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루하루

이 또한 그때는 예상치 못한 삶

by 오늘


아침에 5시~6시쯤, 재재가 잠이 깨서 아빠 아빠 하고 나를 부르면(나는 엄마지만 재재는 아직 아빠만 하니까) 재재와 눈을 맞추고, 재재와 나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행복한 대화를 잠시 나눈다. 나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재재에게 모빌을 틀어주고 옆에 눕는다. 그러면 재재가 싫증을 내기 전까지, 한 10분 정도는 졸 수 있다. 재재가 이이익 소리를 지르며 온몸을 휘고 뻗대면 이제 더 이상 방에 누워있을 수 없다. '재재야 엄마가 안아줄까?' 하면 재재가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응!' 한다.


침대에 누워있는 재재를 가운데에 두고 양 발을 벌리고 서서 아래로 두 손을 내밀면서 '재재야 손!' 하면 재재는 뭔지 안다는 듯 한번 씩 웃은 뒤 우선 오른쪽 팔을 처어언..처어언히 드으을어어오올려어서어 마주 본 내 왼손에 얹는다. 그리고 이제 더 힘겹게....... 천천히... 왼쪽 팔을 들어 올리기 시작한다. 내 오른손에 재재의 왼손이 닿기 직전 결국 나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내가 재재의 손을 잡는다. '잘했어 재재!' 성취감에 소리를 내며 웃는 재재를 안아 들고 거실로 나온다.


거실 매트 한가운데 재재를 눕히고 테이프형 밀대를 꺼내서 밤 사이 쌓인 매트 위 먼지를 치운다. 지직 지지직 소리를 따라 재재는 고개를 이리 휙 저리 휙 젖히며 내 청소를 구경한다. 밀대를 정리하고 분유 제조기로 분유를 내린다. (돌이 지나면 분유를 끊는 경우가 많지만 14개월인 재재와 나나는 아직 이유식이 잘 되지 않아서 여전히 분유를 보충하여 먹는다.) 분유를 아주 조금 덜어 강직약을 섞는다. 다행히 강직약은 쓴 맛이 별로 없어서 재재가 거부감 없이 받아먹는다. 숟가락으로 약 탄 분유를 다 떠먹이고 나면 이제 젖병으로 본격적으로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재재는 잘 먹지 않는다. 모빌이나 노래 나오는 장난감을 보여주면서 먹으면 그래도 조금 먹는다. 아침에는 입맛이 없는지 60~70ml 정도를 먹는다. 재재가 조리원에서 한 끼에 먹던 양이다.


재재가 분유를 더 이상 안 먹겠다고 거부하면 남은 분유를 보온 포트에 넣고, 밤에 입혔던 수면 조끼를 벗기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그때쯤 나나의 방에서 에오오오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나도 일어난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나는 보통 아침에 재재가 먹다 남은 분유를 먹는다. 나나도 아침에 갑상선 약을 먹어서 분유에 약을 타서 먹는다. 나나는 아침에 140ml 정도를 먹는다. 평범한 아이들에 비하면 이것도 적게 먹는 편이지만 모든 것은 상대적이므로 나나는 우리 집에서 분유를 아주 잘 먹는 아기이다. 재재에게 분유를 먹이면서 속이 꽉 막혔다가 나나를 먹이면, 젖병에 분유가 줄어들면서 보르륵 보르륵 거품이 나오는 것을 보기만 해도 통쾌하다.


그러고 나면 아직 일곱 시에서 여덟 시쯤, 아이들과 달리 영양분이 그리 많이 필요하지도 않은데도 배가 급격히 고파온다. 엄마가 거실로 나와 아이들과 놀아주실 동안 허겁지겁 아침밥을 먹는다. 엄마도 계시고 밥은 천천히 먹어도 되는데 괜히 욱여넣어 먹게 된다. 금세 배가 두둑해지면서 살이 찌는 느낌이 든다. 슬퍼할 시간은 없다. 밥 먹은 것을 정리하고 나면 재재에게 아침 이유식을 먹일 시간이다.


처음부터 이유식은 만들 생각이 없었다. 애들이 아픈 것과 별개로 칠칠맞고 손이 느린 나에게는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인기 많은 브랜드의 이유식을 사 먹인다. 내가 하는 것보다 더 영양가 있고 맛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이들은 이제 일반식을 먹거나 무른밥정도를 먹을 월령이지만 재재는 입자가 큰 음식을 아직 잘 삼키지 못해서 7~8개월 아기들이 먹는 중기 이유식을 먹는다. 퓌레보다 아주 조금 더 입자감이 느껴지는 정도인데 다행히 재재가 이것은 거부하지 않고 먹는다. 그렇다고 덥석덥석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은 아니고, 장난감을 들이대며 놀아주면 기분이 좋아서 입을 벌릴 때 얼른 숟가락을 집어넣어 먹여야 한다. 나는 이제 재재 먹이기 도사가 됐다. 요즘엔 그래도 재재가 삼분의 일 정도는 본인 의지로 입을 벌려서 받아먹는다. 아주 대견하다. 재재는 한 끼에 이유식 150g을 보통 먹는다. 분유에 비하면 아주 잘 먹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재재는 앉아서 스스로 체간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아기의자를 꽤 눕혀서 30도 각도쯤으로 기대 누운 상태로 먹이거나, 아니면 베개에 기대 뉘여서 먹이기도 한다.


나나는 입자가 커도 꽤 잘 먹어서 무른 밥 형태의 이유식을 먹는다. 그러다 보니 재재와 나나의 이유식을 따로 주문한다. 헷갈려서 이제 내가 나나의 이유식을 주문하고 남편이 재재의 이유식을 주문한다. 나나는 앉을 수 있어서 아기의자에 앉혀놓고 이유식을 먹인다. 그런데 나나는 이유식을 그냥 잘 안 먹는다. 처음 몇 입만 겨우 받아먹고 나서는 밥 주는 사람을 노려보며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새콤달콤한 과일 퓌레가 섞여야 기꺼이 입을 벌리는데, 요즘에는 퓌레가 섞였는데도 거부할 때도 있다. 너무 먹기 싫을 때는 온 집안이 떠나가라 울어 재낀다. 요즘 하루에 한 번은 그렇게 이유식을 먹다 우는 것 같다. 그래도 엄마는 무슨 요령인지 대개 끝까지 먹이시는데 나는 중간에 포기할 때도 많다. 언젠가는 잘 먹겠지... 왠지 화가 난 내 맘을 위로하며 조금 뒤에 다시 분유를 탄다.


나나가 분유라도 잘 먹어서 다행이긴 하다. 나나는 사실 아직 분유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은 게, 분유병을 가져다 주면 두 팔을 번쩍 들고 환영하는 표정으로 입을 아 벌리고 있다. 사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이유식 안 먹을 때 나도 모르게 미워지려고 했던 맘이 쏙 들어가게 된다. 그냥 우유도 한 번씩 먹여보려고 하는데 이건 또 절대 거부한다. 내 입에는 아무리 먹어봐도 분유보다 우유가 훨씬 맛있는데, 나나 입맛은 참 모를 일이다.


어찌 됐든 배가 부른 애들은 기분이 좋고, 덕분에 잠시 혼자 노는 시간을 가져 준다. 재재는 엎드리게 해 주거나 재재용 범보 의자에 앉혀서 장난감을 놓아주고, 나나가 매트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아기 울타리 문을 닫아주면 엄마는 늦은 아침 식사를 하실 수 있고 나는 애들을 중간중간 쳐다보며 젖병 설거지를 할 수 있다. 커피도 한잔 얼른 마시고 귤을 까먹다가 한 알의 껍질을 벗겨 속살을 여러 갈래로 쪼개서 애들한테 먹여주기도 한다. 재재는 처음에는 새콤한 맛을 싫어했는데 이제는 귤도 사과도 잘 먹는다. 바나나는 단 맛이 강해서 그런지 둘 다 환장한다.


잘 놀던 애들이 별안간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보통 졸린 거다. 나나의 경우는 아니면 응가 때문일 수도 있다. 나나는 변 보는 것을 무척 힘들어한다. 저긴장인 아이들은 근육이 약하고, 배에 힘을 잘 주지 못해서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엄마가 고안한 방법은 나나가 응가를 할 때 나나의 양쪽 허벅지 아래를 잡고 푸세식 화장실에 쭈그려 앉은 것 같은 자세를 만들어 주는 거다. 그러면 전보다는 수월하게 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너무 힘든지 응가를 마친 나나의 머리를 쓸어 보면 뒷머리와 목이 다 젖어 있고, 나나는 생색을 내듯 대성통곡을 한다.


그리고 응가가 아니라면 졸린 건데, 나나를 재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나나가 진짜 졸려할 때는, 안고 토닥거려 주면 자장가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어 버릴 때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꼭 안아주면서 계속 토닥거리면 보통 10분 안으로 잠에 든다. 착한 것. 재재는 낮잠을 아직 내내 안고 재워야 한다. 침대에 뉘이면 금방 깨버리고, 충분히 자지 못한 재재의 짜증은... 말도 못 한다. 그래도 안고 재우면 금방 잘 자서, 나는 재재를 안고 한 시간가량 같이 졸거나 휴대폰을 하며 휴식시간을 가지거나 할 수 있다. 어깨와 허리가 조금 삐걱거리긴 하지만 아직은 참을만하다.


아이들이 오전 낮잠에서 깨면 이제 점심을 먹일 시간이다. 이렇게 두 세 텀으로 반복하고 나면 하루가 가는 것이다. 중간에 재활 치료가 있으면 채비를 해서 다녀오고, 재재의 홈티 선생님이 오시는 날에는 시간에 맞춰서 재재를 먹이고 재워 놓아야 한다. 나머지는 똑같다. 아, 오후 4시가 되면 남편이 설정해 둔 대로 로봇청소기가 일을 하기 시작한다. 재재는 처음에 로봇청소기를 너무 싫어해서 한동안 사용하지도 못하게 했었는데 다행히 적응이 되었는지 지금은 재미있어하는 것 같다. 나나는 뭐, 사람한테고 사물한테고 원래 기본 모드가 '좋아!'인 것 같다. 로봇청소기 소리가 들리면 둘 다 하던 것을 멈추고 눈이 땡그래진다. 그래서 요즘엔 종종 관람 시간을 가지게 해 준다. 혹시 나나가 로봇청소기를 만지거나 할 것을 대비해서 나나를 매트 가드 안쪽에 둔다. 그러고 나서 로봇청소기가 잘 보이는 자리에 재재의 의자를 세팅해 준다. 그러면 나나가 재재 곁으로 다가가 의자에 자연스레 손을 얹고 무릎을 세운다. 그러고는 둘이 한동안 멍하니 로봇청소기를 관람한다. 엄마와 나의 자유시간이다.


저녁이 되면 아이들 밥을 먹이고 나서 바나나를 으깬다. 재재에게 멜라토닌 알약을 먹이기 위함이다. 재재가 입자감이 큰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하다 보니 알약이 아주 작은 편인데도 어떻게 먹여야 할지가 우리에겐 큰 고민이었다. (재재는 갈린 소고기도 조금만 큰 덩어리로 있으면 구역질을 한다.) 물로도 먹여보고 이유식에 섞어서 먹여보고 했는데 답은 바나나였다.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좀 더 목구멍을 열고 먹는 것인지, 으깬 바나나를 듬뿍 퍼서 그 안에 알약을 넣어 주면 재재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꿀꺽 삼키고 금세 다시 입을 벌린다. 그만큼 바나나가 너무 맛있나 보다. 그 맛있는 걸 치사하게 재재에게만 줄 순 없으니 나나도 저녁마다 함께 바나나를 얻어먹는다. 그래서 저녁에 바나나를 먹는 것이 아이들 루틴이 됐다.


이제 재재는 '바나나 줄까?' 하면 표정이 밝아지고 눈이 빛나면서 응! 한다. 재재는 무슨 얘기를 해도 응 하고 대답을 잘 하긴 하는데, 이건 정말 알아듣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나는 아직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는지 바나나를 으깬 그릇을 들고 오면 그때서야 웃으면서 맹렬하게 달려든다. 재재 한 입, 나나 한 입 바나나를 먹이는 시간이 나에게 (아마 애들에게도)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뭐라도 이렇게 잘 먹는걸 다른 때에는 잘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거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이때에야 비로소 느끼는 것 같다. 그래봤자 작은 바나나 반 개 정도를 둘이 나눠먹는 거라, 가장 작은 이유식 숟가락으로 세 네 입정도씩 먹으면 그릇은 동이 난다. 행복의 순간은 짧지만 그래도 결국엔 그 짧은 순간이 하루 전체를 예쁜 기억으로 칠한다.


바나나까지 먹으면 구강 티슈로 아이들 입 안을 한 번씩 닦아준다. 재재는 아랫니 두 개, 윗니 하나가 났고 나나는 아직 아랫니 한 개만 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데 발달이 늦는 아이들이 이가 늦게 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치아가 아직 별로 없고 그마저도 끝까지 난 게 아니어서 구강티슈로 이를 한 번씩 매만져주고 잇몸을 한 번씩 슥 닦아 준다. 그리고 그런 김에 재활 시간에 배운 구강 마사지를 해 준다. 나중에 밥을 씹어 먹고 말을 하고 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해서 짧게라도 열심히 해 본다.


나나는 할머니와 잠에 들고, 나는 재재가 완전히 늘어져 잠들 때까지 안고 재우다가 슬며시 침대에 내려놓아 본다. 침대에 누워서도 재재의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으면 재재가 엎드려 잘 수 있도록 몸을 돌려준다. 재재는 엎드려서만 오래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재재 방의 홈캠을 거실 태블릿 화면에 띄워놓고 재재가 잘 자는지 확인하면서 넷플릭스도 보고 친구들과 수다도 떤다. 때때로 재재가 깨어나면 다시 안아 들었다가 잠들면 뉘이고를 몇 번 반복하기는 하지만 재재는 전에 비해서는 아주 잘 자 준다. 그래도 혹시나 재재가 너무 자주 깰 것을 대비해서 늘 남편이 새벽에 교대를 해 준다.


드디어 재재가 정말로 깊이 자는 것 같으면 나는 거실 매트 위에 펴 둔 이불에 들어가 누워 휴대폰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애들이 언제쯤 일반식을 먹을 수 있을까, 젖병 설거지는 대체 언제까지 하게 될 것인가, 그런 한탄을 조금 하다가 생각이 더 나아가면, 재재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나의 삶은, 하는 어두운 곳까지 잠시 다녀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또 그 덕에 오늘 하루 이렇게 평범하게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더 확실히 깨닫게 된다.


다음 주에는 재재의 뇌 MRI 촬영이 있다. 신생아 때 이후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보기 위한 것 같다. 작년 초에 해 둔 유전자 검사 결과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 다른 유전자 검사도 새로 했다. 그런 일들을 할 때마다 내 아이가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평범하지 않은지 느끼게 돼서 그 자체로 무겁다. 또, 별다른 기대도 없고 더 이상 절망할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검사 결과는 언제나 무섭다. 그렇지만 재재와 나나는 앞으로도 그저 나의 재재와 나나일 것이고, 오늘처럼 그냥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새 그날들이 와 있고 또 지나갈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전에도 지금도 그저 오늘을 사는 것이다. 먹이고, 재우고, 노래를 부르고, 마주 보고 웃고, 젖병을 씻고, 바나나를 으깨는 일들.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나는 조금씩 더 튼튼한 내가, 더 걱정 없는 딸이, 더 든든한 아내가, 그리고 재재와 나나의 진짜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 두서없고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면서 이야깃거리들을 채워가지고 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