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재의 뇌 2

망할 뇌주름

by 오늘

그때에는, 뇌파 검사에서 경련파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재재가 경련을 하지 않을 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적어도 하나의 크나큰 걱정은 덜어진 것이구나. 하고 뛸 듯이 기뻤다. 소아신경과 교수님은 우선 너무 걱정하지 말고 키우면서 지켜보자고, 다소 홀가분한 표정인가 싶기도 하지만 거의 무미건조한 태도로 말했다. 대학병원에서 너무 심각한 케이스를 많이 보다 보니 이런 태도가 되는 걸까. 맘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의사의 관심을 끌지 못할 만큼 재재의 검사결과가 괜찮은 거 아닐까 싶어 기분이 좋았다.


MRI는 찍었을까요?

출생병원에서 찍었어요.

그러면 저희 병원에서 재판독할 수 있게 등록해 주세요. 한 달 뒤에 뵙죠.

그리고 아득히 멀어 보이는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다시 진료실에 앉았을 때, 교수님은 한 달 전과는 전혀 다른, 매우 조심스럽고 친절한 말투와 표정을 하고 있었다. MRI 판독 결과 여러 심각한 문제를 발견했단다. 뇌량은 뒷부분이 거의 없고, 저산소성 출혈의 흔적도 조금 보이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뇌 주름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단다. 이런 뇌구조라면 지금은 경련파가 잡히지 않아도 앞으로 경련을 할 가능성이 무척 크단다. 결론적으로, 미안하지만 좋은 소리를 해주기는 어렵겠단다.


좋은 소리를 해주기 어렵다니. 내가 좋은 소리 들으러 여기 왔나. 반발심이 드는 거의 동시에 깨달았다. 그래. 나는 좋은 소리를 듣기를 바라면서 이 진료실에 들어왔었던 것 같다. 그래도 뭐, 재재를 안고 밤을 지새우면서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검색을 해가면서 나름 각오를 한 면도 있어서 그런지, 그 순간에는 아주 절망스럽지만은 않은 기분이었다. 나름 담담한 태도로 작게 끄덕끄덕하며 설명을 들었다. 교수님은 재재의 머리둘레를 쟀고, 하.. 머리도 작네. 했다. 다행히 그건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마지막 교수님의 질문은 아기 혹시 잘 웃나요? 였다. 감사하게도 그건 아주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대답을 하려는데 진료 대기를 기다리다 품에서 잠든 재재가 그때 마침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고 저를 내내 안고 있던 나의 얼굴을 올려다보고는 씨익 웃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음 예약을 잡았고, 차 안에서 답답해 우는 재재를 달래느라 또 온몸에 땀을 빼며 집으로 왔다. 재재의 손발을 물 적신 손수건으로 닦아준 후 옷을 갈아입히고, 나도 간단히 씻은 후 옷을 갈아입고,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았다. 재재야 병원 다녀오느라 고생했어. 말을 건네며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듯한 아이의 해맑은 눈동자가 갑자기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참았던 감정이 밀려왔다.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앞에 있는 재재의 얼굴이 흐려지면서 동시에 아까 봤던, 의사의 다정하려고 애쓰는듯한 표정이 계속 떠올랐다. 오랜만에 아이 앞에서 목놓아 엉엉 울었다. 옆에 있던 엄마가 당황해서 내 등을 쓸다가 불길해졌는지 왜 그러냐며 다그쳤다.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서둘러 눈물을 닦는 나를 보고 재재는 뭐가 재미있는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재재가 분유를 먹으면서 눈동자가 휘리릭 돌아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점점 자주 그러더니 가만히 누워있을 때에도 그런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철렁했다. 경련이 시작되나 보다 생각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으려고 노력했다. 소아신경과 외래를 당겨 잡았다. 교수님은 의외로 이 모습이 경련은 아닐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바로 다음 주로 뇌파 검사를 잡아주었다.


두 번째 뇌파 검사였지만 그전에 청력정밀검사를 할 때에도 뇌파를 이용한 검사를 했어서 같은 형태의 검사로 치면 세 번째였다. 나름 경력자인 우리는 아기 샴푸도 작은 통에 챙기고, 갈아입힐 옷도 챙겼다. 검사 4시간 전에 최선을 다해 분유를 많이 먹이고, 안 재우기 위해 온갖 장난감을 들고 차에 올랐다. 안 먹고 안 자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아이가 아는 게 그래도 좀 더 생긴 건지, 진정 약물을 먹이는 동안 저번보다 몇 배로 몸을 뒤틀고 울어서 더 힘들었다. 그날은 진정실이 다 차 있어서 심박수와 산소포화도를 확인하는 기계를 단 채로 아이를 안고 병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재워야 했다. 덕분에 검사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저번보다 몇 배로 지쳐있었다.


몸이 힘드니 마음의 여유도 더 없어졌다. 게다가 뭐가 뭔지는 여전히 모르면서도 저번 검사때와 그래프를 비교할 수 있게 됐다. 저번보다 뭔가 더 들쭉날쭉한 그래프. 아, 역시 뭔가 있나 보다. 혼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백 번의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검사를 하시던 분에게 물어봤다. 뭐가 있을까요?


외래에서 들으셔야 하는데... 하시면서도 내 불안해 미칠 것 같은 표정이 읽혔는지 몇 초 뒤 '별 거 없는 것 같아요.'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장이 저 아래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막 올라붙은 듯이 펄떡거렸다. 경련 파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단다.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가 앞으로 살면서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과정을 몇 번이나 더 거치게 될까 하는 생각에 막막함이 밀려왔다.


문득 옆방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뇌파 검사 도중에 깼나. 에고, 저 친구는 다시 검사 일정 잡아야겠네... 생각하는데 검사자분이 말했다.


저 방은 소아투석실이에요


심장이 다시 내려앉았다. 투석은 재재와, 우리와 절대 거리가 먼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어린아이가 얼마나 괴로워서 저렇게 자지러지게 울까... 하는 생각과 그게 재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 금세 마음 한편이 무너지는 듯 아팠다.


검사자분이 갑자기 다정스레 나에게 '많이 힘드시죠' 하고 말을 걸어왔다. 재재의 차트를 보신 건가. 아니면 내가 그냥 힘들어 보이나. 어쨌든 나는 지금 실제로 많이 힘든가 생각해 보게 됐다. 그렇지는 않지만 또 안 힘들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 같긴 했다.


"힘들긴 한 것 같은데, 애를 키우는 이 짧은 시간 동안에도 정이 조금 들어버렸고... 기쁜 일도 많아서 할만할 것 같단 생각도 괜히 들어요. 뭘 몰라서 그런 거겠죠."


나도 모르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주절주절 속내를 털어놓게 됐다. 덕분에 검사자분이 '아, 아유 그럼요' 하다가 빙그레 웃으며 들려준 얘기는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먼지 한 올 앉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검사를 하다 보면 30대가 된 성인 장애인의 휠체어를 밀고 들어오는 60대 어르신도 봐요. 몸은 다 자랐지만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자녀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너무나 당연스럽게 '우리 애기가~' 라고 말씀하세요. 그때의 눈빛이 정말 아기를 바라보는 사랑 가득한 것이라 애기라는 단어가 전혀 부자연스럽게 들리지가 않아요."


그 말을 듣는데, 그 순간 또 앞으로가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조금 들었다. 재재가 영원히 아기 같아도. 혹시나 투석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가는 방식이고, 그 누군가들은 물론 힘들겠지만 저마다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며 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괜스레 들었다.


그날 이어진 외래에서 재재의 뇌파에 경기 파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고, 오히려 뇌파가 활발해졌다고, 좋은 일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난번의 좋은 소리 못 해준다는 얘기가 생각났다. 오늘은 좋은 소리를 들었네요. 농담처럼 말하고 싶었지만 지난번의 그 말을 교수님이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경련에 대한 걱정은 한동안 덜고 지낼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재재의 뇌 문제는 정말로 많이 심각한 게 맞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재재의 몸은 더 뻣뻣해졌다. 재재가 9개월이 되었을 즈음 결국 강직약을 처방받았다. 또 약을 먹게 되다니... 신장약을 받았을 때와는 또 다르게, 신경과 약 처방에 대해서는 괜히 마음이 더 울적했다. 우울함을 떨쳐내려고, 좋은 점을 생각해 보려 노력하다가 교수님에게 물었다. '혹시 이거 먹으면 잠도 더 잘 자게 될까요?' 교수님은 고민을 조금 하다가 아기 멜라토닌을 추가로 처방해 주었다.


강직약은 별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는지 분유에 타면 재재가 곧잘 먹었다. 그리고 정말로 몸이 부들부들해졌다. 재재가 재활을 받으며 전보다 덜 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짜증도 줄어든 것 같았다. 멜라토닌 덕인지 잠도 전보다는 훨씬 잘 자기 시작했다. 전에는 자다가 네다섯 번 깼다면, 이제는 두세 번 깨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나도 남편도 밤에 웬만하면 네 시간 정도는 이어서 잘 수 있게 됐다. 아니, 약 먹인다고 왜 우울해한 거지. 다만 약을 먹이면서 교수님이 기대했던 대근육 발달은 그닥이다. 아직도 재재는 뒤집기를 못 한다. 다음 달 초에 있을 신경과 외래에서는 또 좋은 소리 못 듣게 생겼다. 뭐 이제는 괜찮다. 아마도.


그래도 너무 고마운 것이, 재재는 다행히 아직까지 경련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어차피 주기적으로 뇌파를 찍으며 확인할 것이기에 이제 전보다는 덜 예민하게 지내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도 경련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잘 떠나지는 못해서 밤에 재재를 재우고 나서 문득문득 그러고 보니 오늘도 경련하지 않고 지나갔다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럴 때면 재재의 머리통에 조용히 입을 맞추게 된다.


처음에는 뇌 때문에 웃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것이 제일 큰 걱정이었다. 중간에는 경련 때문에 퇴행이 와서 지금껏 겨우 할 수 있게 된 것들, 소리 내어 웃고, 아빠 아빠 하고 옹알이하고, 안아달라고 팔을 약간 들어 올리고, 이런 것들을 다시 못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은, 어떤 방식으로든 재재가 자신의 뇌 때문에 좀 덜 괴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건 이제 어떻게든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발달은 이제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저 앞으로도 재재의 뇌가 재재를 좀 덜 괴롭히기를. 재재의 삶이 더 어려워지더라도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재재의 삶 내내 옆에서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바람이 전보다는 훨씬 작아졌는데도 여전히 쉽지는 않아 보인다. 재재 뇌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