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토록 예상치 못한 삶

by 오늘

남매 쌍둥이를 키우고 있다. 어느덧 9개월이 지났다. 300일이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진짜 빨리 가서 무서울 지경이다.


난임병원에 다니자마자 한 번에 임신을 했다. 쌍둥이가 생겼다고 했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고 싶었는데 쌍둥이라니? 어안이 벙벙한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하나가 분열하여 세 쌍둥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인생에 이게 무슨 일인가 했지만 곧 받아들였다. 지금 생각하면 육아를 안 해봐서, 뭘 몰라서 쉽게 받아들인 것 같다. 다태아 권위자로 유명한 교수님이 계신 대학병원으로 산과 병원을 다니며, 조금 심한 입덧을 동반한 행복한 임신생활을 시작했다. 가족을 포함한 주변 모두가 축하와 축복을 보내주었다.


세 쌍둥이는 피검으로 하는 기본적인 기형아 검사를 할 수 없었다. 통계가 없기 때문에 검사를 해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대신 11주 무렵 목투명대를 보는 것으로 태아의 건강상태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첫째와 셋째는 괜찮았지만 둘째의 목투명대가 두꺼웠다. 교수님은 첫째와 둘째가 일란성쌍둥이이기 때문에(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하고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양수 검사를 해볼 수는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아주 적은 확률로 유산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평소 좋은 일이 생기면 혼자 조용히 '내 삶이 이렇게 순탄히 흘러갈 리 없어. 곧 나쁜 일이 닥칠 거야' 하곤 한다. 무언가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온갖 비관적인 짐작과 상상으로 인한 쓸데없는 고통을 끼고 지내는 편이다. 그에 반해 남편은 낙관주의자다. 평소의 나라면 남편이 아무리 뭐라 말해도 양수검사를 하고야 말았을 텐데, 임신 호르몬의 영향인가, 나는 갑자기 남편과 비슷한 낙관주의자가 되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모처럼 마음이 착착 맞았고, 별 갈등도 없고 별 걱정도 없이 해맑게 그 시간을 지나갔다.


그 무렵 지나가는 말로 남편과 나눈 대화가 문득 생각난다.


"오빠는 장애아가 나오면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솔직히 자신 없지."

"나도. 나는 죽어버릴 것 같아."

"그럴 일 없어."


그런 일은 있었고, 나는 안 죽었고,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애들 덕에 와하하 웃으며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