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로쇠나무와 때죽나무의 사랑

by 무량화


올빼미과에 속하는지라 아침 기상이 매우 늦다.

나이 들면 잠이 줄어든다는데 아직도 여덟 시간 수면은 취해야 이튿날 가뿐하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보니 하늘이 새파랗게 개였다.


남도 향일암 쪽이라며 아들이 보낸 야생화 사진을 접하자 곧장 바람꽃을 보러 가기로 작정했다.


넷이 팀을 이뤄 주말이면 설악에서 한라까지 남녘 산 오만 데 쏘다니는데 그중 사진 하는 친구가 있어 올핸 탁상달력도 만들었다.


자칭 빽사모, 백패킹을 사랑하는 모임답게 산행사진으로 꾸민 달력이다.


언젠가 그 친구가 찍은 으름덩굴 사진을 보내줬다.

휘늘어진 곡선 멋들어져 감탄부호를 찍어 보낸 적이 있다.

동강할미꽃 보러 가서는 친구들 엉덩이만 폰으로 찍었다더니 이번엔 바람꽃 제대로 담아냈다.


'아구구 이뻐라, 변산바람꽃!

맞다. 친구들 뒤태만 찍고 찍히는 저 순간이 바로 열락의 순간!'

곧장 요렇게 카톡에다 찍어 보냈다.

그런데 왜 이리 가슴이 콩닥거리지?

입가에 스며드는 이 미소는 또 뭐지?

사뭇 흐뭇해서이리라.



반도 남쪽에 꽃이 피었다면 제주에도 피었음직은 하나 지난주 생태숲에 갔을 땐 영 기척이 없었다.

무조건 내닫기 전에 먼저 한라생태숲 관리실로 전화를 걸어 바람꽃이 피었는가를 물었다.

전화를 받은 분이 글쎄요? 하더니 숲에 가서 확인해 보고 연락을 드리겠노라 했다.

삼십 분쯤 지나 야생화들이 핀 것 같다는 어정쩡한 답을 들었다.

거기까지 가려면 한 시간은 걸린다.

왕복 두 시간 거리다.

네 시까지는 귀가해야 하는데.


오후에 책임을 맡은 소임이 있으므로 좀 빡빡하나 서두르면 충분하겠다.

지난해 복수초와 바람꽃을 어느 장소에서 보았는지 입력돼 있기에 숲길 헤매지 않고도 쉽게 찾을 터.

도착하니 두시 반, 기대감과 급한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 요런 긴장감도 쫄깃해서 즐길만하다.

역할이 있고 목표치가 기다리는 삶, 할 일없이 마냥 퍼져지내는 것보다야 천만번 낫다.

하루 24시간을 무료감 느낄새 없이 활력있게 꽉 채워 살아간다는 건 정녕 축복이다.

일단 위치를 아니까 그쪽으로 쪼르르 내닫는다.

한라생태숲 숫모르 숲길의 유명한 연리목 아래 해마다 피는 얼음새꽃과 바람꽃.

잘 알다시피 연리목은 두 나무의 줄기가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나무다.

금실 좋아 이상적인 부부 사이를 칭하거나 남녀 간의 지극한 사랑을 상징한다 하여 이른바 '사랑나무'라 불린다.

보통 같은 수종끼리 연리목이 되는데 여긴 특이하게도 국경 허문 사랑나무 케이스겠다.

백 년 생 고로쇠나무와 때죽나무가 서로 뒤엉킨 채라 마치 한 나무처럼 보인다.

어떤 인연으로 생판 다른 뿌리인 고로쇠와 때죽나무가 결을 같이 해, 백 년 천년 하나로 살자 약속했을까.

지표에서 얼마간은 두 나무가 살을 섞다시피 한 덩어리로 엉켜있다가 양쪽으로 점차 벌어진 가지.

노구라서인지 아랫부분에 길쭉하니 땜질 자국도 보인다.

몸체에 이끼 두터이 껴있고 줄기 쇠약해졌지만 나무끼리 하나로 얼싸안은 모습 그래서 더 애틋하다.

연리목 주위에 꽝꽝나무 빙 둘러 심어놓았는데 고목 뿌리짬에 세복수초 갓 피기 시작했다.

이 꽃은 백설 사이로 샛노란 모습 드러나야 제격이나 비 흠뻑 내려 눈 녹은 뒤라 그런 정경까진 욕심이겠고.

작디작아 무릎걸음으로 찾아봐도 가녀린 줄기에 솜털 보송하게 난, 바람꽃이고 노루귀꽃도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도 고도가 9백 고지 거의 되는 한라산 중턱이라 육지 남도보다는 기온이 낮은 모양.


바람꽃을 만나려면 중순께 다시 와야겠군.

바람꽃 사진의 유혹따라 올라온 목적은 이루지 못했으나 얼음새꽃만도 어딘가.


다음을 기약하면 되므로 미련두지 않고 후다닥 차에 올랐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