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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Oct 02. 2023

명상을 하고
더 글이 쓰고 싶어졌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것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일상적으로 습관적으로 시작하는 미사여구가 아닌 가장 본질적인 메세지를 기다린다.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을 때 가슴 속으로 가장 깊게 들어오던 진실된 문장들이 내 속에도 있다고 믿는다.


진솔해지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건지, 글을 쓰다보니 진솔해지고 싶어진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명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글쓰기를 어느샌가 그만뒀을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내면을 끄집어내는 일인데 나는 내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무척이나 어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명상을 꾸준히 하고 나서야 상담과 명상의 중간 중간 감정과 철저하게 유리된 듯한 기분을 느낀 이유를 이해한다.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책임감과 의지를 맨 앞줄에 세우고 그에 부합하지 못한 감정들은 모두 무시하고 살았다. 내 속에는 너무나 다양한 감정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각각 다른 감정들이 살아났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들기도 했다.


10살 때 집안 사정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할머니 집에서 살게되던 날 나는 정말 두려웠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했고, 정말 괜찮다고 느꼈다. 나는 언니이고, 나는 부모님의 야무지고 의젓한 첫째 딸이고, 밝고 씩씩하게 사는 게 나에게도 더 이롭다. 하지만 처음 전학 간 날 나는 무서웠다.


16살 때 단짝 친구에게 절교 당했던 날 나는 너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 당혹감을 어떻게 풀어내야할 지 몰랐다. 나는 가족으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며 조절하는 법을 배운 적 없다. 슬플 땐소리내서 울고, 화날 땐 소리 지르고 때론 상대방을 무시하며 처벌하는 것 외엔 배운 게 없다. 친구가 내가 싫어졌다고 하면 끝인 거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부턴 철저하게 갈등을 만들지 않는 쪽으로 행동했다. 21살 때 그 친구로부터 사과를 받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어른스러워진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주 깊은 곳에는 '다 소용없다.'라는 체념이 있었다. 그랬더니 난 더 외로워졌다. 영원히 나를 사랑해줄 누군가에 대한 갈망만 자라났다.


감정을 틀어막지 못하는 사람이라 감정표현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감수성이 메마른 편도 아니지만 나는 어떤 부분에서 글을 쓸 때나 사람들 속에 있을 때 내 어딘가가 틀어막힌 듯한, 무감각해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관계 속에서 느꼈던 소외감은 자기소외와 같았다. 이제야 그 부분이 내가 눌러온 감정들인 것을 안다. 아주 사사롭고 개성있는 감정의 조각들. 그것들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배우며)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시했지만 그게 전부 나였다.


나는 동생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나빴다가 괜찮아지기도 하며, 강아지를 연민하며 마음이 아팠다가 괜찮아지기도 하며, 배가 고프다고 기분이 울적해졌다가 밥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는 사람.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구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는데 그게 나였다. 모든 사람은 다 충동과 감정이 있는데. 단지 그것이 태도가 되지 않으면 될 뿐인데. 그걸 넌지시 표현하는 법을 몰랐다. 어떤 식으로든 조절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순간순간의 감정들에 집중하니 참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 아득하게 느껴졌던 기억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 감정은 학창시절 기억과 연관되어있고, 그 기억은 더 어릴적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이 비즈 한알이 아니라 우레탄줄로 엮인 여러 색깔 비즈의 집합체처럼 느껴졌다. 딴 사람처럼 느껴졌던, 부끄러운 시절의 내가 전부 나라는 존재로 통일감 있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며칠 마비시켰던 감정들이 올라와 우울해지기도, 무기력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감정들을 감당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된 것이 다행이었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일이 두려울 때도 있지만 희미한 노랫소리 같은 내면의 진실함에 귀를 기울여 본다. 갓난아기처럼 미미한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본다. 초등학교 오학년 때 원고지에 산문을 쓰던 마음처럼 다시 초심자의 마음으로 쓴다. 서툴지만 꾸준하게. 어디로 가게 될 지 모르는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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