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카세트 테이프. 그 안에 숨겨진 진실
오랜 장마가 끝나고 눅눅한 공기가 가라앉은 새벽, 고물상 주인 박씨는 어느 때처럼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버려진 가구와 깨진 가전제품 사이에서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곰팡이가 피고 모서리가 닳은 낡은 카세트였다. 안에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
"아니. 요새도 이런 테이프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나?"
테이프의 표지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박씨는 묘하게 끌려 그는 테이프를 챙겨 작업실로 돌아왔다. 박씨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낡은 카세트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작동하지 않았다. 뒤를 열어보니 건전지가 없었다. 박씨는 리모컨 안의 건전지를 빼서 카세트에 껴넣었다.
지지거리는 잡음 끝에 희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엔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볼륨을 최대로 키우자 또렷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까."
박씨는 숨을 죽여 귀을 기울였다. 테이프가 낡아서 힘겹게 돌아가는 소리 사이로 들리는 목소리는 젊은 여성의 것이었다. 그녀의 담담한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이야기, 아무도 모르게 홀로 숨겨져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 자신이 정서연이라는 이름의 실종자라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테이프는 매년 생일마다 녹음된 일기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목소리는 더욱 지쳐갔고 절망과 체념이 짙게 베어났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신의 언니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가둬졌다고 말했다. 심지어 자신의 존재마저 지워져 실종자로 등록되었을 것이라 했다.
마지막 생일, 스물여덟 번째 생일의 녹음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미약한 속삭임이 되었다.
"이제 더는 버틸 힘이 없어. 언니, 당신은 행복하게 살겠지. 나는 이제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아.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테이프는 거기서 끝이 났다. 박씨는 손을 떨며 플레이어를 껐다. 그는 단순한 쓰레기를 주운 것이 아니라 한 가련한 여자의 삶이 담긴 비극적인 기록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테이프의 녹음이 끝난 마지막 날짜는 바로 오늘이었다.
박씨는 정서연이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뉴스와 신문 기사에는 그녀의 실종 사건이 보도되어 있었고, 그녀의 언니는 동생을 애타게 찾는 착한 언니로 그려져 있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박씨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만난 경찰은 그의 이야기를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하며 비웃었다.
그러나 그날 밤, 박씨는 자신의 작업실이 누군가에게 습격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모든 물건들은 엉망이 되었고, 그가 보관하고 있던 카세트 테이프는 사라졌다. 박씨는 직감적으로 그녀의 언니가 이 일을 꾸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단순한 고물상 주인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 한때 이름을 날렸던 사설 탐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실수로 한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만든 사건의 죄책감 때문에 모든 일을 그만두고 고물상 일을 하며 반성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때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이 테이프가 운명처럼 자신에게 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테이프의 복사본을 이미 준비해 두었었다. 늘 사건을 맡을 때면 증거가 될 만한 것은 항상 복사를 해 두던 습관 때문이다.
낡은 카세트 테이프 한 장이 드러낸 충격적인 비밀은 이제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거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그의 새로운 사건이 되었다.
박씨는 수첩에 '정서연 실종 사건'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서연의 언니, 정윤희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언론에 보도된 윤희의 모습과 카세트 테이프 속 서연의 증언을 대조하며 소름 돋는 진실을 발견했다.
정윤희는 겉으로 완벽한 인물이었다. 유명한 자선단체를 운영하며 불우한 이웃을 돕는 마음씨 좋은 언니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었고, 매년 동생의 기일마다 추모 행사를 열어 슬픔에 잠긴 모습을 연출했다. 언론은 그녀를 '동생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따뜻한 사랑을 실천하는 천사'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정교하게 계산된 가면에 불과했다.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서연의 목소리는 윤희의 악랄함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언니는 내 모든 것을 뺏었어. 아빠의 회사, 유산, 심지어 내 약혼자까지. 언니는 내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 날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려고 했지. 내가 가진 유일한 힘은 언니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어. 그걸 감추기 위해 언니는 날 평생 어둠 속에 가두려 했지."
박씨는 서연의 테이프를 통해 윤희가 어떻게 서연을 괴롭혔는지 낱낱이 밝히기 위해 조사했다. 윤희는 서연이 어릴 적 앓았던 희귀병을 이용해 그녀를 불안정하고 위험한 인물로 만들었다. 서연이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약을 먹여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서연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속였다.
"내게 남은 마지막 친구마저 언니가 뺏어갔어. 친구에게 내가 언니를 죽이려고 했다고 거짓말을 했지. 날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돌봐주는 언니를 죽이려 했다는 말에, 나의 하나뿐인 친구는 오직 언니 말을 믿고 나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멀어져 갔어. 친구는 날 버렸고, 난 완전히 혼자가 되었어."
"언니는 웃으면서 말했지. '너는 내 그림자야. 아무도 널 보지 않아. 너는 영원히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살게 될 거야.'"
가장 충격적인 것은 윤희가 매년 동생의 기일마다 추모 행사를 연출하며, 그 행사 장소에 서연을 몰래 감금했다는 것이다. 서연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언니의 위선적인 연기를 들으며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윤희는 그녀에게 "넌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야. 너의 장례식에서 너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봐. 정말 니가 죽어도 외롭지 않을 거야. 이 사람들이 누구 말을 듣고 왔을 거라고 생각해? 이들이 너를 알까? 다 나 때문에 오는 거야."라고 속삭였다. 이 모든 것은 서연을 영원히 어둠 속에 가두기 위한 잔인한 심리적 학대였다.
박씨는 윤희의 가면 뒤에 숨겨진 악마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는 카세트 테이프가 단순한 녹음 기록이 아니라 복수를 위한 서연의 절실한 메시지라는 것을 직감했다. 서연은 자신을 돕지 않은 경찰과 사회를 믿지 않았고, 언젠가 진실한 누군가가 이 테이프를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희망을 담아 모든 것을 기록했던 것이다.
박씨는 윤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전히 언론과 대중 앞에서 슬픔에 잠긴 천사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윤희가 주최하는 동생 추모 행사에 직접 찾아갔다.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고, 윤희는 슬픔이 담긴 얼굴로 동생을 잃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순간 박씨의 머릿속에 서연의 목소리가 울렸다.
"언니는 내 장례식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라고 했어. 자기 덕분에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게 된 거라면서."
박씨는 직감적으로 행사장에 서연을 숨겨두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눈을 감고 예전 탐정 시절의 촉을 곤두세웠다. 주변의 작은 소리와 공기의 흐름,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읽어냈다.
그때 행사장 무대 뒤편의 작은 창고문이 미세하게 열렸다 닫히는 것을 포착했다. 순간, 윤희는 연설하는 동안에도 그 낡은 작은 창고문을 자꾸 의식하는 듯했다. 연설을 하면서 관중을 보는 것 같았지만, 시선은 습관처럼 계속 그 창고를 보는 것이었다.
박씨는 조용히 기자들과 인파를 피해 창고로 다가갔다. 안은 텅 비어 있었지만 퀴퀴한 냄새와 함께 바닥에 작은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핏자국이 윤희가 서연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한 흔적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핏자국을 사진으로 남겼다.
박씨가 창고를 나서는 순간, 한 경비원이 그를 막아섰다.
"여기는 출입금지입니다."
윤희의 개인 경호원이었다. 박씨는 당황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화장실을 찾는 중인데, 이곳이 처음이라 길을 잃었네요."
그의 노련한 거짓말은 통했고, 경비원은 그를 의심 없이 돌려보냈다.
박씨는 조사를 계속하던 중, 테이프에 없던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서연의 약혼자였던 남자, 현재 윤희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 남자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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