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속단하지 마세요

국립로마현대미술관 MAXXI

by 머쓱

나의 친구 '매일이'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처음 매일이를 만났을 때에는, 눈이 참 맑은 사람이었다. 강아지와 같은 맑은 눈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매일이를 알아가며 공감하는 마음은 '경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주며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내가 겪어봤기 때문이 아니다. 경험해본 것을 "맞아, 맞아, 그렇지"라고 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에 대한 이해라기보다는, 자신의 기억을 돌이켜보며 자위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똑같이 경험할 수는 없다. 신형철 평론가가 말했듯, 사랑은 공부하는 것이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던 사람이라도 느끼는 바는 다르다. 마음을 알아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공부해야 한다.


나는 매일이를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다. 그런데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범주화시켜가는 것이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라고 머릿속으로 분류를 해가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뇌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알고 싶으면서 알고 싶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을 것이고, 끝까지 공부하고 싶다. 매일이의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모든 날들을, 그러니까 '매일'을 궁금해하며 함께 살아가고 싶다.


매일이는 시를 쓴다. 말을 어눌하게 하는 편이지만, 할 말은 확실히 하는데, 시는 서정적으로 쓰는 편이지만, 때때로는 굉장히 냉철하고 합리적인 문장을 구사한다. 새로운 면을 발견할 때마다 놀란다. 관계가 깊어진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한 단어,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을 때부터이다. 꽤 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취향과 성격, 모든 것이 예상 불가고 그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 주기를 바라게 된다.


그런 매일이가 어제 카톡을 하나 보내왔다.

꽤 긴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정리하면 누군가 매일이에게 이런 소리를 했다고 한다.


'착한 건 좋은데, 너는 너무 애가 무르다'

'생각해봐, 넌 지금 행복할걸? 아니라고? 행복하다니까? 덜 행복하거나 더 행복한 거, 둘 중에 하나야. 골라봐.'


매일이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에게 무르다, 착하다, 사려 깊다, 타인을 존중한다, 속을 알 수 없다, 속이 깊다,... 이런 단어들의 정의를 다시 깊이 생각하고 내려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의 세상을 강요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사실 매일이는 착하지 않고, 무르지도 않다. 그래서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 말을 한 사람에게 확실히 "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이 틀린 것이다"고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매일이에게는 '잘했다!' 라고 했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속에서 속상함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이 속상함은 내가 혼자 풀어야 할 나의 감정이다.

그래서 매일이가 생각나는 공간에 가기로 했다. 국립로마현대미술관, MAXXI에 있는 카페다.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 언젠가 매일이가 로마에 오게 된다면, 꼭 함께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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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매일이는 카페를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나와 같다. 하지만 내가 베이지 톤의 공간이 좁고, 테이블 사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지트 같은 느낌의 카페를 좋아한다면, 매일이는 하얀색의 공간을 좋아한다. 그리고 키가 커서 그런건지, 넓은 공간을 좋아한다. 나는 한 군데 오래 앉아 있는 걸 잘 못하는데, 매일이는 잘한다. 같이 있는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의 기쁨을 매일이에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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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하얀 공간, 커피를 잘 못 마시는 매일이에게 적합한 달달한 음료들도 있어서 매일이가 떠올랐다. 언젠가 매일이가 로마에 온다면, 시내에서는 조금 벗어난 이곳에 함께 가고 싶다. 그리고 나는 긴장할 것이다. '여기를 매일이가 좋아해 줄까?' 생각하며, 혹시 좋아해 주지 않는다면 말해야지.


'나는 네가 보고 싶을 때 여기에 왔어. 너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때 여기에 왔어. 이 공간이 썩 괜찮지 않더라고, 너를 향한 나의 그리움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줘.'




백수린의 단편 소설 <시간의 궤적>의 한 구절이다.


그날 언니와 나눈 대화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사실을 나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러니까, 어떤 이와 주고받는 말들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들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일이와 말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는 것은 음악을 듣는 기분이고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늘 함부로 예측할 수 없다. 그저 나는 나를 보여주고 그녀를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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