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흑흑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진짜일까. 임신을 하고 자식이 하나가 아니게 될 것임을 알았을 때부터 조금 궁금했었다. 재재와 나나를 막 낳고 나서 한동안은 그런 생각을 할 생각도 못 했다. 둘 다 기가 막히게 아픈 손가락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누구 하나를 더 사랑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몸과 마음을 더 쓰게 되는 존재는 생기는 것 같다. 재재와 나나를 양육하는 데 있어 내가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할애한다고 가정해 본다면, 나는 두 손과 한 발은 재재에게 쓰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나에게는 나머지 한 발만 쓰고 있는 것이 된다. 그게 맞다. 나의 육아를 한 번이라도 지켜본 사람들은 이것이 절대 과장이 아님을 안다.
재재는 신생아기가 지나고부터 극도로 예민한 성정을 드러냈었다. 급기야는 목욕하고 기저귀를 가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24시간 사람에게 안겨서만 살던 시기도 있었다. 기분이 좋아 보일 때에도, 잠에 깊이 든 것처럼 온몸이 축 늘어졌을 때에도 품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눈을 번쩍 뜨고 숨도 쉬지 않고 울었었다. 그래서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서 안겨 다녔다. 그 시기에 재재가 낯까지 가렸었다면 나는 아마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정말 많이 나아져서 재재는 요즘 한동안 누운 채로 모빌을 보거나, 자기 손을 위로 뻗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손 구경을 하고 놀기도 한다. 돌 지난 아기가 할법한 행동이 아님을 알지만 나는 이런 장면을 보면서 아직도 때때로 감격하고 재재에게 칭찬을 퍼붓는다. 사람 몸에서 떨어져서 저렇게 혼자 놀다니. 저렇게 안정되다니. 우리 재재가 말이다.
그렇지만 재재는 여전히 몸을 혼자 움직이는 데에는 제약이 더 많기 때문에, 앉아서 놀게 하려면 범보의자에 앉혀줘야 하고, 엎드리고 싶어 하면 뒤집어줘야 하고, 몸을 움직이려다 잘 안 돼서 짜증내면 달래주고 도와줘야 한다. 아직도 재재의 거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손이 필요하다.
나나는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던 시절에도 배고플 때 말고는 크게 울고 보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나가 집에 와서 보여준 모습은 재재만 80일간 돌보았던 엄마, 남편, 나로서는 여러 번 충격을 받을 정도로 정말 정말 정말로 순했다.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면 혼자 놀고 혼자 잤다. 처음에는 그간 가족과 떨어져 신생아중환자실에 혼자 있었을 나나가 안쓰러워 일부러 안아주고 놀아주려고 노력하긴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수시로 악을 지르고 울어댔던 재재 때문에, 다시 시간이 좀 지나자 분명 나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야지 다짐했었는데도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재재를 안고 있고, 나나는 아기 쿠션 위에, 아니면 바운서 위에 묶여서 모빌을 구경하고 있게 됐다.
다행인 건 나나는 한참 동안 가만히 누워서 모빌을 구경하면서도 내내 손을 파닥거리다가 갑자기 환하게 웃었다가 옹알이를 했다가, 뭐가 그리 좋은지 아주 즐겁게 바빠 보였다. 아기체육관에 뉘여 놓으면 손과 발을 팔랑팔랑 움직이면서 매달려있는 인형들을 쉬지 않고 쳤다. 덕분에 우리는 재재 때문에 나나를 방치했다는 죄책감은 별로 느끼지 않을 수 있었고, 대신에 나나의 행동들이 너무 귀엽고 고마웠다. 나나야 너 덕분에 살았어. 매일 얘기했다.
지금의 나나는 자기 침대에서 자다가 눈을 뜨면 혼자 뒹굴뒹굴 하다가, 발을 잡고 놀다가, 앉았다가 누웠다가를 반복하다가, 심심해지면 침대에서 거꾸로 미끄럼틀을 타듯 내려와서(저상침대 아래에 매트가 깔려있음) 자기 방 구석에 있는 장난감의 버튼을 눌러 노래에 몸을 흔들거나, 아니면 열린 방문을 통해 나와서 거실 매트 위로 올라온다. 때때로 전선 쪽으로 가거나 빨래더미에서 손수건을 끄집어내려 입에 집어넣기 때문에 눈을 뗄 수는 없지만, 정말 그냥 눈만 안 떼면 된다. 요즘은 자기주장이 강해져 싫은 것은 절대 안 하면서 밀어내고 울기도 하고,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기도 하고, 이유식도 잘 안 먹고, 어려운 점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아주 귀여운 수준이다.
재재는 많이 나아졌음에도 워낙 타고나길 예민해서 그런지 분유를 먹을 때도 이유식을 먹을 때도 주변에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집중되는 요소가 있으면 그쪽으로 고개를 훽 돌리고 먹기를 중단한다. 잘 때도 예민한 건 당연. 어떨 때는 목 가다듬는 소리만 내도 깬다... 그러다 보니 재재가 밥 먹거나 자고 있을 때는 집안 누구도 찍소리도 못 낸다. 우리야 이제 재재 눈치보기의 달인이 되었지만 나나에게는 이것을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 문제다. 나나는 재재를 재미있는 장난감으로 여기는지, 자신의 시야에 재재가 들어오면 바로 우다다다 기어 와서 머리카락을 당기고 얼굴을 만지고 재재가 먹는 것에 괜히 관심을 보이며 재재의 식사를 방해하게 된다.
그래서 보통 재재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 나나는 자기 방으로 격리된다. 재재가 잠들면 나나가 좋아하는 소리 나는 장난감들 모두의 전원이 꺼진다. 아무리 두드려도 소리를 내지 않는 장난감에 나나가 답답해서 혹여나 소리를 지르면, 또 자기 방으로 격리된다. 반면 나나 자신은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주변 상황은 크게 상관이 없다. 아주 큰 소리에도 보통은 꿈찔 하고 마저 잘 자는 편이다. 그래서 나나가 잘 때에도 재재는 아무 제약 없이 거실에서 깔깔 웃거나 소리를 지르고 놀 수도 있다.
재재는 심심하거나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짜증을 심하게 낸다. 그럴 때 몸을 움직여주거나, 아니면 장난감을 만질 수 있게 해 주거나 하려면 무조건 내가 도와주어야만 한다. 간단한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안쓰럽다. 그래서 재재가 징징거리면 나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재재에게 달려가게 된다. 반면 나나가 징징거리거나 울면 우선 나나가 움직이다가 어디에 머리를 갖다 박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고, 별 일이 없는 것 같으면 응 나나 잠깐만~ 하고 하던 일을 우선 다 하게 된다. 나나가 안아달라고 팔을 벌릴 때에도, 물론 안아줄 때가 많긴 하지만 어떨 때는 다른 놀이로 유도하기도 하고, 아니면 반응을 보고 싶어 거절하기도 한다.
요즘 날들의 어떤 하루를 꼽더라도 10년 뒤쯤의 나나가 알게 되면 서운함에 치를 떨다가 나에게 차별했다고 항의를 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나나에게는 정말로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을 거다. 엄마는 나나를 두고 '옆집 애기 같다'고 말한다. 옆집 애기처럼 밥만 주고 지켜만 본다고. 엄마도 나나에게 미안해서 자조적으로 하는 얘기다.
나나도 살다 보니 이 사태를 도저히 못 참겠는 건지, 아니면 그냥 그럴 때가 된 건지, 나나는 요즘 안 하던 엄마 찾기를 하기 시작했다. 손님이 오면 재재는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당연히 더더욱 내 품에 있고, 반면 누구에게든 눈웃음을 치는 나나는 손님 몫이 되었었다. 나나가 워낙 무던하고 친화적인 덕분에 육아 경험이 없는 친구들도 나나를 무리 없이 돌봐줄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부터, 낯선 사람이 안으면 나나가 울기 시작했다. 특히 그 울음이 처음 보는 울음이었는데, 평소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우는 게 아니라, 입을 비죽비죽 내밀고 마치 무서운 것을 본 것처럼, 혹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우는 거다. 그리고 나서 필사적으로 내 쪽으로 몸을 내밀고 팔을 벌리는 거다. 재활 치료 시간에도 내가 있든 없든 상관없는 나나였는데 요즘은 잠깐 2,3분정도 화장실만 다녀와도 나를 찾으며 울기 시작했다. 솔직히 너무 귀엽고 기특한데, 한편으로는 걱정이 된다. 왜냐면 당연히 내가 초래한, 그렇지만 안 그럴 수 없었던 행동의 결과로 재재는 내 껌딱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재재는 요즘 성격이 많이 좋아져서(?) 내 품에 안긴 채로는 낯선 사람들을 봐도 잘 웃고 옹알이도 한다. 하지만 낯선 사람에게 안기는 순간 눈꼬리와 입꼬리가 동시에 내려가고 곧바로 뿌앵 하고 운다. 겨우 친해져서 안겨 주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아 맞다!' 하는 표정이 되면서 운다. 밤에 잘 때에는 아빠도 거부한다. 지금 나나는 할머니와 잔다. 다행히 잘 잔다. 시간이 지나 엄마의 육아 도움이 끝나게 되면 아마도 나나는 혼자 잠들어야 할 것 같다. 재재가 몸을 맘대로 할 수 있기까지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재재가 잠드는 것을 도와주어야 할 것 같다. 아주 어릴 때야 그냥 그런 줄 알고 자겠지만, 나나가 더 커서 왜 쟤만(재재) 계속 엄마랑 자는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고 혹여 그게 상처가 된다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가끔씩 하게 된다.
그러니까, 생각할수록 나는 재재와 나나를 상당히 차별하고 있는 것 같다. 근데 당분간은 이런 방식을 유지할 수밖에 없지 않나도 싶다. 그렇다. 정당화를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벌써 형편없는 엄마다. 하지만 엄마가 살아야 너네도 사니까, 엄마가 조금 더 크는 동안 너네가 조금만 봐줬으면 좋겠다. 내일은 재재의 보챔을 조금 더 두고 보려고 노력하고, 나나와 꽁냥 거리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 봐야겠다. 나나야 미안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