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산 두류 골짜기마다 봄빛 가득한 날.
화개 십리벚꽃 터널을 지나 쌍계사로 향했다.
심한 황사로 산자락마다 안개 낀 듯 뿌옇게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랜만에 석 계단 층층 딛고 대웅전 앞 진감선사공탑비를 올려다보고 오려했다.
최치원 선생이 비문을 짓고 쓴 유려한 필치의 진감선사 비는 국보 제47호다.
아이들 어릴 적에 같이 와서 오석에 새겨진 고운의 필체를 보여줬더랬는데 그게 어언 사십 수년 전 옛일.
당나라에서 '토황소격문'으로 황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문장에다 신품으로 추앙받는 필체를 남긴 고운이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팔영루 지나 저 높이 의연스러운 대웅전 아래 비스듬 서있는 공탑비는 곳곳 금 가고 귀퉁이 이지러졌다.
진성여왕 원년에 세워진 국보 훼손이야 설마 빨치산 소행은 아닐 테고 임란 때 왜적의 만행일 시 분명하다.
가급적 세밀히 공탑비를 이모저모 사진에 담은 다음 시선 옮기니 그제사 철 늦은 홍매가 보이고 목탁소리 들려왔다.
우연스런 인연인지 그렇게 금강계단에서 행해지는 엄숙한 불사를 접하게 됐다.
한국 불교의 선지식으로 회자되는 고산당 대종사 초재일이라고 했다.
그분은 열반에 들기 전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겼다.
일생 동안 허깨비처럼 살아온 모든 일을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노라.
春來萬像生躍動(춘래만상생약동)
秋來收藏待次期(추래수장대차기)
我於一生幻人事(아어일생환인사)
今朝收攝歸故里(금조수섭귀고리)
봄이 오니 만상이 약동하고
가을이 오니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네
내 평생 인사(人事)가 꿈만 같은데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네.
1945년 입산 출가하여 1948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던 혜원 스님이다.
1998년 조계종 총무원장에 선출돼 분규로 혼란했던 종단 상황을 수습했다.
그 무렵 나는 불자로 부산불교방송 사보 편집을 맡고 있었다.
조계종단 내에 폭력이 난무, 유혈사태까지 벌어지며 한창 어수선하던 시절이었다.
범어사로 취재를 갔다가 주지 임명을 둘러싸고 양측 간에 난투극 격하게 벌어진 추태를 목격했다.
순식간에 절 입구는 싸움터로 변해 투석전을 벌이는 와중에 기왓장까지 날아왔다.
경건한 경내에서 이권다툼하는 조폭처럼 고함지르며 험하게 싸우는 모습을 접한 후 신앙에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마침 미국이주를 추진하던 때라 미국에 가면 개종을 하리라, 삼십 년 불자가 내심 작정 굳히게 된 계기다.
조계종이 극심한 내홍을 치르던 당시 총무원장에 선출된 고산스님이다.
쌍계사 주지로 부임해 대가람 중창 불사에 진력했던 분으로 종단이 어렵던 시기에 중임을 맡아 묵묵히 소임을 다했다.
선사이자 율사였던 고산 스님은 법랍 74년 세수 88세로 쌍계총림 방장실에서 입적하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지난 이날,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는 쌍계사에 올라갔고 때마침 초재일 법회 뒤 분향할 수가 있었던 것.
옷깃만 스쳐도 전생에 오백겁 인연의 귀결이라 했다.
드넓은 세상 억만 겁의 세월 속에 무수한 인과 연이 씨줄 날줄로 교직 되며 일체 현상이 생기는 법.
무릇, 이 세상 그 어떤 인연도 아무 의미 없이 만나지는 게 아니라 했는데....
우연이건 필연이건 모든 인연의 소중함에 대해 곰곰 묵상하며 절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