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낫투데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호 Oct 27. 2017

낫투데이 - 20171027

힘겨운 시간들


꽤 오랜 시간을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보고 멘탈이 강하다고 평가를 하곤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글을 써 올리냐는 거죠.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저는 참 약한 사람이에요. 성격도 약하고 마음도 약하고 몸도 약하고 겁도 많습니다. 그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의연하고 담담한 척을 해 온 겁니다. 평생 동안 말이죠. 


낫투데이를 연재하는 것도 사실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거라도 안 하면 정말로 마음이 공중에 붕 떠버리고 나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놓쳐 버릴 것 같아서 겨우 겨우 해 오던 거라고 평할 수 있겠네요. 


최초 암 확진을 받던 순간 세상이 갑자기 세피아 톤으로 보였다는 얘기는 다른 글에서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엄청난 충격을 받고 그래도 정신을 차려서 어찌어찌 수술받고 방사선 치료받고 회복기간을 가졌었죠. 한 1년 순조롭게 회복을 하면서 그래도 마음의 상처가 조금은 치유가 되었던 것 같아요. 희망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완벽하게 치료가 될 상황은 아니었겠죠. 


그런 상태에서 재발 판정과 2차 수술은 제 멘탈을 산산이 부수어 버리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상 패닉에 빠지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수술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도 심하고, 항암치료 후유증이 또 덮치고, 그로 인해 컨디션이 엉망이 되는 줄 알았더니 또다시 재발을 했던 겁니다. 수술 후유증 치고는 통증이 너무 오래간다 싶었더니 그 안에서 종양이 정상조직을 해치면서 다시 자라고 있느라 통증이 지속되었던 거랍니다. 


최근 다시 검사를 받은 결과, 수술 부위 근처로 다시 종양이 자라나고 있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수술도 더 이상은 힘들고 방사선 치료로 어떻게 종양의 진행 속도를 늦추고 크기를 줄여 보기 위해 계획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상황은 발병 이후 최악으로 악화된 겁니다. 재발과 2차 수술 때부터 깨져 버린 멘탈은 이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조각이 나버렸네요. 그래도 어디 가서 엉엉 울지도 못하고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죠. 이젠 그럴 힘도 없습니다. 


결국 행운의 여신은 저의 편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만 하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그간 살아온 온갖 이야기들이 머릿속을 자꾸 채우고 좋았고 행복했던 기억보다 아쉽고 억울했던 기억들이 더 뚜렷하게 떠오르고 흡족함과 평온함 보다는 답답하고 미진한 것 같은, 뭔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은 생각만 듭니다. 


그런 상태에서 SNS에 의미 없는 농담이나 몇 개씩 써 올리고 그러고 시간을 보낸 겁니다. 그 상태에서 무슨 글을 쓰고 무슨 심정을 정리하겠어요. 그건 제가 진짜로 강철 멘탈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고, 한다 하더라도 거짓말밖에 쓸 수가 없었을 겁니다. 속 마음은 다 부서진 상태에서 멀쩡한 척, 이성적인 척하는 글 밖에 쓸 수가 없었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날 멍하니 앉아서 한참을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묘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절망스럽고 암울하고 그런 기분이 조용히 가라앉으면서 마음이 평온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제가 그 순간에 뭔가 심오한 걸 깨닫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고 대단한 아이디어를 얻어서 뭔가 사고의 구조를 만들어 내고 그래야 어울리는데 그런 거창한 일은 절대 저에게 생기지 않습니다. 제 판단에는 그저, “사람의 적응력”이었던 것 같아요. 


충격을 받고 절망을 합니다. 당연히 그랬죠. 그래도 그 절망이 영원히 지속되진 않았다는 겁니다. 


어느 순간이 되자, 그래서 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이 자리에서 쓰러져 죽어 버리는 것도 아닌데, 아직도 나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있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데 뭘 지레 절망하고 모든 걸 포기할 것처럼 앉아 있나 싶었던 겁니다. 


그렇게 한 순간 관점이 바뀌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래, 힘든 상황이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뭐 거의 최악의 상황이기도 하지, 그래 봤자 뭐 어쩌라고? 하는 배포가 생겨나더군요. 


조금 있으면 딸아이가 수능을 봅니다. 무려 4수에요. 이번에는 제발 자기가 원하는 학교에 갔으면 좋겠네요. 뭐 자신이 준비한 만큼 결과를 얻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거 지켜봐야죠. 또 막상 대학 들어가면 그 무지막지한 등록금은 또 어째야 하나 걱정도 됩니다. 


수능 끝나면 미리 준비한 대로 이사를 갈 생각입니다. 강원도 산골짜기 같은 곳으로 가서 요양을 할 생각을 했는데 컨디션이 더 악화되자 그건 좀 힘들겠더군요. 일단 치료도 받아야 되고, 또 아내의 도움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 것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평소라면 혼자서 지내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즐기는 편이었는데, 이젠 도움이 없으면 생존이 곤란한 진짜 환자가 된 기분이거든요. 그래서 산골짜기를 포기하고 동네 근처에서 그래도 꽤 규모가 있는 산기슭 쪽으로 새로 지은 깔끔한 집으로 가족과 함께 옮기려고 하는 겁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고민 끝에 준비해 준 치료 계획에도 따라야죠. 심지어 제 조직의 일부가 지금 미국에 가 있는데, 새로 개발한 면역항암제를 시도해 볼 수 있는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조직검사 중이랍니다. 그 결과가 좋게 나오면 저는 그 신약을 테스트해볼 기회를 갖게 될 수도 있어요. 


치료받고 하다못해 산책이라도 열심히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컨디션을 회복시켜보려고 노력하고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읽고 싶은 책도 더 읽고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혼자 앉아서 울상 짓고 있을 이유가 있냐는 겁니다. 


병세는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되겠죠. 점점 더 힘들어지고 제게 엄청난 육체적 타격을 주게 될 겁니다. 그거야 뭐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죠. 


저는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가 중요합니다. 


제가 하기로 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해 가며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생각이에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 외, 나머지 걱정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슬픔과 고통, 미래에 대한 걱정은 충분히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좀 지겹군요. 


여러 날 동안 패닉에 빠져 있다가도 이렇게 마음이 잡히자 그나마 이런 글이라도 써서 올릴 수 있게 된 겁니다. 역시 시간은 모든 것을 치료해 주는 약인가 봅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정말로 큰 힘이 되었고, 아마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도움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정말로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낫투데이 - 201710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