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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14. 2017

추운 겨울날의 김치말이 국수


면류 음식 중에서 사실상 최고봉은 냉면이다. 만들기도 어려울뿐더러 계파가 여러 가지로 형성되어 있기도 하고, 각 계파 간의 자존심도 상당하며, 입맛들도 워낙에 세분화되어 있어서 함부로 "이렇게 만들면 맛있는 냉면"이라고 내밀 수가 없다. 


하지만 국수는 냉면보다는 한결 더 친근한 음식이고, 만들기도 쉽고, 뜻밖에 다양하며, 먹기도 쉽다. 그중에 하나, 정말 만들기도 쉽고, 먹기도 좋은 종목이 바로 김치말이 국수. 이 김치말이 국수는 진짜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어지간히 맛집으로 소문난 집의 그것에 버금가는, 스스로 감탄할 만한 맛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몇 가지 신경 쓸 포인트가 있는데… 


맨 먼저 맛있는 김치가 필요하다. 맛있는 김치란, 어느 정도 숙성이 되어서 김치다운 맛을 내는 김치라는 뜻이며 김치와 김칫국물 두 가지 모두가 다 필요하다. 즉 너무 익어서 군내가 나는 국물이라거나, 아삭거리지 못하고 흐물거리는 묵은지라거나 하는 김치는 쓸 수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김치말이 국수의 맛의 70%는 김치에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리고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물론 초보자의 경우에 한해서이겠지만, 소면 삶는 법이다. 소면은 참 삶기가 쉽다. 어떤 면에서는 삶다가 실패하기가 더 어렵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라면만큼이나 쉽게 삶을 수 있는 면발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미묘한 맛의 차이를 내기 마련이다. 그러니 김치말이 국수의 맛의 25%쯤은 이 소면에 달려 있다.


몇 가지 삶는 팁을 알려 주자면, 센 불에서 물을 팔팔 끓여 소면을 넣어 주고 끓이다 보면 1분도 안되어서 거품이 확 올라올 때가 있다. 이때 반컵 정도 찬물을 준비했다가 부어주면 휘휘 저어주면 거품이 확 가라앉는다. 이것을 두세 번 반복해 주면 좋다. 갑작스러운 냉각으로 면발이 좀 더 졸깃해진다. 


그리고 다 익는 순간을 파악하는 법이 있는데, 불투명하고 흰 소면의 색이 미묘하게 변하는 순간이 있다. 색과 질감이 동시에 변하는 순간인데, 그 순간을 노려 불을 끄고 꺼내는 게 핵심이다. 불과 물의 양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3분에서 4분 사이이니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째려보고 있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순간을 잡았으면 바로 꺼내어 체로 국수를 걸러내어 미리 담아둔 찬물에 투척하여 냉각시켜 주고, 흐르는 찬물에 국수 면발을 살살 문질러서 전분기를 제거해 주면 미끈거리는 느낌이 없어진다. 그렇게 건져 낸 소면을 체에 밭쳐 물기를 충분히 뺀 후, 어른 주먹으로 한주먹 좀 안되게 집어서 돌돌 말아 사리를 만들어 두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 키 포인트는 단맛이다. 우리네 입맛이 너무 단맛에 길들여져 있어서 사실 김치말이 국수의 맛도 단맛이 좀 필요하다. 보통 양념에 설탕을 넣게 되는데, 내 경우 이 설탕 대신 미리 만들어 둔 매실청을 쓴다. 약간 새콤한 맛이 포함된 매실청으로 단맛을 낼 경우, 이 김치말이 국수의 맛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면서 마지막 5%를 채워주게 된다. 


매실청 같은 고급 식재료가 어디 있냐고? 그렇다면 이제부터 매실청 만드는 법을 설명.. 하지는 않겠다. 사다 드시등가~~



실제 작업 과정을 설명해 보자. 


맨 먼저 할 일은 일단 육수를 준비하자. 다른 거 아무것도 넣지 말고 멸치만 충분히 넣어서 국물을 내자. 충분히 우려낸 뒤, 육수를 걸러 맑게 해 주고, 상온에서 일단 식힌다. 


육수가 끓는 동안 김치를 준비한다. 김치는 일단 꽉 짜서 김칫국물을 뽑는다. 이 국물은 육수에 투입될 예정이니 그릇에 깨끗하게 받아 놓자. 이 김칫국물은 멸치 육수가 식기를 기다려 육수에 포함시켜주자. 비율은 육수 3에 김칫국물 1 정도. 


그렇게 준비한 육수에 매실청을 충분히 투입한다. 너무 많이 넣으면 달아서 못 먹으니까 알아서 하시라. 매실청이 없다면 설탕을 큰 숟갈로 듬뿍 넣어주는 수밖에 없다. 입맛에 따라 새콤한 맛을 좋아한다면 식초도 약간 투입해도 된다. 소금을 살짝 넣어주면 단맛이 더 강해진다.


(짠맛이 바닥을 깔아줘야 단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미각의 기본이다.)


그리고 김치를 채 썰듯이 총총 썰어서 역시 그릇에 담고, 이 김치에 역시 매실청과 식초를 적절히 넣고 무쳐준다. 이 김치는 국수의 고명 역할을 하게 되고, 육수와 소면의 맛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줘야 하기 때문에 맛을 좀 강하게 하는 게 좋다. 


이렇게 육수와 김치 고명이 준비가 되면 둘 다 냉장고를 이용해서 냉각을 시켜 준다. 김치말이  국수는 한겨울이라 해도 머리가 띵 할 정도로 차게 먹는 게 제맛이다. 


이렇게 해 놓고 소면을 삶는다. 소면을 삶는 방법에 대해서는 위에서 꽤 자세히 설명했다. 


그렇게 소면 사리를 만들어 그릇에 담고, 미리 준비한 김치 고명을 꺼내 위에 얹는다. 


이렇게. 


고명이 좀 많이 올라간 감이 있지만, 내가 먹고 싶어서 그랬다. 그리고 냉장된 육수를 꺼내 부어준다.



완성이다.


새콤달콤하고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김치말이 국수 완성이다. 더 시원하길 원하면 얼음을 몇 개 띄워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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