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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08. 2024

그들의 춤

캘리포니아 파피 리저브에서

캘리포니아를 달린다. 사막이라 이름 붙었지만 사막도 아닌 그저 막막한 황야에 드문드문 조수아 트리와 사보텐 무리가 스친다. 나무도 자라지 않는 척박진 산비탈에 조촐히 피어있는 연미색 진보라색 야생화가 한참씩 이어지기도 한다. 이름 모를 들꽃이 구름처럼 하얗게 흐드러진 들판길도 지난다.


여행 도중 언뜻 스쳐지나고 마는 차창 너머 풍경들이다. 아무도 눈여겨 봐주지 않는 후미진 곳에서 저 혼자 피었다 지는 꽃들. 소박하면서도 한껏 화려하기까지 한 꽃들의 향연은 무언가 충만한 기쁨에서라야 터져 나올 법한 열락의 몸짓이었다. 아니 차라리 경건한 기도에 가까웠다.


일제히 하늘 향해 추는 춤. 바람은 그들을 춤추게 하는 음악이었다. 오직 하늘만을 바라며 제 기쁨에 취해서 춤을 추는 파피 꽃송이들을 캘리포니아 파피 리저브에서 만났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벅찬 환희심이듯 넘치는 행복에 겨워 너울거리는 혼의 춤을 추는 그네들. 접신한 어린 무녀의 신명 지핀  춤판이었다.


파피 보호구역 너른 언덕 가득 핀 꽃 무리는 아주 장관이었다. 가슴에서 둥둥 북소리가 났다. 그러다가 종당엔 아뜩해졌다. 몽롱해졌다. 아예 먹먹해졌다. 허허벌판에 느닷없이 나타난 화염 같은 오렌지빛 캘리포니아 파피 군락.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매스게임처럼 물결 져 나부끼는 몽환적인 춤판을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다.


하느님을 경배하듯 저마다 오롯이 손 모은 꽃들의 춤은 정녕 경탄감이었다. 오, 하늘이시여! 이 날을 마련해 주신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꽃들은 춤으로 신께 하례드렸다.


허락된 짧은 한 생애,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자 온 마음 다해 밀어 올린 꽃봉오리들. 광대무변한 우주 안의 한 점 티끌만큼 작은 존재일망정 꽃들은 제각각 설렘 속에서 영광된 축복의 순간을 전신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양손 흔들며 일제히 환호하고 있었다.


온몸으로 추는 그들의 춤을 보노라니 홀연 먼 밀림 속 압살라의 무희가 떠올랐다. 흠모하는 단 한 분을 위해 숲 깊이 숨어서 율동으로 풀어내는 그들만의 기도. 분명 그들은 열락의 경지에 오롯이 이르렀을 터다.


파피꽃 앞에서 앙코르와트가 홀연 떠올랐음은 어쩌면 당연스런 일. 오랜 날 잊힌 채 밀림 속에 묻혀 침묵하던 앙코르와트다. 곳곳 돌덩이 마다에는 양각으로 2천여 압살라 무희들이 새겨져 있다. 오오! 그녀들이 신을 찬양하며 바치는 법열의 춤판이 가는 곳마다 질펀하게 펼쳐져 있었으니,


그 옛날부터 오늘까지도 그녀들은 온몸으로 신을 찬미하며 경배드리고 있는 중이다. 머리에는 화려한 관을 쓰고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몸매로 손가락 묘하게 틀면서 추는 춤. 과연 신을 유혹하고도 남을 만치 고혹적인 자태인 데다 그 춤은 충분히 신을 흐뭇하게 할 만큼의 황홀한 몸짓이었다,


나는 장작개비처럼 뻣뻣하니 율동과는 거리가 먼 소위 몸치다. 도대체 몸이 리듬 탈 줄을 모른다. 어깨 들썩대는 흥은 지피나 덩실거리며 춤을 춰본 기억이란 도통 없다. 초등학교적 학예회 때마다 어거지로 뽑혀 무슨 무용인가를 하긴 했다. 춤에 관한 한 둔재인 나로 인해 재연습이 보태져 아마도 함께 추는 동무들의 시간 꽤나 허비시켰을 다.


하다못해 한창 젊을 당시 한세대를 풍미하다시피 한 트위스트도 춰보질 않았으니 말해 무엇하리. 마구 흔들기만 하면 트위스트라지만 나는 그게 도무지 열쩍었다. 가령, 분위기를 맞춰줘야 할 상황이라도 예나 이제나 고작 손뼉이나 치는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춤 구경은 즐기는 편이다. 강수진의 이지러진 발 모습과 홍신자의 절제된 춤사위는 인상 깊이 남아있다. 오래전 해운대 백사장에서 본 무형문화재의 씻김굿은 아직도 강렬하게 내 안에 각인되어 있다. 쾌자 자락 휘날리며 낭랑한 목청으로 지성껏 신을 불러내던 그녀.


마침내 신이 오르자 한바탕 건 춤판이 바닷가에서 벌어졌다. 그녀는 거의 깃털마냥 가벼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 춤판의 압권은 단연, 바다로 향해 길게 펼쳐진 허연 광목천을 그녀 자신이 칼날 되어 좌악 가르며 내닫는 찰나의 팽팽한 긴장감이었다. 다들 감히 경탄의 함성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마른침만 삼켰다.


민족마다 나름 고유의 춤이 있다. 고이 접어 나빌레라, 승무의 정적인 춤사위도 아름답지만 겅중겅중 뛰면서 마구 발 구르며 파격적으로 추는 토인들의 춤은 단순해서 좋다. 향불을 사루듯 신비로운 주문 외는 아라비아 여인의 춤은 비밀스러운 꿈을 꾸게 한다. 빙글빙글 천천히 돌아가며 결속을 다지듯 부족 모두가 손잡고 추는 인디언들의 춤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신 향해 전신을 내던지는 오체투지는 인간의 몸으로 표출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한 춤이다. 휘적휘적 산길을 걸어가는 선승의 걸음은 그대로가 禪定의 춤이런가 싶다. 축구장을 뜨겁게 달군 붉은 악마의 역동적인 파도는 넘실넘실 그 얼마나 멋지던가. 고구려 고분 속에는 저마다 소매깃 나붓대며 한 방향으로 춤추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 그림을 보면 슬그머니 두 팔이 허공으로 올라간다. 묘한 동질감에 취해서다.​



 "사람들은 춤을 춤으로써 현세와 내세 사이의 차이 같은 것을 뚫는다. 나아가 그들은 신을 인간의 세계로 초대하기 위해, 신과의 대화를 위해, 신을 숭배하기 위해 춤을 추었다"'고 한다. 태생이 그러하듯 춤은 신을 위한 가장 원초적(原初的)인 인간의 감정 표현 수단이며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방식이라고 정의된다. 그처럼 태초의 사람들 몸짓 그 자체가 춤이었을 터이다.


신비로운 빛과 어둠, 아지 못할 저 너머의 것, 초월적인 그 모든 외경스러운 것에 대해 그들은 두 손 높이 들어 올리고는 삼가 경배의 춤을 추었을 것이다. 동굴 속 벽화가 보여주듯 더없이 크나큰 흠숭 보내며 최상의 경건한 몸짓으로 산들산들 춤을 추었을 것이다.


춤은 몸짓이다. 갈망의 몸짓이다. 춤은 움직임이다. 뜨거운 움직임이다. 춤은 공간적 흐름이며 거기에서 짜여지는 고운 문양이다. 춤은 그러나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자연의 춤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무수히 만나곤 한다.



벼랑을 구르며 협곡을 내지르며 포말 져 흐르는 물살의 춤은 격정적이다. 피어오르는 새벽 운무는 더없이 환상적인 춤이다. 몰아치는 해일은 파도의 춤이다. 바람 이는 숲에서 잘게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나부낌. 봄날 아롱거리는 아지랑이.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나부끼는 억새 무리의 그윽한 춤판.


남미 호숫가에 산다는 홍학의 느릿느릿한 춤. 꼬리 살랑대며 지느러미 나붓거리는 열대어의 춤. 비상하는 새의 나래짓. 반짝이며 남실대며 흐르는 강물결. 열병식을 하는 한여름 옥수숫대. 나래 팔랑이며 꽃에서 꽃으로 따라 흐르는 나비.  비바람에 일렁이는 대숲. 만개한 벚꽃 구름. 모두가 춤이다.



또 다른 춤도 있다. 옐로 스톤 힘찬 핫스프링의 예측불허 변화무쌍한 춤. 평원을 치달리는 표범의 등. 하늘 높이에서 펄럭이는 깃발. 너울거리며 타다닥 타오르는 모닥불. 삭풍에 떠는 문풍지. 과녁에 꽂힌 화살대.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 가을 들녘 허수아비.  찰랑대는 호숫가의 작은 거룻배....


그랜드 캐년의 색색 다른 지층은 시간의 춤이며 沙丘에 난 물결무늬는 바람의 춤이다. 무량수전 대들보에 드러난 木理는 나무의 춤이며 댕그랑 울리는 풍경소리는 물고기의 춤이다. 저물녘 달맞이꽃 가슴 풀며 막 피어나는 달마중 춤은 또 얼마나 은근스러운지. 뿐인가. 노란 물감 듬뿍 적신 고흐의 붓은 캔버스에서 춤추고, 날렵하게 튕겨지는 조성진의 손은 건반 위에서 춤춘다.



철 따라 여전히 피고 질 캘리포니아 들꽃들, 그들이 펼치는 춤사위가 하마 그리워진다. 춤은 분명 그들의 기도 코드다. 하늘 우러러 오늘도 찬양의 노래 부르며 한들한들 춤추는 그들의 몽환적인 몸짓을 다시 만나보고 싶다.

https://youtu.be/acL8Y_UxxbA?si=k3qcnu9mmmdPDqx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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