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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Oct 29. 2023

5년 차 PD를 뽑는데 47세 PD님이 지원했습니다

요즘 처음부터 커머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튜브 채널들이 많이 보입니다. 유튜브를 통해 쇼핑을 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습니다.


흐름에 맞춰 회사에서 커머스 성격을 지닌 유튜브 채널을 새롭게 만들기로 했습니다.


5년 차 정도의, 재미있는 유튜브 채널을 기획하고 콘텐츠를 제작해 본 경험이 있는 PD를 우선적으로 채용하자고 의견이 모아져 채용 플랫폼에 공고글을 올렸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고 10명의 PD님이 제가 올린 채용 공고에 지원을 하셨고 한 분 한 분 꼼꼼하게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점검했습니다.


그중 3명을 최종 후보로 추리고 더 이상의 지원을 막기 위해 공고를 내리려는데 신규 지원이 들어왔다고 알림이 떴습니다.


무심코 어떤 분 일지 지원서를 클릭했는데 놀랍게도 경력이 20년 가까이된 47세의 PD님이었습니다.


혹시 저희가 찾고 있는 분들에 대한 설명을 제가 오해하도록 기재해 두었는지 두 번 세 번 보았지만 분명 5년 차 이내의 PD님을 모신다고 해두었고 유튜브 쪽에 충분한 경험이 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분명히 해두었습니다.


그냥 잘못 지원했거나 여기저기 막 지원하는 분인가 보다 하고 넘기려다가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가서 이력서에 기재된 번호를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000 PD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00이라는 회사입니다. 저희가 올린 공고에 지원을 해주셔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눈에 띄게 밝아진 목소리로) 아! 안녕하세요! 면접이 잡힌 걸까요?"


"아직은 지원자 후보들을 추리고 있는 단계입니다.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어요. 혹시 저희 공고에 5년 차 이내 분들을 찾고 있다는 내용을 보셨을까요?"


"아.. 네 봤습니다. 제가 연차로 치면 19년 차 정도 됩니다. 공중파 PD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8년 정도 프로덕션에서 4년 정도 그 이후로 작은 광고 회사와 마케팅 대행 회사 등을 다녔습니다. 지금은 프리랜서 PD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 네. 5년 차 이내 PD를 채용한다는 것을 보셨는데 지원하신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제가 3년 전쯤 마케팅 회사에서 유튜브 제작을 처음 해봤습니다. 40대 중반 다되어서 요즘 사람들 트렌드 따라가려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사실 회사에서도 그렇게 큰 기대를 안 하더라고요. 오기가 생겨서 유튜브 강의도 듣고 밤에 유튜브만 3시간씩 보면서 요즘 어떤 영상이 인기 있나 공부했습니다. 딱히 제작비 지원도 없어서 회사 회의실에 게스트 한 명 데려다 놓고 핸드폰으로 찍어서 편집했습니다. 그런데 한 석 달 해보니 구독자가 5천 명 정도로 늘더라고요. 혼자서 업로드도 하고 댓글에 다 반응도 해주고 힘들었는데 참 재미가 있었습니다. 정말 계속하고 싶었는데 회사에서는 몇 달 하면 구독자는 몇만에 조회수 수익만 몇백 될 줄 기대했나 봐요. 더 이상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하길래 접었습니다. 혹시.. 지금 전화 주신 분은 인사 담당자이신가요?"


"아닙니다. 저는 만약에 같이 일하시게 되면 합류하게 되실 조직의 총괄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저는 유튜브를 업무로 맡은 건 3년 남짓이라 5년 차 이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케팅 회사에서 상품 관련 영상 제작을 많이 해봐서 지금 하시려고 하는 커머스향 유튜브 채널에도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나이도 많고 젊은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만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연봉도 5년 차 직원에 맞게 받을 수도 있고요"


"아 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 제가 PD님보다 나이가 좀 어립니다. 그런 것도 괜찮으신지요"


"허허.. 지금 제 클라이언트들 대부분이 저보다 어린 분들입니다. 그분들께 지적사항 들어가면서 영상 납품하고 있는데 그게 뭐 대수겠습니까.. 재미있게 일하게만 해주십쇼 허허"


전화를 끊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이제 40대에 들어서는 시점에서 지금까지 커리어를 쌓아왔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겠다는 고민도 많이 하고 있고 지금 이력서를 오픈했을 때 얼마나 많은 회사들이 저를 채용하고 싶어 할지 확신이 없습니다.


인생의, 커리어의 선배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정된 영역에서 그것만 연구하고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저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커리어에 한계가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최종 후보군을 4명으로 늘리고 메모로 이 PD님과 꼭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을 대표님께 전했습니다.


아쉽게도 최종 합격자는 20대 후반의 젊은 PD님이었지만 저는 지금도 그 PD님을 찾아뵙고 다시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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