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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일간의 친구 전속 가이드

by 무량화 Jan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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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에서 친구가 왔다.

여전히 현역으로 일을 하는 그녀라 사흘 말미를 얻어 서귀포로 잠시 힐링차 온 것.

지난여름에도 친구는 서귀포에 다니러 왔다가 딱 하루 묵고 간 적이 있다.

물론 그전에도 제주도 관광여행을 수차레 올 기회가 있었던 친구다.

패키지 프로그램에 일률적으로 들어가는 장소 말고 이번엔 내가 아끼는 곳 위주로 스케줄을 짰다.

사실 제주라는 섬은 생각보다 크고 넓다.

제주도는 서울 면적의 3배가 넘으므로, 곧 서울이 제주도의 1/3 정도라면 감이 쉬 잡히리라.

동서 길이는 73 km, 남북 간 거리는 31km이나 중간에 자리 잡은 한라산이 묵직하게 솟아있다.

해서 제주와 서귀포를 오가자면 빙글 뱅글 우회해야 하므로 체감거리는 실제보다 멀게 느껴진다. 

그처럼 삼일 동안을 함께 하며 집에서는 잠만 자고 계속 밖으로 나돌았지만 정작 다녀온 곳은 몇 안 된다.

게다가 우리는 둘 다 아침잠이 많은 터수라 잠을 줄여가며 강행군 일정을 소화할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식사시간이 길어 식당에 들어가면 간단한 한 끼도 으레 성찬이나 되듯 늘어지기 일쑤였다. 

친구는 나와 반대로 유난히 좋아하는 카페와 찻집인지라, 괜찮은 분위기다 싶으면 시간 셈하지 않고 의자에 깊숙이 파묻히길 즐겼다.


 


제주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비행기는 정시보다 연착을 했다.

시장이 반찬이다, 아침은 제주시청 인근에 있는 광명해장국집에서 때웠다.

여긴 제 동생이 미국에서 왔을 때 공항에서 픽엎한 다음 가장 한국적인 음식이라며 아들이 앞장선 집이다.

아들은 주말이면 전국으로 산행을 다니는 백패킹 마니아라 각처 맛집을 꿰고 있다.

24년 만에 한국에 온 딸내미도 찐 한국식 해장국을 들며 그 깊은 맛에 엄지 척을 했듯 친구도 뚜가리를 말끔 비웠다.

우리는 한라눈꽃버스를 타고 한라산 설화를 보러 갔다.

처음 타 본 눈꽃버스인데 한시적으로 운행되는 특별버스임에도 노선 편성이 왜 그 모양으로 짜였는지?

제주시내를 지나 한라병원 거쳐 산 중턱까지 직행하면 되련만 쓸데없이 여러 마을에서 주정차를 하는 바람에 귀한 시간만 버렸다.    

암튼 생각보다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관광편의시설이라면 별로 환영받기 어려우련만.

폭설이 내린 다음 벌써 서너 번이나 올랐던 천백고지, 그간 날씨가 계속 청명해 행여 눈이 녹지 않았을까 좀 우려도 다.

천백고지에 닿으니 염려와는 달리 근자 본 설경 중 최고점을 찍어 절로 와아~ 판타스틱!

잔가지에 까지 만개한 설화가 먼 데서 찾아온 벗을 온몸으로 환대해 주었다.

더구나 기온까지 포근했으니 금상첨화다.

위미리 동백정원 애기동백도 흐드러진 꽃잔치를 펼친 데다 낙화 역시 최상의 정경을 연출해 줬다. 

진다홍색 동백꽃은 아낌없이 그 진수를 다 드러내 우리는 마음껏 꽃놀이를 즐긴 셈이다.

적시에 때맞춰 온 친구라 백색 설경과 홍색 화신으로 양쪽에서 동시에 눈호사를 할 수 있었다.

어둠살이 내린 시각, 중앙동 행정센터 앞 올레보쌈에서 푸짐한 삼합에다 막걸리 반주삼아 저녁식사를 했다.



둘째 날은 늦은 아침을 먹고 거처에서 가까운 이중섭거리로 내려갔다.

오전이라 올레시장 상가도 한산했으며 이중섭거리 가게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채였다.

이중섭 가족이 살았던 집터에 들렀더니 마당에서 동백과 수선이 우릴 마중 나와 반겼다.

미술관은 신축사업 계획에 따라 현재 해체작업에 들어갔으며 3월부터 준공에 들어가 27년 3월 개관된다고.

대신 이중섭 아카이브 전시장에 들러 일부 전시물을 구경한 뒤 굿즈 코너에서 이중섭 그림이 든 벽시계를 샀다.

마실거리가 필요하다는 친구, 우리는 솔동산으로 내려가 유동커피집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마시지 않기에 도무지 들릴 일이 없었던 커피전문집이다.

친구는 커피를, 나는 뱅쇼를 주문했다.

진한 와인향에 계피향 어우러진 뱅쇼 한잔에 고마 알딸딸해졌다.

상큼한 눈바람에 편백향에도 취해볼 겸 치유의 숲으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 하늘 쾌청한 날씨건만 잦은 기상이변으로 입산통제조치가 시행 중.

워낙 자주 온 곳이기에 샛길을 아니 그나마 다행, 정문이 아닌 호근산책로들어가 슬슬 숲길을 산책했다.

산기슭에 희끗거리는 눈이 약간 깔린 정도인데 통제가 되다니, 아무튼 좀 걷다가 돌아왔다.

점심은 둘 다 한식 대신 브런치카페에서 약식으로 빵을 먹기로 하고 신시가지로 갔다.

요새 카페는 차와 음료 생맥주 외에 거의 모든 빵 종류가 따르며 상호에 걸맞은 의상대여 사진까지 론칭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경성살롱에 의상은 구비돼 있지 않았는데 워낙 그럴싸한 레트로 감성 분위기 덕일까.

친구끼리 와서 서로 옷을 골라주며 독사진도 찍어주고 둘이 함께 셀프로도 여러 동작을 담았다.

전속 사진사를 대동하고 약혼 사진을 찍으러 오는 젊은 커플도 있었다.

심심찮게 오는 이런 손님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어 꽤 오래 머물며 우린, 살기 좋아진 세상 그러나 골 때리는 시국 얘기도 두루 나눴다.

오후 들어 사려니 숲으로 향했다.

삼나무 빼곡히 들어차 어둑신한 숲, 무장애 숲길은 물론 미로의 숲길조차 눈이 쌓여 걸을 수가 없었다.

고지라서 눈이 녹았다 얼었다 해싸대 큰길도 질척대거나 미끄러웠다.

오후시간이라 기온까지 급강하, 우린 얼마 못 올라가 걷기를 포기하고 되돌아 나왔다.

이번에도 한밤중에야 서귀포 중앙로터리 인근 파스타 전문집인 라라코스트에서 피자까지도 시켜 저녁을 걸게 먹었다.



셋째 날은 친구가 저녁 비행기로 돌아가는 날.  

이날은 서쪽으로 돌 계획이라 오전 일찍 안덕계곡으로 달렸다.

친구는 지난번에 여길 같이 왔다가 폭우로 입구가 폐쇄된 바람에 못 들어갔기에 다시 가보고 싶어 했다.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각진 주상절리며 바위그늘집이라는 자연동굴도 신기해하던 그녀는 계곡 안쪽 암반 사이를 애들처럼 건너뛰면서 좋아라 했다.

계곡을 무대 삼아 에코 음악회가 열렸던 얘기를 해주자 그런 음악회에 한번은 참석해보고 싶다 하였다.

멋진 가을날 안덕계곡에서 자연음악회가 열리면 미리 연락해 달라며 그때 꼭 오겠다고도.

안덕계곡은 삼십여 분이면 족한 터라 누구라도 부담 없이 들리기 좋은 탐방지이다.

여기서 가까운 추사기념관을 찾으려 했으나 아직 수선화 만개한 철도 아닌 데다 기념관과 적소를 둘러보려면 시간이 제법 소요될 터.

추사 유배지를 패스하고 우리는 곧장 금능해변으로 향했다.

사철 없이 어느 때라도,  어느 시간대에 가더라도 후회되지 않는 풍경과 물색을 보여주는 금능협재 바닷가.

제주도내에서 가장 물빛이 오묘하고 신비로운 바다.

새하얀 모래톱과 새카만 현무암의 조화로운 대비 환상적인 해변.

해안가에  이국 정서 물씬한 야자수 줄지어 서있고 앞바다 저만치에 띄운 비양도조차 아름다운 금능이다.

우리는 만조로 그득 들이찬 바닷물과 먼 수평선 바라보며 모랫길에 긴 발자국 내면서 망중한을 즐겼다.

점심때가 지났기에 제주시내로 들어가 이번엔 택시기사가 추천해 준 음식점으로 갔다.

유명세를 증명하듯 사방 벽면 빽빽하게 명사들의 싸인이 붙어있는 식당에서 갈치조림 정식을 시켰다.

먹음직스럽게 양념이 된 갈치조림은 가시 발라가며 먹어야 하니 식사시간이 늘어졌다.

늦은 시간을 벌충할 양으로 쏜살같이 공항에 가서 말차 라떼로 겨우 생선 비린내 입가심을 했다.

친구는 헤이즐넛을 원샷하듯 들이키고는 탑승구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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