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 행복해?"라는 물음에 대한 TMI
결혼을 빨리 한 편이라 친구들에게 결혼생활 행복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비혼 혹은 결혼의 갈림길에서 참고할 의견을 묻는 것인데 그때마다 답하기가 어려웠다.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는데. 행복하다고 봐야 하나?” 행복이 넓고 주관적인 개념이라 판단을 못한 것. 며칠 전 업무차 들었던 긍정심리학 특강에서 행복을 이루는 일상의 감정에 대해 배웠다. 심리학자 바바라 프레드릭슨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10가지 긍정적 감정을 소개했다. 아래와 같은 감정을 살면서 자주 느끼면 그 삶은 ‘행복’에 가깝다고 한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1.기쁨(joy)
우연히 방문한 음식점이 취향에 딱 맞는 맛집이라거나, 평소 꼭 가보고 싶던 호텔을 특별할인 기간에 싸게 예약했을 때의 기쁨, 즉 우리가 흔히 기쁘다고 할 때의 그 기쁨이다. 행복이라고 해서 이루기 어려운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다. 기쁜 일이 자주 발생하는 삶은 행복하다는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다. 그런데 정말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부는 이 기쁨 추구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아주 열심히 기쁨을 추구한다. 강북권 최고의 파스타 집을 찾는다고 여기저기 묻고 맞보고 다닌다.
2. 재미(fun)
방송 <놀면 뭐하니?>를 보며 깔깔댈 때 바로 이 깔깔이 재미다. 고작, 재미? 들으면 들을수록 행복이 별 게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여하튼 자주 재밌어하는 삶도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나도 자주 웃고, 아내도 자주 웃는다. 물론 아내는 화도 자주 내는데. 음… 뭐 어쨌든 자주 웃기도 하니까 괜찮다. 내 할아버지는 생전에 자주 웃는 분이 아니셨다. 남자는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온 분이라 그랬다. 손주인 나를 볼 때가 드물 게 웃으실 때였는데 평소 경험이 적어 자연스럽게 웃지 못하고 인상을 찡그리시며 웃었다. 할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 분의 삶이 행복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근엄한 삶도 가치는 있겠으나 행복한 삶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
3.감사(gratitude)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자주 느끼면 행복해진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 가 의문스럽다. 나와 아내는 서로 자신에게 감사하라고 옥신각신한다. “오빠는 나 없이 혼자 살았으면 인스턴트 음식만 먹으면서 건강 다 망쳤을 거야. 다행인 줄 알아.” “어이구. 이것 봐라. H(아내 이름)는 내가 아니었으면 솔로로 혼자 살았을 걸. 나니까 H 성격에 맞추는 거지.” 서로 자기 덕에 행복하다고 우기는데. 솔직히 말해 아내에게 감사함을 느낄 때가 많다. 남우세스러워서 차마 말로는 못할 뿐. 물론 이 글도 아내가 볼 것이기에 고마운 점은 생략. 나 덕에 행복한 거라고!
4. 희망(hope)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거란 감정이다. 예전에 고양이가 매일 같은 음식만 먹어도 행복한 이유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인간과 달리 고양이는 ‘서사적 자아’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고양이는 “오늘도 이거 먹고, 내일도 이거 먹고. 내년도 오늘과 별 다를 게 없겠지. 내 인생은 대체 뭔지.”라고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간은 오늘의 행복으로만 살 수가 없다. 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존재이고, 희망이란 감정을 자주 느끼면 행복해진다고 한다.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한 우리 부부에게 사람들이 자주 전하는 걱정이 나이 들어서 둘만 있으면 외롭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다음 세대가 없으면 어떤 희망이 있냐는 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 말처럼 희망 없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남들 눈엔 반복되어 보이는 삶 속에 사소한 발전을 찾기로 했다. ‘내년엔 돈을 모아 넓고 푹신한 소파를 사야지. 그 소파에 함께 앉아 영화를 보면 행복하겠지.’ 아내는 회사에서 승진을 하고, 난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을 쓰고. 5년 뒤 혹은 10년 뒤 대단히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우리 곁의 사소한 변화들은 있을 것이고, 그 정도 희망의 감정이면 우리 부부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 평온(serenity), 흥미(interest), 자부심(pride), 경외(awe), 영감(inspiration), 사랑(love) 등 여러 감정이 있는데, 더 궁금한 분은 인터넷 검색 '바바라 프레드릭슨 긍정적 감정'으로 찾아 보시길. 이들 감정 중 자주 못 느끼는 감정이 있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추구해보라고 교수님은 덧붙이시기도 했다. 강의에서 특히 내 귀에 속 꽂힌 것은 감정의 강도가 아닌 빈도가 행복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조사 결과였다. 대단한 재미, 큰 기쁨을 가끔 느끼는 사람보다, 자잘한 재미, 사소한 기쁨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스스로 더 행복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세상 모든 부부들처럼 우리 역시 힘든 일을 겪었다. 직장에서의 힘든 일도 있었고, 가족 간의 갈등도 있었다. 돈 문제로 머리를 싸맨 적도 있다. 그런 일들은 아픔으로 쌓여 둘의 마음 안에 자리잡았다. 문뜩문뜩 튀어나와 잘못된 언행을 하게 만들었고, 우리 삶을 안 ‘행복’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그런 마음을 고치는 방법은 위대한 사람의 격언이나 대단한 비법이 아니다. 자주 재밌으면, 혹은 자주 흥미로우면, 기분 좋은 느낌들은 ‘인생이 살 만하다’란 생각에 근거가 된다. 기분 좋은 느낌들이 은행 적금 쌓 듯 쌓여 언젠가 찾아오는 힘든 상황도 참아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P.S. 당신이 만약 맨날 좋은 기분만 든다면?
그건 문제다. 바바라 프레드릭슨은 <내 안의 긍정을 춤추게 하라>라는 책에서(책 제목이 유치하지만 내용은 괜찮다) 부정적인 감정의 역할을 말했다. 우울, 좌절 같은 부정적 감정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실수를 반성하게 만든다. 맨날 기분 좋아 대책 없이 낙천적이면 큰일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의 적절한 비율은! 11 대 1에서 최대 3대 1까지. 3번 즐거울 때 1번 우울한 것까진 괜찮다고.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