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면 좀 더 진한 세계로 간다
숨이 가빠오고 정신이 또렷해지면
꽃의 색이 더 진하게 물들고
풀 내음이 더 깊이 마셔진다
도시의 소음도 더 또렷이 들리고
공기의 결이 날카롭게 피부를 스친다
모든 감각이 깨어나듯 살아난다
땀이 흐르고 심장이 뛰는 순간,
나는 내 몸이 아니라 순수한 속도 그 자체가 되어
길을 가르는 바람 속으로 녹아든다
지금 이 순간, 머릿속이 비어가면서도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근육이 타오르고, 발이 땅을 차는 리듬에 맞춰
세상은 느리게 흐른다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도착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계속 달린다
숨이 찰수록, 더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듯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