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가미의 환상여행을 읽고
제목이 ‘아테네 학당’ 인데, 그리스의 아테네는 서양 철학이 시작된 곳이고, 인간의 지성이 꽃피기 시작한 곳이다. 이 아테네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를 ‘아테네 학당’ 이라고 불렀는데, 라파엘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진리를 추구하며 우주의 원리를 탐구했던 철학자, 천문학자, 수학자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을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겁니다. 라파엘로는 58명의 고대 그리스 학자들을 바티칸으로 초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림의 배경을 보면 그리스의 아테네가 아니라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사실은 라파엘로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베드로 성당은 공사 중이었는데,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도를 보고 배경을 그려 넣은 것이다.
이렇게 성당이라는 기독교의 공간에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초대한 것, 기독교와 고대 그리스 철학의 만남, 바로 르네상스의 시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그림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정도로 이 그림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원근법을 조사하다가 류가미의 환상여행이라는 칼럼을 읽었다.
그리고 더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을 요약해서 적어본다.
이 그림은 투시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투시 원근법은 그림 안에 대각선을 그었을 때 교점, 즉 소실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림 안에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은 화가가 서 있는 곳에서 가깝고 먼 것에 따라 대각선 안에 배치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화가의 시점에서 재편되는 것이다. 중세는 '신 중심의 사고'라고들 말한다. 투시 원근법이 쓰이기 전의 그림들은 신이 보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세상이다. 그러나 투시 원근법의 사용으로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존재하는 화가, 즉 인간의 관점에서 보는 세상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투시 원근법의 발달은 인식의 변화를 이끌었다. 본다(see)는 것은 안다(know)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보는 시선을 인간이 갖게 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지성, 즉 이성이 중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라파엘로는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이곳에 그려 넣었다. 우리는 라파엘로의 시점에 의해서 재편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만 세상을 재편하는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면서 라파엘로의 시점에서 그의 세상을 바라본다. 나와 라파엘로의 시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과 그가 보는 세상을 체험한다. 이렇게 예술가뿐만 아니라 감상자도 창조자가 된다.
투시 원근법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리고 감상하는 사람 모두에게 ‘지성’ 그리고 ‘이성’을 갖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하는 근대의 개인주의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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