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만든 프레임

다 뒤죽박죽인데 “괜찮아”라고 주문을 걸어본다.

by Dia K

“인도 더럽잖아, 어떡해”

“인도, 진짜 밖에 나가면 때리냐?”

“인도 셧다운 한다며, 회사는 괜찮니?”

“인도가 아니라 한국에서 출산할 거지?”

“인도 종교시설에서 확진자 나왔다던데, 9000명이래!”

“인도 확진자 수가 심상치 않아”



많은 지인들의 걱정들이 관심들이 나의 프레임에 균열을 일으켰다. 어쩌면 프레임 속에 나는 늘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괜찮다는 주문을 걸어야, 이 곳 인도 땅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내가 무너져버리면 뱃속에 있는 나의 아가도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도 불안해할 것이다.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해, 괜찮다 괜찮아.’


임신 후반기인 30주 이상이 지나면 많은 산모들은 불안해한다. 그때부터 몸에 더 큰 변화가 찾아오고, 한 번도 겪지 못한 출산에 두려움이 찾아온다. 나는 35주부터 가진통이 있어서, 새벽마다 휴대용 산소 호흡기가 없으면 숨 쉬는 게 어려워 많이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출산에 불안함보다, COVID-19가 주는 불안함이 더 컸다.


자연주의 출산을 원했다고 하지만, 설마 집에서 출산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정말 많이 불안했다. 주변에서는 한국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로 우리를 괴롭혔고, 그때마다 ‘괜찮아, 밖을 안 나가잖아 괜찮아’ 주문을 외웠다.


나의 주문의 균열은 아마도 정부가 규제해 왔던 주 경계를 풀면서 온 것 같다. 초기 인도에서 확진자는 케랄라, 첸나이, 뭄바이, 델리가 가장 심했고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는 주간 이동을 막아 버렸다.


내가 거주하는 곳은 인도에서 계획도시지만, 인도인들의 청결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불안했다. 아직 인도의 많은 정보는 입소문이다. 물론 거짓 정보가 더 많긴 하지만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잘 활용해야 대비를 할 수 있다.


신랑이 말하기를 “인도 정부는 주 경계를 풀지 못해. 풀어버리는 순간 통제가 안 될 거거든”라고 말해 안전한 곳에 사는 줄 알았는데, 2020년 06월 08일 주 경계를 해제해 버렸다. 한인 사회가 시끌벅적했다.

한인들이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귀임하는 집도 많이 생겨났다.


그때마다 괜찮다 괜찮다 하며,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떡갈비 동그랑땡 너비아니 김치만두 새우패티 돈가스 장조림 고기완자 고기뭇국 갈비탕 콩국수 등등을 다 얼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내가 출산 후 먹어야 할 반찬들을 신랑과 함께 허리가 끊어져라 만들고 있었다.


그때마다 ‘우린 진짜 어딜 가든 살아남겠어’를 웃으며 말했고, 자취 시절 다진 마늘만 구입했던 나는 마늘 2킬로 손수 까기 시작했다.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몸조리할 음식을 내가 만들어야 해서, 가끔 울컥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게 좋은 태교지, 내 몸 누가 챙겨 내가 챙겨야지 하면서.. 엄마가 되는 길은 참 외롭구나. 우리 엄마 많이 외로웠겠다.. 참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나는 홀로서기를 연습한다.

보고 싶다고 주저앉기엔 생각보다 나는 강한 존재니까. 엄마 아빠가 나를 세상에 꽃 피웠으니, 절대 세상에 시들지 않겠다.


나도 아가에게 강한 엄마, 다 아는 엄마, 뭐든 해주는 엄마, 완벽한 엄마가 될 생각은 없다.

나의 인생이 중요하고 소중하다. 내가 바로서야 상대를 밝혀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우리 아가가 홀로서기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내가 생각하는 부모 역할이다. 힘들 땐 쉬어가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렴. 네가 하는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해 줄게.


딱 하나 욕심 내어 본다, 부모 역할의 프레임은 단단해 주길. 코로나 따위 하나도 안 무섭다 흥칫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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