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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티카카 Nov 24. 2021

물속에서 춤을 춘다

어쨌든, 수영 17


폐활량이 적어서 잠영을 잘하지 못한다. 레인의 25미터 끝까지 숨을 참고 잠영을 하는 날이면, 다리에 쥐가 난다. 꼭 오른쪽 종아리만 굳어서 딱딱해진다(그쪽의 근육이 스트레스를 더 받나 보다). 그러면 한쪽 구석으로 가서 오리발을 힘겹게 벗고 양손으로 종아리를 주무른다. 하지만 이후 수업 시간에 다시 수영은 할 수가 없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오리발을 끼고 발차기를 다시 하는 순간, 또 쥐가 난다. 


잠영할 때는 물속에서 숨을 참다가 죽는 건 아닐까란 두려움도 있다. 바짝 긴장해서 오줌을 쌀 것만 같다. 수영장에서 샤워실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화장실을 간다. 추운 날씨에는 더더욱 화장실에 가고 싶다. 잠영하는 날에는 더더욱 화장실을 가고 싶다. 잠영을 처음 배울 때는 오리발을 끼고도 25미터를 한 번에 끝까지 가기가 어려웠다. 오리발 없이 25미터를 가는 잠영은 수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잠영에 대한 지구력과 노하우가 아직까지 턱없이 부족하다. 좀 더 폐활량을 늘리고 길고 멀리 갈 수 있는 발차기를 연습해야만 한다. 


선생님은 잠영할 때 접영 발차기를 세게 차지 말고 천천히 힘을 빼고 차라고 말하지만, 발차기를 살살 차다 보면 앞으로 잘 나가지 않고, 힘을 줘서 발차기를 차면 숨이 막혀 중간에 올라올 수밖에 없다. 입을 꾹 닫고 숨이 찰 때쯤 한두 번만 침을 꼴깍 삼키면 끝까지 갈 수 있다고들 말하지만, 그 한두 번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중간쯤에 올라오고 만다. 숨을 너무 많이 참으면 머리가 아플 수 있으니 본인이 가장 적절히 조절하면서 잠영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선생님이 말했다. 끝까지 갈 욕심에 너무 숨을 참아서도 안 됩니다!


내가 보기엔 수영을 오래 한 분들은 잠영도 아주 편하게 한다. 난 자유형 잠영이나 접영 잠영보다 평영 잠영이 더 좋다. 물론 평영 잠영도 25미터를 끝까지 가지 못하지만, 평영으로 잠영을 하는 날에는 물속에서 천천히 춤을 춘다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보면 개구리헤엄으로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겠지만.


잠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고개를 들지 않는 거다. 수영장 바닥에 최대한 가깝게 붙어서 발을 차고, 고개를 많이 들지 않고 앞만 보면서 가면 25미터의 끝에 그려진 바닥의 T자 표시가 보인다. 잠영을 배울 때는 T자까지 편하게 간 적은 드물지만, 그렇게 도착할 때면 수영하면서 폐활량이 조금은 늘었구나란 생각을 한다. 선수용 오리발을 끼고 하면 더 멀리 잘 나가는가 싶기도 하지만, 문제는 오리발의 성능이 아니라 내 폐활량이다. 잠영을 할 때 고개를 많이 들면 바로 몸이 물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물속에 오래 버티고 있을 수가 없다. 


수영 수업 시간에 다양한 영법으로 수영장을 많이 돌지 않은 날은 잠영을 왕복으로 몇 번쯤 해도 힘들지 않지만, 앞서 수영을 많이 한 날은 힘들고 숨이 차서 잠영을 1바퀴만 해도 2번째 바퀴부터는 다들 레인의 끝까지 갈 수 없고 중간쯤부터 올라와 숨을 쉬고는 자유형을 한다. 수영장 물이 깨끗한 날에는 잠영을 하면 기분이 좋다. 어디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나 혼자만 물속에서 춤을 춘다는 느낌이랄까. 


잠영을 다 배우면 그다음엔 턴을 배운다. 25미터 끝까지 다 가면 영법마다 각각 다르게 해야 하는 두 가지 턴(사이드 턴과 플립 턴)이 있다. 초보일 때는 25미터를 가서 쉬었다가 돌아왔지만, 초급을 넘어가면 무조건 한 바퀴를 돌아야 한다(25미터 풀 기준). 자유형과 배영을 할 때와 평영과 접영을 할 때의 턴은 다르다. 25미터 풀에서 수영을 하기 때문에 1바퀴든 5바퀴든 수영을 이어서 할 때 필요한 동작이다. 초급일 때는 25미터까지만 죽어라 발차기를 해서 갔다. 힘들고 숨도 차서 끝에 도착하면 쉬었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올 때는 발로 벽을 차고 출발했지만, 모든 영법을 다 배우고 교정이 시작되면 턴을 하고 돌아오는 법을 배운다.


사이드 턴은 한 손으로 벽을 잡고 방향을 전환하는 턴이다. 사이드 턴을 배울 때는 오른팔이 아팠다. 오른팔로 몸을 당겨서 돌리고 발로 벽을 차고 나가야 하니까, 오른팔에 무리가 되었나 보다. 지금은 몸만 살짝 틀면서 사이드 턴을 하려고 노력한다. 사이드 턴을 할 때는 숨을 쉬지 않고 와서 바로 돌아서 출발하면 좋다고 한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 한 박자 숨을 쉬고 돌아가기 때문에 앞사람과 거리 차이가 난다.


오리발을 끼고 수업할 때는 사이드 턴이 좀 다르다. 한 발로 오리발을 벽에 대고 사이드 턴처럼 도는 분들도 있지만, 오리발을 꼈을 때는 몸을 온 방향과 반대로 완전히 돌리고 두 발로 벽을 차고 나가야 한다. 턴은 어렵다. 수영에서 쉬운 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숨 쉬기부터 턴까지.


수영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오리발을 끼고도 사이드 턴을 잘한다. 수영을 못하던 시기에는 사이드 턴 자체를 못하기에 25미터를 돌기만 하면 턴을 할  때마다 앞사람과 거리가 많이 벌어졌다. 요즘도 오리발을 끼고 사이드 턴을 빨리 하지 못해 턴만 하면 앞사람과 거리가 많이 벌어지고,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고 빨리 앞사람을 따라가서 벌어진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생각에 수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여전히 허우적대며 팔을 돌리지만, 내 속도대로 가면 거리가 좁혀지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수영 선수들이 시합에 나가면 50미터 반환점마다 도는 턴이 플립 턴이다.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반 바퀴 돌고 손을 머리 뒤로 죽 뻗은 다음에 자세를 잡고 발로 벽을 차고 출발하는 거. 플립 턴을 배우면서 물을 아주 많이 먹었다. 수영을 하면서 턴을 해야 하는 곳까지 속도를 유지하면서 가야 하는데, 멈추면서 가니까 180도 턴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벽에 가까이 가면 돌다가 머리를 부딪칠 것 같은 불안감에 떨어져서 하려고 하니까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서 한 바퀴 돌면서 발이 벽에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돌다 보면 바닥에 발이 닿을 때가 더 많다. 플립 턴을 할 때는 물속에서 숨을 참아야 하는데, 긴장해서 그런지 숨을 쉬어버리니까 코로 물이 들어와서 머리까지 띵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플립 턴을 하는 길도 멀다.


수영 대회에 나가려면 사이드 턴보다는 플립 턴이 수영 기록 단축에 더 유리하다고 했다. 하지만 100미터가 아니라 50미터 시합에 나갈 거니까(50미터 수영장에서 대회가 열림) 조금씩만 연습하고 있다. 난 기록 단축에 힘쓰는 수영 선수는 아니니까. 자유 수영을 갈 때마다 조금씩 플립 턴을 연습한다. 매번 물을 먹으면서. 


이현진 수영선수의 유튜브 플립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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