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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Dec 09. 2018

우리 삶은 카페O네 BGM과 같아라

인생의 기승전결은 사기. 카페베네 로고송은 좋았는데

좋은 대학생활이란 주제로 모교 리더십 센터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대학생활을 건설적으로 주체적으로 보낼 수 있는 ‘셀프 리더십’의 방법을 대학 후배들에게 가이드해주는 시간이었다. 아마 글을 읽는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네?! 리더십? 좋은 대학생활? 개복치님 그런 분이셨나요? 실망이네요. 책장 덮을게요. 중고 책으로 팔아야겠다.”


잠시만!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닌데 맞지만 아니고... 설명이 필요하겠다.     

나는 자기 삶을 건설적으로 사는 분들을 인정한다.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분들을 낮잡아 볼 이유는 없다. 본인이 느긋한 생활을 좋아한다고 그렇지 않은 이들을 ‘자기계발의 노예’ 정도로 치부하는 자세는 나쁘다고 여긴다. 하지만 내 삶은? 음... 어땠냐 하면.     


대학생 시절, 낮엔 동아리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업을 조금 듣고 동아리방으로 복귀해 잡담을 하거나 기타를 퉁긴다. 6시가 되면 친구들과 술집으로 향한다. 술자리 토크에선 가끔씩 니체와 스피노자, 마르크스도 등장했으나 크게 의미는 없었다. 밤엔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에 열중했다. 프로토스 고수로서 당시 내 인생의 관심사는 초반 질럿 러시 테크트리를 개발이었다(4.5프로베는 내가 창안했다고 혼자 믿고 있다).      


주말엔 방안을 뒹굴뒹굴하며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을 읽든가 먹었다. “음냐 음냐 이거 뭐지? <태엽 감는 시계>? 읽어야지.” “음냐 음냐 이건 뭐지? 오징어 땅콩? MT 때 남은 건가? 먹어야지.” 느즈막히 읽어나 먹고 읽고, 읽고 먹고. 밥 먹고 스타하고. 지금 회상해도 행복한 시절이었는데.     


이런 게으른 생활을 한 내가 리더십 센터 강의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모교 출신 직장 선배에게 속았기 때문이다. “학생들 몇 명이 선배에게 간단한 것 물어보고 하는 거야. 가벼운 마음으로 가면 돼”라는 말에 거절을 못 하고 알려준 장소로 들어섰더니 <언론-행정 분야 지망자를 위한 선배들의 가르침>란 이름 하에 80~90명의 대학생들이 반듯이 앉아 있었다. 하느님 맙소사! 선채로 굳어 있는데 교직원분이 “기자님 오셨어요? 찾기 어렵지 않으셨어요?” 수십 명 앞 빈 좌석을 가리키며, 설마 저 자리는! “저기 앉으시면 됩니다.” 아 나 이런 젠장.     


강의자는 언론사 선배, 행정 분야 선배 각 한 명. 언론사 선배는 ‘나’고, 행정 분야 선배는 대학졸업과 함께 행정고시에 합격해 문화체육관광부에 들어간 여성분이었다. 깔끔한 외모에 앉는 자세가 꼿꼿했다. 여성 사무관이 먼저 강의를 시작했다. 좔좔좔 술술술     


그녀의 대학 시절은 쉽지 않았다. 경제적 문제도 있고 그 외에도 여러 힘든 일을 겪었다. 한때는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힘든 순간에도 자기 목표를 분명히 잡았고, 꿈을 향해 하나 하나 이뤄나갔다. 조그만 목표가 하나씩 이뤄져 나갈수록 더욱 자신감이 붙었고 더 즐겁게 매진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의지와 목표로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 화이팅! 넋을 잃은 상태여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어찌나 설득력 있는지 옆에 앉은 나까지 저렇게 살아봐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목소리도 또렷또렷 듣기 좋았다).     


다음 차례는 나. 대학생 때는 존재만으로도 버거웠다. 술, 게임, 책으로 보냈지만 어쨌거나 취업은 했다. 학점이 너무 낮아 어쩔 수 없이 학점 기준 없는 언론사 시험을 택했고, 나름 노력했다. 어쩌다가 취업해서 직장인이 되니 월급도 꼬박꼬박 나오고 살만하더라. 세상 일은 알 수 없으니 여러분도 화이팅! 보다시피 교훈적 구석이라곤 없다(심지어 난 발음이 웅얼거리는 스타일이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후배들 얼굴은 그야말로 o_o , 담당 교직원 얼굴은 -_-. 후배들은 여성 사무관에게만 질문을 던졌다. 내쪽으론 눈도 돌리지 않았다. 모교 측은 이런 행사에 다신 나를 부르지 않았다. 강의 후 슬픈 얼굴의 교직원 분께선 계좌 번호를 물어보셨다. 돈 주는 건지도 몰랐고 얼마 주는 지도 몰랐다. 나중에 보니 액수가 꽤 컸는데, 금액을 알았다면 사정사정을 해서라도 안 받았을 테다. 나에게도 양심은 있으니. 내 삶에 왜 이리 교훈이 없는가. 내 인생엔 기승전결이란 게 없는가. ‘리더십 센터 사건’을 겪고 고민에 빠졌다.     


다음 날 카페O네에 혼자 앉아 아이스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전 11시 점심시간도 안 됐는데 카페 스피커에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Creep>이 흘러나왔다. “나는 별것 없는 놈. 나는 이상한 놈.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오전에 틀 노래는 아니지 않나. 그나저나 나야 말로 여기서 뭘 하는 걸까?     


다음 나온 노래는 느닷없이 유행하던 팝 댄스곡 <On the metro>. “나는 제일 좋아하는 파티 장소에 있었어. 제일 좋아하는 소다를 홀짝이며~” 인생은 파티? 맥락은 어디? 그리고 나오는 카페O네 테마곡. 김건모가 감미롭게 노래합니다. “나의 사랑의 노래 울려 퍼지고 내 어깨에 기대 oh my love 여기 카페O네와 함께~” 사랑이라. 그런데 또 “이것은 사랑노래가 아니야!” 본조비의 <This ain’t love song>이다. 아니 대체 이건 무슨 악취미의 선곡이지? 도대체 못 들어주겠구먼. 그런데 갑자기 뇌 속에서 개똥철학이 꿈틀댔다.     


아냐 아냐. 이 선곡 속에 인생의 진리가 있어. 사실 진짜 인생은 무작위 사건의 연속일지 몰라. 아침부터 비참하고, 점심쯤 사랑이 찾아오는 줄 알았더니 갑자기 모든 게 박살 나는 것. 개인의 노력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인생 경로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것이지. 우리가 인생에 기승전결이 있다고 믿는 건 무엇이든 일관된 스토리로 기억하려는 우리의 ‘서사적 자아’가 만든 환영일 뿐이다. 인생은 A→B→C→D→E가 아니라 A→D→B→E→C.     


나 역시 잡지 기자 시절 인터뷰 기사를 쓸 때마다 작위적 스토리텔링에 동참해왔다. 인터뷰 기사란 게 일관적 흐름과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인생에 벌어진 사건 중 주제에 맞지 않는 건 묻지 않고, 답해도 뺀다.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곁가지는 쳐내고, 사실관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흐름을 조정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토리는 깔끔하고 그럴듯하다. 적어도 이야기는 된다. 하지만 깔끔한 스토리가 그 사람의 일생을 제대로 보여주는지는 늘 의문이었다. 우리가 곁가지라고 쳐낸 것들에 진실이 담겨 있진 않을까. 내가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개성은 내 인터뷰에 실려 있지 못했다.     


소설가 최민석씨가 쓴 에세이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는 그야말로 잡다구리한 일상을 담고 있다. 아르바이트하고 돈 떼인 이야기, 민방위훈련의 풍경, 작가들과 치던 탁구 게임. 무명 작가 2명(최민석 작가는 무명에 포함)과 유명 작가 2명이 복식 탁구 게임을 했다. 하늘도 무심하게 무명들이 유명들한테 탁구도 판판이 깨졌다. 무명 작가들은 ‘무명 작가답게’ 온갖 얍삽이를 동원해 몇 판 이기지만 유명 작가들은 ‘유명 작가답게’ 얍삽이를 간파하고 결국 승리를 따낸다. 최민석 작가는 매우 억울해하면서 글을 끝낸다.


여기에 무슨 교훈이 있느냐고? 정말 삶에 교훈이 있을까? 억지로 끄집어내면 약자는 항상 질 수도 있으며 그땐 그냥 억울해하면 그뿐이라는 것이 교훈이라면 교훈이겠다. 최민석 작가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는 삶의 이야기들은 사실 자질구레한 일상의 조합입니다.”     


만약 내 삶이 영화라면, 수미쌍관식으로 다시 한 번 강연할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멋지게 말하겠지. “우리 삶 앞에 펼쳐지는 사건은 뒤죽박죽이 며 때론 우리 힘으로 제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맥락 없는 일상을 헤쳐나가는 힘은 처칠이 말했듯 Keep calm & Carry on(닥치고 할 일을 하라)이겠죠. 여러분 화이팅”     

내 삶은 영화가 아니기에 이럴 기회는 없을 것이다. 강의를 참 못했던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되겠지.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카페O네 BGM처럼 스토리 없음을 알기에 억울한 채로 사는 것 역시 받아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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