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마지막 남길 바램은 무엇인가요
엄혹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노트
지금부터 읽으실 글은 노트 소개를 핑계로 ‘엄혹한 세상을 헤쳐나가 는 법’을 전합니다. 독자들께서도 이쪽을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졸업 평점 2.7점으로 졸업했더니 기업 대부분에 입사 지원이 불가 능하더군요. “글 쓰는 거 좋아하지 않아? 기자는 학점 별로 안 보는 것 같던데.”라는 조언에 잡지사 에디터가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일 도 직업으로 하면 괴로워진다는 말은 반만 사실입니다. 돈벌이는 어 차피 괴롭습니다. 가능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낫습니다.
글쓰기는 제 직업인 동시에 즐거움의 근간입니다. 잠시 무서운 세상 을 상상해보겠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나 금욕주의 독재자가 정권을 잡습니다. 어릴 적부터 재밌는 건 몽땅 금지당한 이 독재자는 아무 것에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죠. 독재자가 즐기는 건 딱 하나, 다른 이의 즐거움을 막는 것입니다. 독재자는 국민들 각자에게 다음 10 가지 목록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공표합니다.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독재자의 금지 목록
(1) 커피
(2) 담배
(3) 술
(4) 섹스
(5) SNS
(6) 모든 영상물
(7) 음악
(8) 운동
(9) 독서
(10) 글쓰기.
전 흔쾌히 운동을 포기합니다. 여러분도 얼른 포기할 게 한두 가지 씩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독재자는 자꾸 하나씩 더 포기하길 강 요하죠. 저는 영상물, SNS, 담배, 음악, 커피, 독서, 술 순입니다. 마지 막으로 섹스와 글쓰기만 남았습니다. 매정한 최후통첩에 마침내 눈 물을 머금고 섹스마저 포기하죠. 그러고 나선 전 무엇을 할까요? 아 마도, 하루의 일상, 언젠가의 아픈 과거, 다가올지 모를 상상을 글로 끼적이며 엄혹한 세상을 버텨나갈 것 같습니다.
독자분 중에도 꽉 막힌 상황에 처한 분이 있을 겁니다. 상상 속 독재자가 그랬듯 현실 은 여러분께 많은 바램을 포기하길 강요하겠죠. 하지만 노트와 펜, 자유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자유롭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쓴 이야기들이 우리 안에 쌓일 때 엄혹한 세상 을 헤쳐나갈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진 속 제품은 브랜드 THENCE에서 나온 손바닥만 한 노트입니다. 문고판 책마냥 두께감도 있습니다. ‘이곳이 아닌 어느 곳’ 표지 속 수 영장 사진이, 그런 느낌을 주지 않나요?
대학내일 이정섭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