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니라 메이드 인 차이니스 만두다.
어제 수업 후 클래스 메이트인 진량이 자기 차 안으로 이끌고 가더니 쇼핑백에서 무언가를 꺼내준다.
자기가 만든 고향 음식이라며 뚜껑을 여는데 바로 위 만두다.
아, 만두네, 하자 그녀는 자오쯔 인지 바오쯔인지 그렇게 발음을 한다.
한국에서도 만들어 먹으며 정초에 떡국에 넣어서 먹는다 하니 중국에서도 설날 먹는 음식이란다.
속에 뭐 넣었니? 묻자 소는 두부와 쇠고기, 채소를 볶아 버무려 넣었다고 한다.
찐만두라 그냥 먹을 수 있다고 하는데 얼른 하나 집어서 시식을 할 수 없는 '까닭'이 있었다.
집에 가서 손 씻고 소스 찍어 먹을게, 미시즈 진양 고마워~하고는 슬그머니 화제를 바꿨다.
차이나타운에 가면 난 꼭 딤섬을 먹는다고 했더니 그녀는 딤섬? 되묻는다.
내 발음이 후진가 싶어 다시 딤. 섬~해도 눈만 깜박대며 머리를 젓는다.
그렇겠지, 다민족국가인 데다 땅덩이가 워낙 커 만다린어와 광둥어처럼 말조차 다르고 음식이며 문화가 지방마다 서로 다른 중국 아닌가.
홍콩 식인 딤섬이라 대륙 동북부 뤼순 감옥이 있는 대련 출신인 그녀는 딤섬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다시 화제를 바꾸어 처음에 만두 만든 사람이 누구게?
당연 모른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제갈량이야, 하자 이번에도 역시 갸우뚱거리며 제갈량? 한다.
공자는 쿵쯔요 모택동이 마오쩌둥이고 등소평이 덩샤오핑인 줄은 매스컴 덕에 주워 들었다.
하나 제갈량의 중국식 발음까지는 내 알 바 아니었으므로, 결국 삼국지 속 조자룡에 관운장이 등장하고 적벽대전 싸움터가 나오니 그제야 아~주거량, 한다.
삼국지 후반부에 제갈공명이 남만을 정벌하고 회군하던 중 노수란 강가에 닿았다.
때마침 엄청난 폭풍우를 만나 병졸은 물론이고 말과 수레까지 날려버리게 된다.
이때 현지 사정에 밝은 남만인 하나가 이르기를 전란으로 숱한 사람이 죽어 천신이 노한 것이니 사람의 머리를 바쳐 진노한 하늘을 달래야 한다고 아뢴다.
이에 공명은 또다시 인명을 희생시킬 수 없다며 대신 양고기로 만든 소를 밀가루 반죽으로 싸서 사람 머리 모양으로 빚어 제를 지낸다.
제갈량이 누군가, 지력(智力) 뛰어난 전략가인 그가 이처럼 신을 달래고자 만든 데서 유래한 만두라며 아는 체했다.
만두의 만은 기만(欺瞞)의 만에서 음을 따고, 두는 머리 頭를 차용하였다고 한다.
진량이 선물한 만두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냉동실에다 넣어두었다. 단식 중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쯤 전 우루과이 친구가 뷔페식당으로 나를 초대한 적이 있었다.
양식도 즐기지 않지만 뷔페 음식은 더구나 좋아하지 않으나 일부러 시간을 내 저녁을 사겠다는 호의를 마다할 수가 없어 둘이 만나 식사를 했다.
평소 음식을 아주 천천히 먹는 나와 달리 그녀의 식사 속도는 엄청 빨랐다.
보조를 맞추느라 대충 식사를 하고는 집에 돌아왔는데 삼십 분도 채 안돼 토악질이 났다. 급체였다.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사 먹는 대신 내 식대로 삼 일간 금식을 하며 야채죽으로 속을 다스려 겨우겨우 안정시켜 놨다.
엊그제 화요일 교우분이 저녁식사하러 가자고 전화가 왔다.
하필이면 다시 그 식당엘 가게 됐으나 체하고 난지 한참 지났으니 내심 괜찮겠지 싶어 카레를 듬뿍 친 즉석 철판볶음 요리를 앞에 두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젓가락질에서 해물이 물컹 씹히는 순간 탁 걸리며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이후 비위가 뒤집혀 더 이상 음식이 목을 넘어가지 않았다.
마구 먹어대는 거식증이 아닌,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이란 게 바로 이런 거겠구나 비로소 혜량이 됐다.
음식을 입에 넣으면 적당히 저작 작용을 한 뒤 목을 통과해 위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극히 자연스러워, 여태껏 한 번도 입안의 음식을 삼키기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샐러드도 과일도 부드러운 케이크도, 도통 아무것도 더는 먹을 수가 없었다.
속이 더부룩하니 메스꺼워 미국살이 15년 만에 스스로 콜라를 시켜 단숨에 한 컵 들이켜기도 첨이다.
그날 이후 다시 속을 다스리느라 단식에 들어갔는데 사흘째인 금요일 진량이 만두를 만들어왔던 것.
보약을 지으러 한의원에 가면 진맥 후 위기능이 좋지 않군요, 란 말을 듣곤 했다.
그 소리를 들을 적마다, 지금껏 살며 소화제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고 단번에 가벼이 무질러버렸다.
소음인이니 체질상 비위가 약하게는 태어났으나 그간 과식은 물론 급하게 밥을 먹는 편도 아닌 데다 이상한 음식, 이를테면 물회나 번데기며 멍게 족발처럼 외견상 기이한 건 아예 입에 대질 않았기에 탈이 날 여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식사 때만은 충청인답게 음식을 느릿느릿 먹고 워낙 매매 씹기 때문에 체할 일이 없었던 셈이었으리라.
뷔페집에 다녀온 다음부터 위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내동 속이 벙벙하니 거북한 게 시장기도 도통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위장이 덧들리며 식욕은 완전 저하되고 장활동이 멈춰버린 감마저 들었다.
그 바람에 시작한 금식이라 기운 딸려 심신이 약해진 탓인지, 여기서 왜 이러고 사나? 불현듯 회의감과 자괴심이 엄습했다.
항상 씩씩하게 지내왔는데 몸이 좀 불편해지자 그만 고향 생각이 나며 당장 의기소침에 빠진 것.
유년기, 작은 숙모 집에 놀러 갔다가도 해지고 어스름 무렵만 되면 괜스레 집 생각이 나 눈물 떨구었듯이.
이건 수구초심하고도 다르게 겨울철의 스산한 계절적 요인도 작용했겠지만 아마도 순전히 심기가 허해진 까닭이리라.
원체 아프지 않고 항상 건강체로 살아서인가, 별스럽지 않은 쳇기 가지고도 이리 의지가 꺾이는 데다 풀이 죽어 한국으로 돌아갈까라니....
하긴 언제든 돌아가 안길 모국이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고, 지금까지 이만큼 강단진 체력 허락해 주심에도 감사 또 감사다.
성정이 별나서인지 커피는 30대 초부터 입에 댄 적도 없는 데다 미국 와서 지금까지 소다수나 햄버거를 먹은 건 손가락 꼽을 정도로 부득이한
경우뿐이었다.
양식을 즐기기는커녕 도대체 입에 맞기나 하나, 영어가 잘 돼 이웃들과 자재로이 소통이 되길 하나, 사통팔발 어디나 씽씽 돌아다닐 만큼 운전이
자유롭길 한가?
이런 사람이 여기서 왜 억지춘향 놀음을 하고 있는 건가 갑자기 어이없고 한심스런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아들은 이젠 부모님들 나이가 있으니 그만 한국으로 돌아와 살라고 연신 권한다.
그때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마찬가지, 한국도 미국도 다 살만하며 여기는 특히 체면치레나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 스트레스 없이 편하고 좋다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으론 명분이 약하다.
실제 미국 땅에 꼭 머물러야 하는 이유와 빌미를 찾아봐도 똑 부러지게 들이댈 만한 것이 없어 그저 딸내미 혼자 두고 나갈 수 없다고 버팅기는 중이다.
음식에서 비롯된 역이민 타령, 애들도 아니고 몸 좀 약간 편치 않다 하여 다시 태평양을 건너고 싶다니? 2015
# 그 며칠 뒤 딸내미가 와서 알았는데 당시 겪은 소화장애, 위무력증, 쳇기, 무기력감이 그해 플루의 주 증상이었다고 한다. 보통 기침과 고열이 따르는 플루인데 그해 따라 공통적으로 그런 특이 증세를 보였다고, 엄마는 면역력이 좋아 스스로 플루를 잘 극복한 거라고 했다. 하긴 뭐든 혼자서도 잘해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