 직장 생활 커리어를 끊고 가신 건데 먹고사니즘의 공포를 어찌 이겨내셨는지요?
위선임: 아직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먹고사니즘은 인간의 숙명 같은 거잖아요. ㅠㅠ
에디터 : 저런.
위선임 : 그래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마음의 근육'이 생겼다랄까요(표현이 좋음). 운동을 하면 처음에 근육이 막 아프지만 점점 익숙해지는 것처럼 먹고사니즘에 휘둘리는 것도 점점 줄어들었어요. 처음 세계여행 지르고 나서, 욕실에서 머리에 물 맞으면서 ‘이거 어떡하나. 미쳤지.’ 엄청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저지르고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걸 반복하다 보니까 ‘어, 생각보다 별일 안 생기네.’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까 근육이 생긴 것 같아요. 자신감 이 걱정을 먹어버려요. 그런 캐릭터로 바뀌고 있는 거죠.
에디터: ‘0원의 미스터리’가 있더군요. 두 분의 은행 잔고가 0원에 가까 워져 가면 돈 벌 일이 생기는 신비. 돈 버는 데 도움이 되는 그 많은 잡기술은 어디서 다 익혔나요?
김멋지: 일하면서 배운 것도 있고, 좋아해서 잘하게 된 것도 있어요. 그림 그리기 좋아하니까 그림 실력이 늘고, 영상도 너무 만 들어보고 싶으니까 유튜브 찾아가며 배웠죠.
에디터: 지금도 그 잡기들이 적절할 때 빛을 발하네요. 위선임: 그게 되게 신기해요. 제가 이걸 배워서 돈벌이에 써먹을 줄 은 상상도 못 했어요. 1도. 어느 순간 보니까 이게 하나씩 모 여지더라고요.
김멋지: (자랑스러운 얼굴로)저희 명함에 캘리그래피 넣고 디자인해 서 돈도 받아요!
에디터: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멕시코, 쿠바, 태국, 인도 등등 여행지 리스트가 길고도 깁니다. 718일 동안 온갖 일을 다 겪으셨죠.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에 있으니 독자 여러분은 참고 바랍니다. 결정적인 질문 하나로 압축하자면 2년 동안의 경험 중 뭐가 제일 재밌었나요?
김멋지: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꽤 우왕좌왕) 신기한 장소도 참 많았 지만 결국 저희 둘 다 꼽은 게 사람이 좋았던 곳이더라고요.
에디터: 어디죠? 그게?
김멋지: 둘이 달라요. 선임이는 멕시코, 저는 쿠바가 마음에 들었고.
에디터: 멕시코에 어떤 사람들이 있기에 그렇게 좋았나요. 선임님? 위선임: 이거 혹시 안 나갈 수 있나요? 왜냐하면 (삐이이. 생략)
에디터: 아, 그렇군요. 재밌는데요. 독자분들은 못 읽었겠지만 상당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넘어가고, 그러면 멋지님의 쿠바는?
김멋지: 쿠바에서 100%의 생일을 보냈어요. 제 생일이 12월 24일이 에요. 부럽다고들 하는데, 저는 의외로 외로운 생일을 많이 보냈거든요. 외롭게 애정을 갈구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아서.
위선임: 멋지가 생일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해줄 게 없을까 하다가 숙소에 있던 각국 친구들과 여행 속 작은 여행을 꾸몄어요. 당시 머물던 곳이 쿠바 아바나 한국 인들 많은 숙소였는데, 거기 머물던 사람들 모아서 옆 도시 비냘레스로 갔죠.
김멋지: 도시를 쏘다니고, 밴드 하던 쿠바 친구들이 걔네 연습실 데 려가서 서프라이즈로 제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줬어요. 제가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데, 비도 왔고요, 술도 마셨고요. 음악 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니까. 진짜 너무너무 행복 한 거예요.
에디터: 퇴직금, 펀드 해지한 돈 탈탈 털어 여행을 떠나셨죠. 그 돈으 로 “기깔나게 멋있게 여행하지도, 굶주리지도 않았다.”고 하 셨는데 불편하지 않았어요?
위선임: 불편하죠. 그런데 저희가 불편을 개그로 승화시키는 스타일 이에요. 16인실이었나 서양 남자애들이 엄청 있었던 호스텔 인데 냄새가 심한 거예요. 그때도 카톡으로 “이 향은 뭐지? 톱노트는? 베이스노트는? 이 향은 ‘코코린내’라고 이름 짓 자. 저는 잘 때 코코린내 넘버 5만 입고 자요.” 드립 배틀 벌 어지면 서로 이겨보려고.
에디터: 9개월 만에 여행비 다 씀. 예상했기에 놀라진 않았고, 호주 에서 딸기 패킹 외노자로 9개월 동안 일함. 이 부분이 향후 자발적 백수 꿈나무들에게 중요합니다. 호주 외노자가 되는 과정에서 김치버스의 주인공 류시형 멘토가 도움을 주시죠. “늬들 나중에 호주 들어가면 말해. 소개해줄 사람 있으니까.” 오고가는 술잔 속에 흘려보냈던 그 한 마디를 동아줄처럼 붙 잡고 도움을 구하죠. 호주에 계신 분을 소개해주고, 그분은 대가도 안 바라고 거처를 내어주시고요.
위선임: 생면부지 천사 같은 분들이셨죠.
에디터: 주변에 유달리 좋은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위선임: 저희가 세상 만물에 복이 없는데 딱 하나 인복은 있어요. 에디터: 필요한 순간 흔쾌히 도와주시는 이유는 뭘까요? 전생에 나 라를 구했을까요? 본인 입으로 말하긴 민망할 테니, 대신 말 씀드리면 평소 잘 살지 않았을까요?
위선임: 아마도 평소에 누구에게 도움을 주면 살았겠죠. 아하하하하
에디터: 그리고 낯이 두꺼워요.
위선임: …
에디터: 비난이 아니라. 도와달라고 안 하고 혼자 끙끙대다가 더 힘 들어지잖아요. 그런데 두 분은 호주 워킹홀리데이 가서 멘토 님한테 스스럼없이 “큰일 났다! 도와달라!” 하셨잖아요. 이런 태도가 자발적 백수로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위선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타고난 성향 자체가 사람과 얽히는 걸 좋아하고. 사람을 많이 좋아해요.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요. 도움을 주면 내 어깨가 이만해 져요. 대가가 없어도 상관이 없어요.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저의 대가성 없는 면에 감명을 받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그럴 거로 생각하고 그래서 낯 두껍게도 도와달라고 얘기를 하죠.
에디터: 많은 사람과 얽혀 지내면 사람 때문에 힘들어지는 일도 있지 않나요?
위선임: 그럴 때가 있죠. 생각보다 나를 이용하는 것 같고. 보통 욕하면서 풀어요. 예전하고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그 순간 “내가 지 금 당신 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그렇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라고 솔직하게 말하려는 거예요. 의외로 대부분은 스스로 “미안하다 몰랐다.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아.”라고 하시는 분이 더 많더라고요.
에디터: 그런 경험은 오히려 힘으로 쌓이겠네요.
위선임: 여행 다녀 와서 제일 크게 바뀐 점이에요.
에디터: 그리고 전생에 나라를 구했고.
김멋지: 나라를 구했다면 얼굴에도 조금 신경을 써주시지.
에디터 : ...
에디터: 올해 계획은? 출간 계획이 있죠?
위선임: 출판사에서 저희 블로그를 잘 봐주셔서. 기억이 사라지기 전 에 좀 빨리 책을 써내는 게 우선적인 목표예요.
에디터: 돈 벌랴 이것저것 재밌는 일 하랴, 책 쓰랴 바쁘네요.
김멋지: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엄청 바빠요.
에디터 : 그런 일들은 다 어디서 들어와요?
위선임 : 저희 블로그 보시고 연락이 오시더라고요. 캘리그래피나 캐리커처, 디자인 작업 혹은 글을 좀 재밌게 바꿔 달라는 글 편집.
에디터 : 소통하려고 만든 블로그인데 그게 홍보 역할도 하는 셈이죠. 저도 블로그 보고 연락드렸으니까.
위선임 : 저희가 요새 이야기하는 건데 자기가 뭐 하는지 계속 노출을 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김멋지 : 노출 안 시키면 내가 뭐 하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저희는 백수지만 명함은 있잖아요. 백수에게 명함 필수예요.
에디터: 마지막 질문. 많은 20대 친구들이 미취업의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위선임: 저희 경험을 일반화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20대분 들 귀엔 어떤 조언도 안 들릴 걸 알고 있어요. 저도 취준생 때 마찬가지였거든요. 그럼에도 말을 한다면, 이거예요. 저는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었는데. 당시엔 힘든 이유를 몰랐어 요, 떠나와서 생각해보니까 제가 한곳에 정착해서 사는 성향 이 아니었던 거예요. 계속 새로운 일에 노출되는 데서 제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여러분이 단 하나라도 하고 싶은 일을 질러봤으면 좋겠어요. 그걸 해봤을 때 오는 희열, 걱정 만큼 별일이 생기지 않을 때의 놀라움. 작은 느낌들이 그다 음 스탭을 밥을 수 있는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1. 평소의 선행
백수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야 먹고산다. 평소 선행을 배풀며 살아라.
2. 낯두꺼움 or 당당함
선의를 믿고, 도움이 필요할 때 당당히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3. 잡다한 기술
글, 그림, 영상 등 잡기술이 많으면 한데 어우러져 어느 순간 도움이 된다.
4. 개그감
자발적 백수에겐 이따금 불편한 일들이 생긴다. 불편은 개그로 승화시키면 좋다.
5. 홍보
요즘 뭐하며 사는지 SNS를 통해 알려야 한다. 그래야 무슨 일이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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