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기억이 된다면

다른 행성, 그란사쏘

by 머쓱

지난 목요일, 그란사쏘(Gran sasso)에 다녀왔다.


갑작스러운 여행이라 떠나기 전에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자고 말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로마에서 차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한 이곳은 다른 행성 같았다.



전날 읽은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마치 이곳은 두 번째 단편 <스펙트럼>에서 할머니가 도착한 행성 같았다.


<스펙트럼>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우주 어딘가에 있을 외계 생명체를 탐사하기 위해 설립된 스카이랩의 연구원이었던 희진은 서른다섯 살에 탐사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도약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실종된다. 희진은 실종된 지 40년 만에 구조되었다. 그리고 최초로 외계의 지성 생명체를 발견했으며 그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서 허언증 환자로 몰리게 되었다.
소설은 희진이 외계 지성 생명체와 보낸 시간을 보여준다. 외계의 한 행성에 도착한 희진은 이곳에서 도구를 사용하고, 상징언어를 사용하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생명체를 만났다. 첫 접촉 때 그들의 무리가 희진에게 위협을 가하려 했으나, 무리 중 한 개체가 희진을 구한다. 그 개체의 이름은 '루이'다. 희진은 루이의 동굴에서 살게 되었고, 그의 돌봄을 받게 된다. 그리고 하루 종일 루이를 관찰하는데, 루이는 사냥을 하지 않고, 다른 개체들과의 교류도 적은 대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다. 루이와 함께 지내며 희진은 이 외계인들을 파악하고 연구했다.
그러던 중, 루이가 죽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루이를 만난다. 이 외계인들은 영혼이 이전 개체에서 다음 개체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첫 번째 루이의 개체를 강에 실어 떠나보낸 후, 새로운 개체가 온다. 그 개체는 첫 번째 루이와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고 희진을 돌보았다. 그리고 두 번째 루이도 시간이 지나서 죽는다. 그리고 세 번째 루이가 온다. 세 번째 루이도 그림을 그리고, 희진을 돌보다가, 곧 죽는다.
희진은 이 루이'들'이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네 번째 루이가 오기 전, 루이가 보여주지 않던 그의 그림들을 본다. 그림에는 희진이 알 수 없는 색과 형태들이 있지만, 희진은 곧 그것이 어떤 의미를 기록한 것임을 깨닫는다. 네 번째 루이가 온다. 처음 만났을 때는 희진에게 무관심하다. 하지만 이전의 루이들이 그린 그림을 본 후, 희진을 돌본다.
루이들은 그림으로 계속해서 역사를 기록을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희진은 루이의 그림에 담긴 색채 언어를 분석하려 한다. 그러나 루이가 사용하는 색은 인간의 감각을 넘어서는 범위에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루이들은 이전 개체가 남긴 기록을 읽고 습득하여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네 번째 루이가 떠나고, 다섯 번째 루이가 왔을 때 희진은 구조된다. 희진은 오직 루이가 그린 한 종이 뭉치의 그림들을 들고, 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루이의 색채 언어를 해석한다.


기록을 통해 다른 개체가 같은 개체로 연속된다.

경험과 감정,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까지도 이전의 루이에서 다음의 루이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새로운 루이는 더 많이 희진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 증거로 루이는 희진처럼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짓기 시작하고, 그리고 더 빠르게 죽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떠올랐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공부해야 한다.


루이들은 기록을 전수하고 받는 것을 통해 정말 온전히 같은 루이가 될 수 있을까?

희진이 루이의 색채 언어를 다 해석하게 된 후에는 루이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외계 생명체인 루이들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색채 언어는 그만큼 풍부하고 정확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부족하다.

나의 생각, 감정, 경험을 온전히 기록하기에 부족하고, 전달하기에도 모자라다. 관찰하는 시선과 시간, 그리고 정성이 모자를 수도 있겠다.


결국에 진실은 가려지고 감정은 왜곡된다.


그래도 나를 기록하고, 타인의 기록을 읽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루이는 그의 그림 속에 희진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생물이다.


부족한 감각과 언어임에도 우리는 표현하고 기록을 한다.

희진은 루이를 관찰했고, 그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나는 루이가 그런 희진을 놀랍도록 아름답다고 판단했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의 나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나보겠다고 당차게 탐사선을 탔는데,

뭔가 잘못되어 끝없는 우주를 부유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복잡하고 뒤틀려 있던 마음 때문에 어떠한 언어도 뱉어내지 못하고 있던 손이

그란사쏘에 오니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록을 멈추지 말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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