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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Apr 24. 2018

소심한 당신에게 SNS는 인생의 득

언젠가 만날지도 모를 인연이 400명이나 있다규!

SNS는 인생의 낭비라고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나처럼 소심한 사람에게 SNS는 인생의 득이다. SNS가 있었기에 친구들하곤 더욱 깊어지고, 좋은 사람들과 얇지만 끈질긴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번 글은 SNS가 소심이들에게 어떻게 유익할 수 있는 지의 이야기.     


방금 확인해보니 나의 페이스북 친구는 600여명, 인스타그램 친구는 400여명이다. SNS 스타에 비하면야 깨알 같은 숫자지만, 난 충분히 많다고 여긴다. 내가 먹고, 입고, 놀러 간 사진을 400명이 봐주고 있어! 400명이 먹고, 입고, 놀러 간 사진을 내가 보고 있어! 방구석에 홀로 누워있지만 세상과 소통하는 기분이 들어 마음에 넉넉해진다.     


사이버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냐?

하지만 SNS 비판론자라면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따지겠지. 그중 한 번이라도 얼굴 본 사람은 몇 명이야? 세어본 적은 없지만 100명 정도 되지 않을까? 그럼 최근 1년 사이에 만난 사람은? 흠...스무 명이나 될까? SNS 비판론자는 실제 친구와 사이버 친구가 매치되지 않음을 거론한 후 마지막 힐난을 날릴 테다. “수많은 사이버 친구 중 꼭 필요한 순간에 무조건 널 도와줄 사람이 얼마나 될 것 같아!”      


하...하지만, 그런 친구는 SNS 이전에도 없었는걸. 펙트 폭행을 멈춰주세요. 흐르는 눈물 좀 닦고 답하자면, 이런 논리는 내게 전혀 어필하지 않는다. 설마 400명이나 되는 인친을 절친이라 여길리 없다. 친구 400명은 감당도 못 하거니와 도리어 끔찍하다(10명 중 한 명만 고민 상담해도 매주 난리통). 무엇보다 모든 인간관계가 절친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이에는 여러 결이 있으며 무엇보다 SNS는 다른 역할이 있다.  

    

소셜 에너지 총량의 법칙

소심이라면 누구나 ‘소셜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절감할 것이다. 남들과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에너지엔 총량이 있다는 법칙 말이다. 꽉 찬 상태가 소셜 에너지 100이라고 치자. 이 에너지는 상대(who)에 따라, 함께 하는 시간(time)에 따라 소모된다. 좋아하는 사람과 점심+커피는 대략 에너지 20이 든다. 억지로 만나야 하는 사이라면 소모량은 2배로 늘어 40. 


저녁 술자리는 소통 수준이 높으니 50. 사회 생활하면 때론 원치 않는 술자리도 가져야 한다. 억지 술자리의 소모량은 좋은 술자리의 2배인 100. 억지 술자리 한 방이면 그 주의 소셜 에너지는 다 썼다고 봐도 된다.     


소셜 에너지가 떨어지면 기력이 쇠해지고 만사에 의욕이 사라진다. 상태를 회복하려면 집에 콕 박혀 잉여로운 시간을 얼마만큼 정도 보내야 한다. 소심한 정도에 따라 최소 2일~10일까지 홀로 있어야(충전해야) 소셜 에너지가 채워진다. 소모량보다 충전량이 부족하면 “세상만사 다 싫어. 사라져 인류”를 외치는 ‘만성 싫어증’에 걸리는데...     


에디터의 인간관계

내가 잡지 에디터로 일하며 가장 힘든 게 바로 끊임없는 만남이었다. 잡지 에디터가 하는 주 업무는 누군가를 섭외해, 만나서 취재해, 기사로 쓰는 일이다. 글도 글이지만 사람과 만남이 먼저다. 에디터 초창기엔 낯선 이에게 전화하는 것 자체만으로 스트레스였다. “안녕하세요. 태평양 매거진의 개복치 에디터입니다. 새로 앨범을 내셔서 인터뷰 요청 차 연락드렸는데 지금 통화 괜찮으신지요?” 두근대는 심장을 달래고자 통화 전 담배 한 대, 해냈다는 안도감에 통화 후 담배 한 대. 폐를 내주고 기사를 얻었달까.     


단발성 연락은 시작에 불과하다. 에디터란 직업 특성 상 일정 규모의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사무실에 홀로 앉아 “나와랏 기사 아이템!”해봤자 아무 기삿거리도 떠오르지 않는 탓이다. 인터넷 검색으로 자료 서칭은 가능하지만 한계가 있다. 잡지 기사처럼 트렌디한 아이템이라면 더욱 그렇다. “요즘 20대 사이에 연트럴파크가 핫하다” 따위가 네이버 뉴스 오를 때쯤 그 소식은 이미 오조오억년 전 벌어진 옛일. 사람들 입을 통해 듣는 생생한 이야기에서 진짜배기 아이템이 나온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괴롭기만 했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에디터가 아니었으면 못 만났을 땐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게 한 내 직업에 늘 감사하지만 그건 그거고 법칙은 법칙인 것. 소셜 에너지 총량 법칙에 따라 난 늘 너덜너덜 지쳐 있었다. 취재를 위한 새 만남이 에너지를 소모시켜 지속적인 만남은 자꾸 뒷전으로 밀렸다. 서너달 연락 안 해도 민망함에 다신 연락 못 하는 소심이 특유의 쑥스러움까지 더해져 내 인간관계는 붕 뜬 상태로 망가지고 있었다. 아까울 만큼 멋진 사람들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 역시 괴로웠다.     



SNS으로 이어가는 얇고 긴 관계

그때 짠! SNS가 등장했다. ‘세상을 더 가깝게’하는 페이스북과 ‘세상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이후 만나는 인연들과는 SNS로 관계를 이어갔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뭐예요?” 그리고 고양이 앞발마냥 조심스런 손길로 ‘좋아요’를 누르며, 가끔은 사소한 댓글도 달며 인연의 끈을 이어갔다. 그 좋아요와 댓글의 의미는 ‘여건이 안 되고 쑥쓰러워 만나진 못하고 있지만 전 당신에게 호의를 갖고 있답니다’ 지나치게 나이브하다며 몰아붙여도 소용없다. 나한테 좋아요는 정말 좋다는 의미니까.     


그러다가 언젠가 내 소셜 에너지가 차오르고, 상대에게 올곧이 내 에너지를 쏟을 의지가 솟을 때면 큰맘 먹고 상대에게 조심스레 카톡을 보내본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저희 이제 볼 때가 되었어요.” 상대는 대부분 신기하게도 “그래요. 언제가 좋으세요”라며 기꺼이 인연의 손을 건네준다. 서른이 넘어서야 깨달은 바는 세상사람 대부분은 의외로 외롭고, 생각보다 마음이 열려있다는 것. SNS를 통해 가느다란 끈이라도 이어두지 못했다면 나 따윈 말도 못 걸었을 것이고 인연은 모두 끊어졌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 더, ‘친구’라고 불릴 만큼 막역한 사이가 되지 않아도 어떤가. 세상엔 다양한 관계의 결이 있고 성정이 예민한 소심이들은 그 다양한 결을 즐길 줄 안다. 온라인 댓글로 재치문담을 나누는 상대는 그 상대대로 소중하고, 비슷한 취향을 좋아해주고 자랑해주는 인친은 그 존재대로 기분 좋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소셜 에너지가 부족한 당신, 사람 사이의 다양한 결을 느낄 줄 아는 당신, 책은 접어두고 스마트폰을 드세요. SNS는 당신 인생의 득이 될지도 모른답니다.     


P.S. 

기껏 올린 글에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을 땐 소심한 마음에 스크래치가 생기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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