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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의 먼지 Dec 24. 2023

다시 만난 빌런들.

 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기억은 진하고 진할까. 잊고 싶은데 잊혀지지 않는 얼굴들과 그날의 기억들, 감정들까지. 각자 자기만의 '빌런' 한 둘 쯤은 있을 것이다.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죽일 놈의 '빌런'들 말이다. 


 여기, 아주 유명한 유사과학이 있다.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이다. 

김범준 교수님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그치, 관상은 과학은 아니지만 나랑 상극이었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보면 경계심이 생기는건 어쩔 수 없다구요!


 알바를 시작했다. 팀원들과 인사를 하는데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아??????응....????

머릿속에 '빌런 리스트'가 촤라락 펼쳐졌다. 빨간불이 켜졌다. 아...그냥 도망 가야 하나? 느낌이 안 좋았다. 놀라운 건 3명 모두 기억 속 '죽일 놈의 빌런들'과 닮았다는 거다. 얼굴과 말투, 목소리, 체형, 일처리 방식 뿐 아니라, 개인적인 생활 방식, 스타일도 너무 판박이었다. 일을 하면서도 자꾸 예전의 그녀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닮아도 이렇게 닮을 수가 있지. 왜 하필 최악이었던 그녀들을 모아둔 곳에 내가 있는거지...경계심과 조심스러움을 놓지 않고 일만 했다. 그런데 그녀들, 엄청 나이스했다. 예의와 친절, 친근함까지 겸비한 귀한 사람들이었다. 혼란스러운 며칠을 보내고 익숙해질 즈음, 그녀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들이 내 동료여서 기쁘고 다행이다. 역시 김범준 교수님이 옳았다. 관상은 과학이 아니다! 에휴! 과학 만만세다!


 '빌런들'. 솔직히 미워하는 마음이 컸다. 마주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서든 돌아갔다. 당신들이 평온하지 않길 바라는 날도 있었다. 내가 힘들었던 만큼 당신들도 힘들기를, 꼭 되돌려 받길 울며 기도하는 밤도 있었다. 괴롭고 힘든 마음을 날카롭게 갈아 깊숙히 지니고 있었다. 


 끊어질듯 팽팽한 마음이 어느샌가 느슨해졌다. 나쁜 기억이 재생되던 기억은 이제 새로운 그녀들과의 좋은 기억으로 덮어쓰기가 되고 있다. 나쁜 기억들은 흐려지고 나는 해방감을 느낀다. 무겁게 짓눌렸던 기억들은 이제 정말 지나간 일이 되었다. 나는 현재에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형태로 만나 과거의 업보들을 풀어내고자 다시 만난건 아닐까. 그들도 다른 형태의 나를 만나 업보를 풀어내고 있을까. 운명의 수레바퀴는 굴러가고 우리는 이렇게 만난다. 우리, 둘러 앉아 엉킨 실을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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