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이걸로 끝인 줄
2017년 봄부터 연애한 남자와 2021년 말에 결혼을 했다. 남편은 다정하고 사려 깊은 남자였고, 덕분에 평온하고 따뜻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 잔잔하고 고요한 물결 같던 결혼생활에 이제는 무언가 출렁이는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무렵, 우리는 아이를 계획하게 되었다. 처음엔 혹시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둘이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거듭된 임신 실패가 이어지자 걱정된 마음에 병원을 찾게 됐다. 충격적 이게도 나와 남편 모두 아이를 갖기에 쉽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나의 나이가 그나마 젊은 시점에 시험관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치의 선생님의 말에 우리 부부는 '시험관까지는 하지 말자'던 다짐을 곧바로 홀라당 뒤집었다. 몇십 통의 주사를 배에 찌르며 난자를 채취하고, 배아를 만들고, 다시 여러 약들을 배에 찔러 넣어 임신할 때와 같은 자궁 환경을 만들고, 포도송이처럼 잘 자란 두 개의 배아를 처음으로 이식하는 데까지 총 두 달 정도가 걸렸다.
배아를 이식하고 나서 꿈을 꾸었다. 꿀벌 세 마리가 내 손등에서 오밀조밀 놀고 있었다. 벌레라면 끔찍이 무서워하는데 이 꿀벌들은 약간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가운데 있던 꿀벌이 때때로 부르르 떨었다. 뭐지 나를 물 건가? 생각하다 잠에서 깨어났다. 일주일 뒤 임신 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 줄을 인생 처음으로 보았다. 시험관 첫 시도에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피검사로 임신을 확인하고 한 주가 더 지나서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기집은 두 개였다. 배아 두 개를 이식했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잠시 놀랐고, 그래도 곧 기뻐하며 남편과 소소하게 축하 파티를 했다. 며칠 뒤 갑자기 출혈이 보였다. 임신 초기는 불안하기에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를 확인하던 선생님의 표정이 사뭇 심각했다.
"뭐가 안 좋은가요?"
"아뇨 애들은 잘 있는데... 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네요."
"무슨..?"
"하나가 분열했어요. 세 쌍둥이예요. 어떡해요 엄청 힘든데"
주치의 선생님은 선택유산에 관한 고민을 해 보라고 하셨다. 세 쌍둥이는 태아보험도 무조건 거절당할 정도로 임신과 출산 과정에 위험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병원을 나서서 잠시동안 남편과 고민을 했지만, 손등에서 놀던 세 마리의 꿀벌이 자꾸 아른거렸다. 그렇게 원해서 병원까지 다니며 만들어 놓고 우리 손으로 없애는 것이 너무 치사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애들이 잘 커서 나온다면 한번 감당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임신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배가 조금씩 묵직해지자 세 쌍둥이를 맞이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비로소 느껴졌고, 나름의 준비를 시작했다. 남편은 자연스레 나와의 동반휴직을 계획했다. 베이비 페어 구경을 가서 하이체어 세 개를 계약하고 왔다. 나란히 정렬된 하이체어 세 개에 앉아 옹알거리는 세 명의 아가를 상상하고 있자니 20평도 안 되는 신혼집이 우리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이사도 계획했다. 엄마는 하시던 일을 그만두고 당분간 나의 육아를 돕겠노라 선언하셨다. 남동생은 겉으로 큰 반응을 보이지는 않으면서도 선뜻 비싼 튼살크림 세 통을 선물해 주었다. 친구들은 초음파 사진을 보여줄 때마다 열광적인 환영의 반응을 보내주었다. 나는 입덧 중에도 이제 다시없을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 바삐 약속을 잡아 전국을 나다녔다. 문득문득 11주 초음파 검사 때 목 투명대가 두꺼웠던 둘째가 괜찮을까 하는 걱정을 했지만, 그건 외계인 침공으로 인한 인류 종말을 걱정하는 것만큼이나 아득하고 다소 낭만적인 마음이었다. 뭘 믿고 그리 낙천적이었을까. 정말이지 내 인생에 다시없을 천진한 시절이었다.
18주 무렵 동네 병원에서 본 초음파 검사에서 둘째의 이상이 본격적으로 발견되었다. 양수가 부족했고, 소변이 차 있지 않아 방광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니던 대학병원에 바로 다음 주 날짜로 진료예약을 잡았다. 담당 교수님은 둘째의 양수가 부족한 것이 맞다고 진단하셨다. 다만 둘째의 성장곡선이 첫째와 비슷하게 가고 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우선은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곧 20주 정밀초음파에서 둘째의 성장이 확연히 더딘 것이 보였고, 급기야 그날엔 둘째의 폐에 물이 차 있었다. 20초 남짓 촬영된 입체초음파 영상에서, 양수가 없어 한껏 웅크리고 있는 녀석은 활발한 첫째에게 발로 걷어차이고 있었다.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고통을 견디고 있을 둘째가 안쓰러웠다. 이제 교수님은 최악의 상황을 조심스레 언급하셨다. 나는, 의외로 생각보다 괜찮았다. 근거 없이 모든 게 괜찮을 것 같았다. "둘째야, 나오기만 하면 쪼끔 더 편애하며 잘해줄게. 힘내" 하고 태담을 했다. 나중에 둘째가 커서 힘든 일이 생겨 고민 상담을 하면 "너는 이래 이랬는데 살아남은 애야!" 하고 말해주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주일 간격으로 진료를 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23주, 둘째는 사산되었다. 뱃속 아기의 죽음을 교수님에게 정식으로 진단받자 억지로 멈춰두었던 걱정과 슬픔이 갑작스레 한 번에 밀려오는 느낌이 들어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던 것 같다. 한순간에 아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진료실에서 한참을 울었다. 내가 미리 슬퍼하고 걱정하면 진짜로 더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던 걸까. 어쨌든 결국 그렇게 되었다. 자그마한 230g의 존재와 인연을 끝맺어야 했다. 타격은 길진 않았지만 꽤 컸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분명 내 몸 안에서 어느 순간까지는 나름의 감각을 느끼며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던 존재였다. 형제의 발길질에 괴로워 좁은 틈에서도 팔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봐 버렸다. 어차피 내가 뭘 해줄 순 없었겠지만 이 아이에게는 그냥 다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부터는 활발히 태동하는 첫째, 셋째와 그 가운데서 죽어있는 둘째를 함께 품은 채 남은 임신생활을 했다. 이제는 병원에서 나의 첫째와 셋째를 첫째와 둘째로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로도 가끔씩은 죽은 아이가 생각나긴 했지만 그보다는 남은 둘에게 집중하게 됐다. 일란성쌍둥이 중 하나가 사산되면 나머지 아기도 위험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둘째와 일란으로 연결되어 있던 첫째 걱정을 더 하게 됐다.(다행히 첫째는 괜찮았다. 일단은.) 무엇보다도 나는 여전히 골반이 아프고 배가 무겁고 영양제와 입덧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이전과 다를 것 없는 임산부였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빨리 이전과 같은 일상을 찾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 또한 막내를 둘째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만하게도, 겨우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제는 당연히, 나에게 더 이상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쓴 일기>
둘째가 사산되었다.
분명 배꼽 쪽에 태동이 꽤 자주 느껴졌었는데, 첫째나 셋째였나 보다. 아마도 첫째?
2시간 반을 기다려 진료를 봤다. 그냥저냥 별생각 없었는데 막상 초음파 침대 위에 누우니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쿵쾅거렸다. 선생님이 "지난주 이후로 몸에는 무리 없고 괜찮았어요?" 뭐 이런 식으로 말씀하셔서 네 괜찮았어요 하고 초음파를 봤다.
내 눈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지만 열심히 인상을 쓰며 봤다. 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에 꽤 큰 몸통과 그 안에 잘 뛰는 심장. 둘째인가? 했는데 "얘가 첫째예요" 하셨다. 이어서 "둘째는 사산됐어요" 하셨다. 말은 들렸는데 그 의미가 완전히 나에게 전달되기까지는 5초 정도 걸렸던 것 같다.
18주 무렵 둘째가 건강하지 않다고 했을 때, 특별할 것 없는 내게 아무에게나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나 버렸으니, 아무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또 내 삶에 이런 큰 이변이 생겼으니 운명이 이걸 호락호락하게 거둬가지는 않을 것 같단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계속 크는 두 아이들 사이에 작은 아이 하나가 죽은 채로 한동안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임신기간 내내 다른 일란 아이를 조금 더 종종거리며 걱정해야 한다는 것도. 또 두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자라면서 내가 때때로 그리워할 한 아이가 내 세월 속에 내내 존재할 거라는 것도.
인터넷 뉴스를 보는데 헤드라인에 과로로 인해 자살을 한 수사관의 얘기가 있다. 맘카페에 들어가 보니 최신 글에 몇 개의 유산 이야기가 있다. 내 뱃속 아이의 죽음은 물론 내가 충실히 슬퍼해 마땅한 일이지만 또 그렇게 특별하게 슬픈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두 아이가 태어나 건강하고 다정한 남매가 되었으면 좋겠다. 둘째 몫의 남은 에너지로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돼 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