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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May 29. 2023

외로움과 자기 소외

나는 몸이 아프면 더 외로웠고 내가 성가셨다.


    작년 겨울,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피부에 염증이 생겼다. 태어나 처음으로 여드름약을 먹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이미 복용 중인 다른 약이 있어 부작용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보기 싫게 흉이 진 상태를 어떻게 더 호전시킬 수 있을까 유튜브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후기도 열심히 읽었고, 세안 습관이나 세안법도 귀찮지만 전부 바꿨다.


    그로부터 6개월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피부가 염증으로 고생한 흔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부지런히 피부에 정성을 쏟는 와중에 배란기가 돌아오면 호르몬 때문에 새로운 트러블이 또 올라왔다. 염증이 생기기 이전으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럴 때면 몸통 깊은 곳에서부터 화가 올라온다. 클렌징오일로 5분 동안 각질을 녹이고, 클렌징폼으로 1분 동안 클렌징을 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각질제거, 진정팩을 한다. 관성처럼 그 법칙을 따르고 있다가도 손가락 끝에 만져지는 오돌토돌한 트러블 감각이 너무 짜증 나서 피부를 힘주어 박박 문대곤 했다.


    "너무 손에 힘을 줘서 머리를 감으면 오히려 두피가 예민해질 수 있어요." 지루성 두피염 때문에 한참 고생할 때 단골 미용사 선생님이 해준 얘기가 생각났다. 이상하게 미용실에서 샴푸를 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고 잠이 솔솔 온다. 그분들은 내 두피와 모발을 소중하게 만져주었는데 그날은 두피가 가렵지 않았다. 내 두피의 찌든 때를 벗겨낸다는 마음으로 손가락 끝으로 힘주어 밀어댔는데 그게 능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내 두피가 귀찮았다. 나는 내 몸을 너무너무 말을 안 듣는 귀찮은 사람 하나를 마지못해 씻기듯 짜증을 실컷 내며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사는 게 번거롭고 귀찮아죽겠는데 이놈의 두피, 이놈의 피부가 날 더 성가시게 만든다. 내 몸이 내 맘을 따라주지 않는다. 고 생각하면서. 바디 포지티브나,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고 스스로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여전히 내 몸을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건강하게 내가 원하는 스케줄을 따라와 줄 땐 고마워한 적도 없으면서 어떤 연유로 신체가 좀 지치고 힘들어서 파업을 선언하면 한숨부터 쉬었다. 마지못해 병원을 가고, 약을 먹고, 이렇게 안 하면 더 나빠진다니까 의무감으로 생활습관을 조정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몸을 사랑으로 보살피고 아껴줄 줄 몰랐다.


    몸 여기저기 염증이 생길 때면, 나는 부단히도 외로웠다. 피부가 더럽고 두피에 보기 싫은 각질이 생겨도 누군가 이런 날 사랑해 주기를 바랐다. 몸이 아파서 성취하지 못하는 나도 강점과 가치가 있다는 무한한 격려를 바랐다. 그땐 그냥 내가 마음이 약해져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몸이 아프면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것이라고.


    그 생각 역시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외로웠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나를 소외시켰기 때문이었다. 아픈 몸을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아픈 나의 몸을 사랑하지 않고, 보살필 여력이 없었다. 건강할 때의 내 몸만 인정하고, 살이 찌지 않고 열심히 운동할 때의 나만 나로 인정했다. 염증이 생긴 건 지금 삶이 조금 버겁다는 몸의 표현인데도 들을 생각조차 않았다.


    너무 외로워 누군가의 보살핌과 관심이 필요할 때, 요즘 나는 내가 나를 소외시키고 있진 않나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모질지 못한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에겐 무자비하다. 하지만 나에게도 나의 인정과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부터 언젠가, 여드름으로 흉 진 피부를 보고 짜증이 올라왔지만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아 고맙다며 조심조심 어루만지며 클렌징을 했다. 싸우고 헤어진 친구와 어색한 근황을 주고받는 것처럼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감기몸살로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을 때도 계획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네가 푹 쉬고 회복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자문자답을 했다. 잠이 오지 않아 오래 뒤척이던 그날 밤, 그래도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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