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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30. 2024

미역국에 마늘 넣을까 말까

남아선호 세대

비가 온 다음날이라 기온이 팍 떨어졌다.

날씨가 선들해지면 따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늘 해 먹는 된장찌개 말고 개운하고 시원한 국, 몸도 찌뿌드드한 이런 날은 굴국이나 홍합탕이 먹고 싶어 진다.

명태라도 남아있나 찾아보니 머리와 꼬랑지뿐이라, 있는 재료인 미역국이나 끓이기로 한다.

안성맞춤으로 고아 놓은 곰국도 있겠다, 가장 손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국이 미역국이다.

미역을 불려 씻은 다음 적당한 크기로 썰어 냄비에 참기름 두르고 살큼 볶다가 청포묵처럼 엉긴 곰국물을 넉넉히 부어줬다.

곰을 넣어 끓인 국도 아닌데 이름은 왜 곰국? 싱겁기는.... 풉!


도가니랑 사골 넣고 푹푹 고은 곰국물이 스리슬쩍 참기름 향을 품어 안는다.

미역국의 간 만은 반드시 집간장으로 맞춰줘야 맛도 깔끔하고 색도 맑게 나온다.

마무리로 다진 마늘을 넣어 팔팔 끓였다.

어떤 새색시가 시어른 생신에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이며 마늘을 넣었더니 쌍것들처럼 못 배워먹었다고 난리더란다.

다시 끓이라는 호통에 서러움이 복받쳐 부엌을 뛰쳐나갔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미역국에 마늘을 넣는 건 갱상도 식인지 암튼 충청도에서는 마늘을 안 넣는 걸로 아는데 결혼을 해보니 영남지방에선 마늘을 넣었다.

그럭저럭 이후부터는 덩달아서 미역국에 마늘을 첨가시키는데 어느 방식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한국땅이 좁다 해도 지방에 따라 해 먹는 음식이 다르고 양념도 차이가 난다.

들깻잎만 먹는 줄 알았는데 콩잎을 안 먹나, 그물에 걸리면 버리던 복어나 홍어를 최고의 진미로 치는 지역도 있다.

뿐만 아니라 김치 담글 때 새우젓을 주로 쓰는 중부 지방에 비해 남부 지방은 거의가 멸치젓을 사용한다.

요즘은 맛의 평준화로 그렇지도 않지만 영(추풍령) 넘어 시집을 갔더니 친정 음식과는 맛이 여러모로 달랐다.

대체로 텁텁하고 투박스러운 음식 맛이라 한동안 적응이 쉽지를 않았다.  

미역국을 끓일 때 마늘을 넣나 안 넣나에 관한 레시피 타령이 아니라 미역국, 하면 뉴저지에서 지낼 적 어떤 일이 떠올라서
그 얘길 하려는 중이다.​



리사는 마치 서양인형 같이 생겼다.

물결치듯 굽실대는 금발에 눈동자가 유리알처럼 파란 데다 볼이 통통한 세 살짜리 귀엽고 예쁜 아이였다.

하는 짓이 이쁘다 못해 거의 야시 같은데 어느 땐 치맛자락 한들거리며 제 드레스 자랑을 하고 어느 땐 꽃장식 달린 구두를 쏙 내밀며 자랑, 안고 온 곰 인형도 자랑감이고 분홍 가방도 살랑거리며 자랑한다.

배가 남산만큼 부른 리사 엄마가 리사 손을 잡고 월요일에 세탁물을 맡기러 왔다.  

수요일 아무 때나 찾으러 오라니까 그날은 출산일이라며 옷은 아기 아빠가 찾으러 올 거라 했다.

우리말처럼 술술 말이 통한다면 리사 엄마, 건강한 아기 순산하길 바라요, 인사라도 하련만 두 손 모아 그저 기도하는 시늉만 할 뿐.

수요일엔 늦가을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하루 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리며 히터를 켜야 할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자 울긋불긋 숲의 단풍은 한창 제철이었다.

그다음 목요일 오후였다.

리사가 제 아빠 손을 이끌고 사뭇 신이 나서 달려왔다.

쬐끄만 아기 왔어! 그러면서 주차장의 자기 집 차를 가리켰다.

아빠는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병원에서 퇴원하는 길이라 하기에 딸인가 아들인가를 물으니 딸이야,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딸은 하나 키워봤으니 아들이면 공평할 텐데... 투덜거리는 품이 아마도 자기 닮은 씩씩한 아들을 원했던가 보다.

아들 딸 구별 않는다는 미국인이라 해도 내심 아들을 바라온 마음이 확연히 드러났다.

딸이면 어떻고 아들이면 또 대수랴만 아들 키우는 재미도 누리고 싶은지 모를 일이다.

세탁물을 찾은 다음 리사 아빠는 옆 피자집에서 피자 한 판을 사 들고 나온다, 당연히 콜라 댓 병은 서비스로 따랐고.

아기 낳고 집에 돌아온 산모에게 주어질 저녁 메뉴가 피자인 모양이다.

우리 식으로야 당연 산모를 위해 끓인 미역국 내음이 온 집안에 감돌련만 이들은 피자로 싱거운 저녁 식사를 하겠지.

문화의 차이란 이런 것, 만일 한국 여성이 미국에 시집와 출산을 한 다음 뜨끈뜨끈한 미역국은커녕 덩실 피자나 한 판 사다 안겨준다면?

아마도 핑그르르~ 눈물이 고이지 않을까 싶었다.

산모는 바람을 쐬도 안되고 단단한 동치미나 사과를 먹어도 안되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셔도 안되고... 우리는 금기 사항이 많다.

우리 식과는 달리 이들은 산모라도 가리는 게 거의 없는 듯했다.

아기 낳은 다음에 우리처럼 따뜻하게 조섭 하는 게 아니라 찬물에도 샤워하고 맨발도 예사라 우리와는 많이 틀린 것 같은데, 가까이서 직접적으로 경험하거나 접해본 적은 없다.

삼칠일 철석같이 지키며 삼신할미께 정화수 소반에 얹어 놓고 비손 하는 우리네 출산 풍속도를 떠올리게 한 리사네가 오늘 다시 생각난다.



하긴 리사 아빠만이 아니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남아선호사상이 골수에 콕 박혀있는 사람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어릴 때 외숙모나 고모한테 무수히 들었던 말, 진작에 니가 하나 달고만 나왔어도.... 헐!

달랑 언니와 나 딸만 둘을 둔 엄마는, 타고난 자유주의자로 천상 한량이던 지아비를 모셨으니.

혹시 아들이 있었다면 그 바람기 잠재워져 조강지처만 아꼈을까.

그새 오래전 일이 된 내 경우다.


위로 아들인 큰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듬해 동생인 딸아이를 낳았다.

내동 하나만 키우려 고집해 오다가 늦게사 혼자는 외롭지 않겠나 싶은 신통스런 생각이 들어 하나를 더 갖게 됐다.

그렇다 보니 터울이 많이 진 남매 사이라 딸내미는 오빠더러 장난 삼아 아자씨라고도 칭한다.

라일락 피어난 봄날이었다.

아기를 받은 의사 선생님이 참한 공주네요, 하자 내 첫마디가 안 돼요 딸은 안 돼요... 헛소리를 했다나.

하여 대구 동성로 병원에서 희한한 산모란 소문이 나돌았더란다.

아들 하나 딸 하나, 딱 마침맞은데 마치 종갓집 씨받이처럼 딸은 안된다고 비몽사몽간에 마구 그랬다니... 흐흠!

나 자신은 평소 그런 생각 없이 살았던 거 같은데 딸내미는 오빠하고 차별 대우했다며 가끔 농속에 진담 섞어 말하곤 한다.

외할머니와 함께 지낸 세월의 두께가 있으니 엄마의 무의식 세계를 충분히 이해하는 딸내미이긴 하다.

하여 진짜 기분 나빠 볼멘소리로 불평하는 건 아니지만 옹이가 좀 들어있는 말이다.

친정 조카가 아들 하나만 낳고 단산하기에 딸 없으면 나중에 후회한다고 겁을 줬던 나, 어느새 참 많이 변했다.


이만해도 벌써 삼사십 년 전 세태 이바구다.


70년대 초 중등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칠판에 분필로 판서를 하던 세월이 변해 근자 학교마다 86인치 전자 칠판을 사용한다니 격세지감 엄청.

암튼 딸이 비행기 태워준다는 말 회자되는 거와 상관없이 이젠, 만약 딸을 낳지 않았더라면 정말이지 어쩔뻔했나 싶은 게 아찔할 정도다.

하긴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이고 딸 둘은 은메달, 아들 하나 딸 하나면 동메달에 아들만 둘은 목메달이라는 우스개도 밀레니엄 이전에나 통했고.

요샌 외동딸만 둔 집도 허다한 세상이 아닌가.

미역국이 끓는 동안 머릿속에선 별 생각이 다 오락가락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군.


잡설 이제 그만 늘어놓고 국을 떠 저녁이나 맛지게 먹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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