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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로 Apr 07. 2022

퇴사 후 짧은 2주간의 휴가 기록 (1/2)

나조차도 내가 부러운데, 2주 동안 뭐하지?

첫 회사를 그만두다.


그만두고 나니 오래 다녔다 싶다. 만으로 거의 5년을 다녔다. 타칭 자칭 고인물이 되어 이제 회사 내에 아는 사람보다 새로운 사람이 많아질 무렵이었다. 회사가 지겨운 건지, 직장 생활이 지겨운지, 둘 다인지 구분이 불가능할 때쯤 그만두게 되어 천만다행이지 싶다.


사실 이직 준비는 3년 차부터 시작했다.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나 직장생활 전반에 대한 환멸을 드문드문 이직 준비로 해소했고, 더 이상 못 다니겠다 싶던 작년에는 그냥 그만두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았고, 그렇게 준비만 하다 끝날 줄 알았던 길고 긴 이직 준비도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2017년 같은 날에 입사해 동고동락했던 사수 선배가 나보다 두 달 앞서 퇴사를 했다. 그때 진작에 마음을 정리했다. 그래서 이직이 결정되고, 회사에 통보하고, 퇴사일을 조율하고, 퇴직연금 계좌를 개설하고, 짐을 싸고, 노트북까지 모조리 반납하는 모든 과정까지 착착 빠르게 진행됐다. 결정만 되면 바로 짐 싸고 ‘안녕히 계세요’ 할 준비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해두었기 때문에 주어진 to-do-list 도장을 깨듯 거침없이 진행해갔다. 퇴사가 아니라 이건 졸업이었다.


눈물의 퇴사 파티는 없었지만


딱히 슬프지도 않았는데, 대면으로 한 명씩 퇴사 인사를 전하다 보니 감정이 몰려왔다. 돌이켜볼 추억도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함께한 희로애락이 있었고 그때를 돌이켜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져 갔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자연스러웠던 어떤 복잡한 감정으로 그렇게 선후배들과 마지막 식사 겸 티타임 가졌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두 문장이 내 마음을 울렸는데, 분명 머리로는 정리가 되었어도 사실 마음속으로는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넌 어딜 가나 잘할 거니까 거기 가서도 분명 잘할 거야"

"정말 잘됐다. 그동안 너무 수고 많았어. 진짜 축하해."


마지막 인사로 너무 흔한 표현인데도 진심이 느껴져서 감동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 '잘했다, 고생 많았다' 하는 것보다 함께 그 과정을 지켜봐 온 동료가 해주는 그 말들이 왜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지. 마지막 퇴사 주간에 인사를 전하며 만난 여러 선후배들의 마음 따듯한 인사와 격려에, 첫 회사 졸업 이 정도면 우등 졸업생이다 싶었다. 마지막 출근일에 나를 보러  일부러 먼 길을 찾아온 이미 퇴사한 선후배 동료들(이라고 읽고 친구들이라고 부르는)이 함께한 퇴사 파티에 정작 당사자는 눈물 흘리지 않았지만 자리를 빛내준 후배가 대신 마음을 다해 슬퍼해줘서 내가 우는 것보다 더 값진 마무리 였던 것 같다.

퇴사 파티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백수 1일 차


퇴사 파티 다음날 정오 느지막이 일어나서 해장을 하고, 보고 싶었던 시리즈를 몰아봤다. 금요일에 퇴사했기 때문에 주말 간은 그냥 푹 쉬자 싶었다. 그리고 일요일 밤이 되자 ‘남은 2주간 뭐하지'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회사의 입사까지 2주가 주어졌던 참이었다. 최대한 나를 채우는 시간으로 보내고 싶었다.


그 마음먹는데 큰 공헌을 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 퇴사 주간 오후에 첫 팀장이셨던 부장님과 간단한 티타임을 보내게 되었다.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던 내게 부장님이 차 한 잔 하자며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셨는데, 그 말이 상당히 동기부여가 됐다.


“XX 아, 첫 회사와의 이별에 생각 잠겨있을 시간이 없어. 너에게 주어진 2주, 새로운 회사 입사하기 전에 남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야. 메신저 안 봐도 되고, 출퇴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잖아. 새로운 회사 들어가서 '아 그때 그거 할 걸' 아쉬움 남지 않도록 진짜 의미 있게 보내.

앞으로 남은 2주가, 퇴사 후 잠깐 쉬는 2주가 아니라 새로운 회사 입사하기 전 너에게 주어진 특별한 2주인 거야. 나는 첫 회사 그만두고 해외여행 다녔거든? 내 아는 후배는 지리산 올레길 걷다 오고 그랬어. 어쭙잖게 서울에서 예쁜 카페 가서 노트북하고 멍 때리지 마. 그거 너 퇴사 안 하고도 할 수 있는 거야, 회사 안 다닐 때 할 수 있는 게 뭘지 생각하고 의미 있게 보내"


그때 부장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퇴사 블루에 젖어 약간 복잡한 마음이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정신이 팍 차려졌다. 첫 회사와의 이별은 주어진 시간 안에서 잘 마무리하고, 남은 시간 후회 없이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엄마와의 제주도 여행을 예약한다.

본격적으로 나를 풀 충전 해보자  


첫 주말 후 찾아온 월요일. 수요일 여행에 앞서 트랙킹화와 바람막이 하나를 구매했다. 제주도 가서 새 신발, 새 옷 입고 날아다니고 싶었다. 집 근처 쇼핑센터, 홍대 쇼핑센터 야무지게 돌아다니면서 현장 피팅한 후 마음에 드는 핏을 구매했다. 그리고 화요일, 서울로 올라온 엄마와 함께 이미 계획해둔 일정표를 함께 보며 여행을 계획한다.


퇴사하기 전부터 나는 이야기 수집가처럼 주변이들의 퇴사  위시리스트를 묻고 다녔다. 이미 퇴사를 경험한, 희망하는 주변 이들에게 퇴사  시간을 어떻게 내고 싶은지 아이디어를 했다. 모두 공통적으로 제일 먼저 꺼내는 단어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여행 말고  뭐하고 싶냐고 물으면 대다수 대답이 바로  나왔다.


“음… 글쎄, 또 뭐해야 할까?”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행 빼고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국내에서 노는 거야 거기서 거기 아냐?’

다소 김새는 말이지만 정말 속마음은 그랬다. 그래서 쉬는 것도 참  프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쯤계획 없이 자유롭고 싶었.

그래서 ‘ 이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지?’ 며 2주간의 특별한 룰을 정했다.

계획은 그만. 이제 나는 하루살이다. 뭐할지는 그때그때 정하자.


주어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고 할수록 고민만 많아지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너무 깊게 계획하지 않고 그때그때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지내기로 결심한다.  


엄마와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와 다시 또 주말이 다가왔을 때,

일주일밖에  남았다는 생각에 약간 조급함이 들었다. 

고작 일주일 밖에 안남았다는 생각이 등골을 서늘했다.


그리고 월요일 오전에 운동을 다녀와 따듯한 햇볕과 바람을 느끼며 집에 돌아가면서,

4월 이렇게 좋은 날씨에 서울에만 박혀 있기 아무래도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제주도로 2차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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