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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로 Oct 28. 2023

워커홀릭이 번아웃을 대하는 자세

돌아버리겠는데 어떻게 하지?

"워커홀릭 아닌데요..?"

사람들이 날 워커홀릭이라고 했을 때,

난 단호히 부정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일을 계속하다 보니까 (일을 확실히 좋아하진 않지만)


인생과 다르게, 일은 내게 있어  

1. 아주 분명과제와 목표 

2. 시작과 끝이란 명확한 타임라인

3. 결과만 준수하다면 달콤한 인정과 성취도 맛볼 수 있는 확실히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무엇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왔다. 그렇게 1년, 2년, 3년, 어느덧 직장인 7년 차가 된 지금까지.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란 생각이 하루 이틀 축적된 어느 날

회사 사람들과 워크숍을 갔던 날이었다. 말이 좋아 워크숍이지, 같이 일하는 팀원끼리 워케이션을 갔다.

상상을 초월하는 프로젝트 업무 강도로 인해서 나를 포함한 모두가 지쳐 있었고,

회사는 전원 퇴사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복지 차원으로 우리 팀을 워케이션에 보냈다.


장장 5박 6일 동안 중간중간 함께 모여 업무를 하다 때 되면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야근은 이어졌지만 적어도 회사 밖이라 숨통은 트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 숙소에서 다 같이 술을 마시게 됐다.


그날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통제 성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일을 잘할 수 있는 원동력 아주 깊은 곳에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목표 수준으로' 결과물을 끌어올리려는 성향에 기반한다는 걸 자각했던 것 같다.


평소 일을 월급 이상으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긴 했다. 직무가 성향에 잘 맞아서 업무가 재밌었고, 팀을 이끌어갈 수 있을 만큼 대인관계적인 스킬도 있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직장인이 지니기엔 지나친 끈기와 책임감, 자기희생적인 성실함이 있어 여러 복합적인 측면이 업무를 하는 데 있어 시너지를 낸다고 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멈춰야 할지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내가 중독된 건 일이 주는 안정감인줄로만 알았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안정감이란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통제 감각에서 벗어난 회사 밖의 나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대하고 있었을까?

나는 인생의 불확실성으로부터 일로 도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홀로 있을 때 내가 느끼는 취약함의 근원을 찾은 느낌이었다.


일만 열심히 했지, 나의 삶을 진정 열심히 살았던가

지나친 업무 강도에 스스로를 갈아가며 일을 하면서 이미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번 아웃이 왔단 걸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도 계속 무엇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단 물음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그저 하루하루에 몸을 맡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나의 이런 업무 패턴은 스스로에게서부터 시작됐다고 자각하고 나니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마주해야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도 기꺼이 껴안고,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인생을 온통 일이 아닌 더 좋은 것으로 채워 나갈 수 있도록

나를 더 좋은 곳에 데려다주고, 더 좋은 것을 먹이고, 더 좋은 것만을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출근길이 달라졌다

난 아침 출근길을 퍽 좋아한다.

아침해가 비추는 길가의 환한 풍경, 계절감 짙은 가로수, 이어폰 너머로 들리는 음악

내게 아침 출근길은 '오늘 하루'와의 특별한 만남 같은 것이다.


아침 출근길 같은 일상 속 소소한 나만의 즐거움을 찾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서점과 도서관도 자주 가고,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도 자주 타고,

내가 좋아하는 계획 세우기와 글 쓰기도 자주 하고,

내가 좋아하는 고요한 수목원에도 자주 가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그리고 내게 좋지 않은 습관과 패턴을 버리기로 했다.

술과 담배도 점점 줄이기로 하고,

식사 패턴이나 수면 패턴도 건강하게 돌리고,

회사에서 지나치게 오래 남지 않으려고 하고,

회사에서 너무 열심히 일하려고 치면 스스로를 컴다운하고,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목표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고 하고,

브런치도 자주 들어와 글을 쓰기로 하고,

이틀에 한 번은 헬스장에 가기로 하고,

하루에 한 번 명상과 바른 자세를 위한 연습도 하고,

하루에 한 번은 감사일기도 쓰고,

영어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이유


워커홀릭이라고 번아웃의 해결 방안 별거 없다.

나를 돌보는 일 밖에 해결책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대단한 해결책을 가져 보고 싶었다.

'번아웃 발생 대응 방안'해서 세부 시나리오까지 정리해서 스스로한테 쥐어주고 싶었다.

'지금 너 번아웃 초기야, 얼른 이거 해!' 하면서 스스로를 또 통제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냥 멍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 비우기에 집중한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카페 창문 밖을 바라보며,

헤드폰 너머로 들리는 좋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나를 돌보는 거, 별거 없지 않을까?

엄마가 아이를 돌볼 때 그저 넘어지지 않게 지켜볼 뿐이니까

나도 그저 나 스스로 넘어지지 않고 혼자 잘 돌아다니도록 지켜볼 뿐이다.

늦가을 정취 느끼며, 콧바람 쐬고 오늘 하루도 즐겁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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