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 코스트로 향하다가 예정에 없던 허스트 캐슬에 들렀다.
샌 시메몬 동쪽에 자리한 허스트 캐슬은 산타루치아 산맥 한 정상에 서있는 백색건물이다.
광산업으로 자수성가한 부친이 1865년도에 산 이 터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사업체 굴리며 성공한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이 성채를 세웠다.
민족주의 좌파인 허스트는 1904년 미국 대통령, 1905년과 1909년 뉴욕시 시장, 1906년 뉴욕주지사에 도전했다가 모조리 실패했다.
그는 동부를 떠나 1919년부터 캘리포니아에서 호화판 캐슬 건축에 들어갔다.
127 에이커에 달하는 대지에 165개의 방이 딸린 집이라니 보통사람 수준으로야 아예 상상불허 규모다.
정원, 분수, 수영장에다 동물원까지 갖춰진 궁전같이 사치스럽고 화려한 성채인 허스트 캐슬이다.
허스트 캐슬에서 새파랗게 젊은 영화배우 출신 정부와 할리우드 영화계 사람들을 초대해 연일 파티를 즐기며 지냈던 그다.
훗날인 1941년 젊은 감독 오슨 웰스는 그를 모델 삼아 제작한 영화 <시민 케인>을 통해 은유적으로 허스트를 풍자한다.
자신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는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에 허스트는 영화제작진을 협박하며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시민 케인의 개봉을 막지는 못했다.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누린 끝 모를 욕망의 덧없음이라니, 인생무상인 것을.
전에도 이 길을 달렸지만 욕망과 허영의 바벨탑 같은 캐슬을 구태어 찾아볼 생각이 없었다.
딴 세상 사람들의 호사취미를 둘러보며 감탄사 발할 시간도 아까웠고 재벌가에 쌈짓돈 보태줄 까닭 없어 그냥 패스했던 터다.
그런데 허스트 사후 얼마뒤인 1957년, 유족들이 캐슬 관리 자체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주정부에 기증했다고 한다.
하여 현재 주립공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주 공무원들이 자원봉사자와 더불어 관리하고 8있다.
정식명칭은 Hearst San Simeon State Historical Monument.
대저택의 방마다 허스트가 컬랙션 한 유럽의 예술품들이 조화롭게 진열돼 있다는데 투어는 일부로 제한돼 있었다.
스페인 수도원을 통째로 뜯어다 복원시킨 건물의 내부 장식재인 벽난로와 의자며 집기 등도 중세 수도원 살림을 그대로 옮겨다 놨다.
금으로 된 수도꼭지는 못 봤으나 그중 한 저택의 황금 출입문과 수영장 바닥 문양에 금이 좍 박혀있긴 했다.
허스트 캐슬의 끝 모를 호사에 문득 겹쳐지는 또 한 곳.
플로리다 팜비치에 있는 마러라고 리조트는 요즘 굉장히 핫한 건물이다.
미합중국의 대통령 직을 두 번이나 맡게 된 트럼프의 사저 별장으로 MAGA 층의 성지가 될 전망이다.
과거 죠지 부시가 자신의 텍사스 목장을 정치 무대 전면에 세웠듯, 트럼프 외교 무대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마러라고다.
스페인 어로 ‘호숫가의 바다’라는 뜻을 지닌 마러라고.
실제로 전망 좋은 대서양 해안에 워스 호수 사이에 위치해 자연경관이 매우 훌륭하다고 알려졌다.
원래는 포스트라는 시리얼을 만드는 식품업체의 상속자였던 마조리 메리웨더 포스트의 소유였다.
미국 건축가인 매리언 와이어스에게 의뢰해 1924년부터 4년간에 걸쳐 공들여 지은 대저택이다.
스페인 양식으로 고풍스럽게 지어진 이 건물은 이탈리아산 최고급 대리석과 스페인산 바닥재, 쿠바의 옛 성에서 나온 대리석과 16세기 미술 장식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다고.
여기도 방이 126개에 달하며 침실 쉰여섯 개, 금도금 욕실이 서른세 개나 된다니 입이 딱 벌어진다.
부대시설로는 수영장과 온천, 연회장, 테니스와 골프를 즐길 수 있는 2만 평 규모의 프라이빗 리조트다.
당시 어마어마한 건축비가 들어간 고급저택을 지었던 포스트는 1973년 죽기 전 이 건물을 연방정부에 기증하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아름다운 이 저택이 미국 대통령들과 미국을 방문하는 세계 지도자들의 기억에 남는 휴양지가 되길 바란다면서.
그러나 워싱턴의 대통령들은 백악관을 두고 플로리다 휴양지 마러라고에 별 관심이 없었다.
비워둔 채로 관리비만 연간 백만 달러씩 들어가자 연방정부도 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버거워졌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포스트 재단 소유로 넘어갔다가, 1985년 매물로 나온 이 저택을 트럼프가 약 1천만 달러로 매입하게 됐다.
처음엔 포스트 재단에 천오백만 달러를 제시했으나 거절당했고, 이에 사업가 트럼프는 마러라고 앞 해안지대 땅을 사서 조망권을 막아버렸다.
그로 인해 가격이 폭락하자 결국은 애초보다 낮은 가격으로 저택은 트럼프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매주 마러라고를 찾을 정도로 이곳을 특별히 아끼나 보안상 취약점이 많은 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의 경우 민간인 접근이 봉쇄돼 있어 보안 유지와 경호에 용이하다. 반면, 마러라고는 막대한 경호비용이 들어가 결과적으로 국민 세금이 과하게 쓰일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겨울 백악관이 될 마라라고는 한편 정상들이 편안한 외교를 선호하는 추세라 양국 간 우호를 다질 수 있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겠고.
크리스마스이브, 심란스러운 국내 정세 대신 딴 나라 재벌가 얘기로 가비얍게 자정을 맞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