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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니크 Dec 29. 2021

"그런 건 너네랑 어울리지도 않아"

<스걸파> 마스터 허니제이의 한마디가 빛났던 이유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이하 '스걸파')는 올 한 해 가장 화제성이 높았던 Mnet(이하 '엠넷')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의 여고생 버전이다. 그동안 '백'댄서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가수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댄서들을 무대 중앙에 세우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 스우파와 마찬가지로, 스걸파 역시 아직 학생이지만 춤을 좋아하고 최고의 댄서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뒤지지 않는 고등학생 댄서 크루들이 서로 경쟁하며 무대를 선보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스걸파 5화가 끝난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지금 스걸파의 시청자들은 화가 나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한 기분을 삼키며 잠을 청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지금 이 기분과 감정,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을 글로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브런치에 들어와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스걸파 5화에서 각 크루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하나의 곡으로 두 크루가 함께 무대를 만드는 <K-POP 안무 창작> 미션이었다. 여기에 제작진은 크루들에 경쟁 상대 크루가 만든 트레이드 안무를 포함하여 무대를 해야 하고 이때 트레이드 안무는 수정 없이 그대로 소화를 해야 한다는 규정을 주었다.


무대의 평가자는 스걸파 크루들의 멘토 역할을 맡고 있는 홀리뱅, 프라우드먼과 같은 마스터 크루들과 제작진이 미션곡에 맞게 섭외한 스페셜 저지(judge)다. 이들은 각각 승리 크루를 선정하고 표를 더 많이 받은 크루가 미션에서 승리하게 되는 규칙이다.



경쟁에도 선은 필요하다


당연하게도 평가의 가장 큰 기준은 스걸파 크루들이 만든 무대의 퀄리티다. 무대가 멋있고 좋아야 한다. 안무 창작능력, 춤 실력, 팀워크 등과 함께 자신들의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감추는 전략도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이 점은 경쟁 상대에게 주어야 하는 트레이드 안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작인 스우파에서도 각 크루는 상대 크루와 자신들을 비교 분석하여 그들에겐 약점이고 우리에겐 강점인 부분을 찾아 트레이드 안무에 반영하였다. 당연히 스걸파에서도 역사는 반복되었다.


그런데 승리를 향한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였을까. 스걸파 크루들 중 몇 팀은 자칫 선을 넘는 듯한 행동을 하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서바이벌이고 경쟁이긴 하지만 함께 좋은 무대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잊은 것처럼, 단순히 자신들이 잘할 수 있고 상대방이 잘 못할 것 같은 트레이드 안무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무대 자체를 망쳐버리려는 의도처럼 비칠법한 안무를 줬던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역량을 보여줄 수 없는 기본기만 들어간 안무, 노래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스타일의 안무 등 아예 노력조차 해볼 수 없게 상대 팀을 무력화시키는 안무를 주는 행동은 그동안 스걸파에서 각 크루들이 보여준 학생이지만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깎아내리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춤에 있어서는 진심이기에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크루들의 무대를 보며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규정을 잘 이용하는 것도 전략이니까' 하며 프로그램에 몰입해있던 시청자들의 마음을 바사삭 마르게 한 장면이 등장했다. 팀 라치카의 크루 클루씨와 팀 YGX의 크루 스퀴드의 대결이었다.


개인적으로 스걸파에서 제일 좋아하는 크루 중 하나가 클루씨었는데, 그 이유는 클루씨의 무대에서 느껴지는 통통 튀는 에너지와 자신감, 그리고 크루 멤버 개개인의 역량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우승 후보 중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5화에서의 클루씨는 이런 크루가 우승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굉장히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경쟁 상대인 스퀴드에게 클루씨는 이게 정말 안무일까 의문이 들 정도로 엉망인 트레이드 안무를 줬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구성은 아예 들어가 있지도 않고 장난스러운 꽂게 포즈의 동작 등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방송에 나갈 무대에서 보여주어야 할 안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동작들을, 웃으면서 자신들이 준비한 트레이드 안무라고 말했다. 누가 봐도 공들여 만든 안무는 아니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추지 않고 경쟁 상대가 춰야 하는 안무라 할지라도 댄서로서 대중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안무임을 감안해야 했는데 클루씨는 선을 넘었다. 당연히 스퀴드 멤버들은 화가 났지만, 프로그램의 규정에 따라 클루씨가 만든 트레이드 안무가 포함된 무대로 평가를 받아야 했다.


스걸파에 멘토가 필요한 이유


프로 댄서도 아닌 학생들이 추는 춤을, 매주, 그것도 늦은 시간에, 두 시간씩 시청자들이 꼬박꼬박 챙겨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걸파 크루들의 실력이 뛰어나고 무대가 좋아서라는 이유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이미 스걸파의 시청자 대부분은 이미 스우파라는 프로 댄서들이 참가한 프로그램에서 두 달이 넘게 여러 무대와 배틀로 수준 높은 춤을 접한 사람들이다. 시청자 대표는 아니지만 내가 스걸파를 보는 이유는 무언가에 진심인 사람들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꿈을 향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기 좋아서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돈을 벌어야 되서도 아니고 정말 춤이 좋아서 자신들의 춤을 보여주고 싶어서 무대를 열심히 준비하고, 경쟁을 하더라도 결국은 다 같은 걸 좋아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친구들이기에 서로 응원하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같은 미션으로 경쟁을 하지만 모두가 클루씨와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스우파에서도 브레이킹 댄스를 할 수 있는 '비걸' 예리가 있던 YGX가 브레이킹 기술이 있는 트레이드 안무를 상대 크루에게 줬었기 때문에, 스걸파의 유일한 브레이킹 댄스 크루인 브레이킹 앰비션 역시 본인들의 차별화된 강점을 살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브레이킹 앰비션은 어렵긴 하지만 연습한다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기술들로 구성된 트레이드 안무를 상대 크루에게 주었다. 상대 크루는 자신들의 무대를 준비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안타깝게도 브레이킹 앰비션은 이 경쟁에서 패배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시청자들이 '브레이킹 앰비션은 왜 자신들의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을까?'라고 의아해할 때쯤 엠넷에서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풀어놓는다. 브레이킹 앰비션의 멘토인 홀리뱅 마스터 허니제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가 예쁜 경쟁을 했으면 좋겠거든. 예를 들어 윈드밀 같은 (고난도) 테크닉을 상대방에게 주면 단시간에 그걸 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하는 거는 사실 너네랑 어울리지도 않아. 그런 행동들이.

 


프로의 세계에서는 결과가 중요하다. 당장 허니제이 자신도 스우파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테니까. 하지만 허니제이는 아마 알았을 것이다. 스걸파 크루들은 아직은 결과보다 과정의 중요성을 배워야  시기라는 . 멀리  것도 없이 클루씨의 멘토인 라치카 멤버들도 4화에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안무 창작을 완성해오지 않은 크루 아마존에게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스우파와 달리 스걸파에 마스터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스걸파 크루들에게는 잘못된 길로 가면 바로 잡아주고 미숙한 부분이 있으면 챙겨줄 어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5화에서는 라치카 멤버들이 멘토로서 역할을 다 하지 않아 아쉬웠다. 만약 클루씨가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프로그램의 본질인 댄서로서 최선을 다하고 좋은 무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을 잊고 있었다면 누가 됐든 클루씨에게 조언을 해주었어야 했다. 허니제이가 브레이킹 앰비션에게 그렇게 했듯이 어른으로서 잘못된 행동은 바로잡아 주었어야 했다.


스걸파는 올림픽이 아니다. 금메달을 따면 물론 좋겠지만, 금메달을 따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춤은 결국 대중을 상대로 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거리에서 '벚꽃엔딩'이 울려 퍼지는 건 버스커버스커가 슈퍼스타K에서 우승하지 못했더라도 대중들이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스걸파 크루들은 무대에서 대중들 앞에서 춤을 추는 댄서들이다. 당연히 대중들의 호감이 많은 댄서들일수록 기회가 더 많을 것이다. 어떤 크루를 생각했을 때 그들의 춤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그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팀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먼저 떠오른다면 길게 봤을 때 그건 절대 이긴 게 아니다.



경쟁의 진짜 승리자는 누구일까


결국 이 날의 승리자는 클루씨가 되었다. 평가를 하는 마스터 중 프라우드먼 리더 모니카는 경쟁이 앞서 나가는 건 맞지만 누군가의 발목을 잡고 올라가는 건 아니라고 일침을 놓았다. 물론 그렇게 말한 모니카 본인의 팀에 있는 크루 브랜뉴차일드도 상대 크루에게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점이 아이러니긴 했지만 말 자체는 너무 맞는 말이었다. 라치카의 리더 가비가 클루씨는 발목을 잡으려고 한게 아니라 자신들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은 의도였다며 포장했지만, 그런 변명보다는 클루씨에게 적절한 타이밍에 올바른 조언을 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스우파 우승팀은 홀리뱅이지만 나는 홀리뱅 멤버들 이름을 아직도 다 모른다. 내가 기억하는 건 리더 허니제이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과 그들의 몇몇 무대가 꽤 멋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라치카는 다르다. 가비, 리안, 피넛, 시미즈, 에이치원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그들이 어떤 특징을 가진 댄서인지를 기억한다. 라치카는 두 번이나 탈락 위기에 놓여 배틀을 했기에 오히려 개개인의 실력과 끼를 대중들에게 자세히 보여줄 수 있었다. 나는 스우파의 가장 큰 수혜자를 팀 단위로 꼽는다면 라치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기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라치카가 스걸파에서는 왜 그 사실을 잊어버렸는지 안타깝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클루씨는 상대방이 약해야만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그런 실력이 부족한 크루가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해도 충분히 자신들의 실력으로 파이널 진출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는데도 한 순간의 실수로 승리하고도 승리의 기쁨을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가지지 못하고 경쟁 상대에게 미안해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이 아쉬웠다.


허니제이가 예쁜 경쟁을 하기를 바라며 조언했던 브레이킹 앰비션은 상대 크루에게 패배했다. 브레이킹 앰비션의 탈락 소감을 들으며 나는 이 친구들이 나중에 어딘가에서 무얼 해도 잘하고 있을 거라 직감했다. 자신들은 이제 브레이킹 연습을 할 타이밍이라며 이제 탈락해서 시간이 생겼으니 빡세게 연습하겠다며, 자신들은 우승팀에게 진 거라 아쉽지 않다며 상대방을 치켜세움으로써 오히려 자기 자신을 더 빛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건 누구고 진짜 이기는 게 뭔지를 모두가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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