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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Dec 14. 2024

구운 닭이 날다니

카미노 스토리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주석으로 만든 자그마한 수탉을 선물했다.


벌써 한참 전인 뉴저지에서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앙증스러운 수탉 모형을 골라 들었을 친구 성의가 고마워 책장 한 옆에 단디 자리 잡게 해 두었는데 문득 그 기억이 떠올랐다.


 레온의 한 호텔 현관 벽에 업소 로고인 듯 붙박이로 조각된 참신한 수탉 디자인이 시선을 끌어서였다.


도심 깊숙한 골목에 자리한 호텔은 로고와 달리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고건물, 오래전엔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리모델링을 했어도 고색창연한 본디 건물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나름 운치가 있었다.




수탉과 인연고리 맺기를 즐겨하는 스페인 사람들.


언제부터 수탉이 스페인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자리 잡았을까.


 그에 관한 설화를 들어본 적이 있다.


스페인은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다.


로마 점령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에스파냐는 712년 무어인에게 정복당해 이슬람 국가가 됐었다.


그렇게 8백 년 가까이를 이슬람권 문화 속에서 살았으나 마침내 알폰스 6세가 무어인의 항복을 받아내고야 만다.


에스파냐는 끈질긴 투쟁 끝에 고토를 회복하여 1492년 스페인 왕국을 세우고 다시 가톨릭 국가로 돌아왔다.


뿌리 깊은 기독교 신앙이 유럽인들 바탕에 널리 깔려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그 후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다, 캘리포니아에서부터 파타고니아까지를 휘하에 둔 대제국이 된다.


막강한 힘을 떨치던 16~7세기의 해양대국 스페인으로 어느 한날 독일 청년 우고넬이 산티아고 순례를 온다.


신앙심 깊은 부모님을 모시고 셋이서, 당시 유럽인들에게 평생의 선망대상이었던 카미노 길을 그들도 걸었다.


 순례 도중 머물던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숙소 주인집 딸이 청년의 준수한 외모에 반해 사랑에 빠져버렸다.


아가씨는 용기를 내어 마음을 고백했으나 돈독한 신앙심의 청년은 그녀의 사랑을 정중히 밀쳤다.


거절당한 보복으로 아가씨는 우고넬의 짐 속에 귀한 은잔을 몰래 넣어두고 도둑으로 고발을 하였다.


재판정으로 끌려간 청년과 그의 부모는 결백을 주장했으나 끝내 유죄 판결을 받고 교수형을 기다리게 되었다.


절망에 빠진 그의 부모는 순례를 계속하며 산티아고 성인에게 죽을 운명인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들은 귀로에 “산티아고 성인의 자비로 아들이 살아있으니 염려 말거라”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다.


아들이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듣고 기쁨에 찬 부모는 한달음에 재판관에게 달려가 이 소식을 전했다.


마침 닭고기 요리를 앞에 두고 저녁식사를 하려던 재판관은 그들의 말에 조롱하듯 답했다.


“당신 아들이 살수 있다면 내가 먹으려 하는 요리된 이 닭들도 살아나겠소.”


그러자 놀라운 기적이 벌어졌다. 식탁 위의 구운 닭이 살아서 날아올랐던 것.


누명을 벗고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청년이 다시 이곳에 들러 야곱상 탑 위에 닭 조각을 세웠는데

그 조각품은 현재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던가.


또한 산토 도밍고 재판관들은 청년의 결백을 믿지 않고 유죄를 판결한 잘못에 대한 속죄의 뜻으로

몇 백 년 동안 굵다란 밧줄을 목에 걸고 재판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한다.

구운 닭이 되살아난 신비로운 기적은 이후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해마다 닭을 앞세워 작은북과 함께 행진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는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에스텔라에서 부르고스로 나는 냅다 점핑을 했기에 그냥 통과해 버린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란 지방이다.


대신 레온에서 수탉을 만났으니 스페인 어디나 지역마다 닭과 연관된 전설이 흔하다는 얘기겠다.


한국에서도 동해안을 가보면 수로부인 전설을 각 지자체마다 끌어다 붙여 관광자원으로 상품화시켰듯이.


모든 순례자들은 여행 중에 수탉 우는 소리를 들으면 좋은 징조라 여긴다.


농촌마을을 연속으로 지나가게 되니 길손 누구라도 닭 훼치는 소리건 길게 우는 소리건 다반사로 듣게 된다.


이 또한 카미노 데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 행운과 축복이 함께 하리라는 암시를 은연중 각인시키려는 의도?


의도 같은 건 어쨌든 스페인에서 내가 유독 자주 계란을 샀던 이유는, 닭장에 가둬 키운 닭도 아닌 데다 자연 속에서 암수 섞여 살면서 알을 낳았으니 틀림없는 유정란, 해서 기회 닿는 대로 사다 먹었다.


프랑스 순례자들은 길을 걸으며 닭의 깃털을 모았는데, 그게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부적같이 여겼던 모양이다.


 폴란드인들은 들고 다니는 지팡이 끝에 빵 조각을 얹어 닭에게 주면서 닭이 빵을 쪼아 먹으면


성공적 순례가 될 거로 믿었다니, 따지고 보면 독실한 신앙심의 저변에도 미신적 요소가 없잖아 의외로 많은 듯.


자존심 확실하고 용맹스러운 수탉은 정의의 표징으로 중세 이전부터 여러 국가가 선호했던 동물 중 하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다음날 첫새벽의 수탉 울음소리는 너무도 잘 알려진 얘기.


그 외에도 포르투갈 인들은 믿음의 증표로 수탉 장식물을 집안에 두었으며 프랑스는 독일의 독수리에 끝까지 맞서는 저항의 표상으로 수탉을 내세웠다고 한다.


 사실 수탉은 외관부터가 멋진 게 위풍당당한 풍모로도 한몫한다.


요새 일부 남자들은 안그래도 가시나처럼 곱상하니 생겨가지고 기생오래비 쪔쪄먹을 판인데 화장까지도 하고 다닌다.


그래가지고 남자구실이나 제대로 하겠나 싶다.


암튼 참 요망진 세태다.


수탉의 옹골찬 기개를 한번 봐라.


가족을 보호할 양으로 서슬 퍼렇게 깃털 곧추세우고 위세를 펼칠 때의 아우라야 말로

가히 주변을 압도하고도 남는 장관을 보여준다.


수탉 우는 소리는 또 어떤가.


꼭두새벽부터 밉상을 떨며 아침 기상을 재촉하는 신호를 보낸다.


예전 사랑채 할아버지 어흠!하시면 군소리없이 벌떡 일어나게 되던 기상 신호처럼 미덥다.


유년의 뜰에 남아있는 풍경 하나 건져보면 늘 거기엔 구구거리는 암탉과 병아리 그리고 유난히 탐스럽고 윤기로운 깃 으스대는 수비대장 수탉이 있다.  


스페인 수탉이나 한국의 수탉이나 생김새며 우렁차게 꼬오끼요오~길게 빼는 소리도 똑같다.


다만 자연산 닭이 많던 스페인과 달리 한국엔 울긋불긋 토종닭 구경하기가 쉽잖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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