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박물관 추사전과 종낭꽃

by 무량화


한자이름이 야말리(野茉莉)이듯 만 리까지는 몰라도 향기 온데 널리 퍼지는 때죽나무꽃.


때죽나무의 영어 이름은 Snowbell이다.


제주도에서는 종낭(종나무)이라고 부른다.


때죽나무의 꽃말은 '겸손'이다.


하나같이 고개 숙인 꽃이라서이리라.


새하야니 귀엽기도 하거니와 겸손히 갸웃 숙인 자태와는 달리 심지는 아주 독하다.


'에고사포닌'이라는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때죽나무 풋열매를 찧어 냇물에 풀면 물고기가 기절해 둥둥 떠오를 정도다.


물고기가 '떼로 죽는다'는 의미에서 때죽나무가 됐다는 설도 있듯이.


동학 혁명 때 농민군은 화승총의 탄환이 부족해지자 화약에 짓이긴 때죽나무 열매를 섞어 썼다 한다.


에고사포닌은 또한 기름때를 제거하는 천연세제이기도 하다.


때죽나무 열매를 불린 물에 빨래하면 '때가 쭉 빠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때죽나무라고도.


때죽나무는 자정능력이 좋아서 공해에도 강하고 박토 마다하지 않기에 어디서나 잘 자란다.


특별한 자정능력 덕에 벌레가 안 꼬여 천연 해충제로도 쓰였다.


서두에서 그만 주객이 전도됐는데 실은 추사특별전을 보려고 박물관에 온 길이다.


국립제주박물관 뜨락에 종낭꽃 새하얗게 초롱 밝혀 들고 환대하는 바람에 잠시 곁길로.



차 타고 스쳐 지나가면서 거죽만 몇 차례 본 제주 박물관.

와봐야지 벼르긴 했어도 내심 아껴둔 보물이었다.

한라산 넘어 제주시까지 다녀오려면 통째로 하루 일정을 잡아야 한다.

제주시에 나가서 볼일을 본 다음 남은 시간에 다녀오기엔 번번이 짬이 빠듯했다.

일이 있어 나선 김에 들려오려고 일찍 서둔 덕에 여유 있게 박물관을 찾을 수 있었다.

<세한도, 다시 만난 추사와 제주> 특별전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서 미풍에도 기운차게 나부꼈다.

제주의 지형적 특성이 잘 드러난 곡선을 살린 건물은 늠름하면서도 오름과 초가지붕을 떠올리게 해 다정스러웠다.

뒤 배경이 된 사라봉과 자연스레 조화를 이룬, 제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연구·보존하며 도내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2001년 개관했다.


원당사지 고려시대 오층 석탑/선사시대 석관묘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국립박물관다운 중후함이 돋보이는 외관에다 드넓은 정원과 후원이 잘 가꿔져 있었다.

때마침 신록 깊어가는 오월, 귤꽃 향기롭게 퍼지고 새하얀 때죽나무 꽃 함빡 펴 수만 개 초롱 등을 내걸었다.

천천히 야외 전시물을 둘러본 뒤 전시실에 들었다.

마치 고급 진 갤러리에 들른 듯 실내 공간구성이 편안한 데다 조명 또한 고품격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출토유물과 텍스트에 따른 각종 패널·그래픽 사진·영상·디오라마 같은 첨단기법 적절히 활용해 큐레이팅된 전시 공간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입구에서 가까운 전시실.


국보 제180호 ‘김정희 필 세한도(歲寒圖)’ 등의 걸작들이 제주를 떠난 지 180여 년 만에 돌아와 그 진본을 제주에서 접할 수 있었다.


한겨울이 되어 날씨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쉬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의미의 그림.

바로 옆에 제자 이상직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낸 글이 딸린 시서화다.


세한도는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며 추사 김정희가 답례로 그려 준 그림이다.

귀양살이하는 어려운 처지가 된 자신을 잊지 않고 머나먼 중국을 다녀올 적마다 귀한 책들을 구하여 바다 건너까지 수차 보내준 이상적이다.


한 장의 간결한 그림 왼편으로 추사가 단 발문이 쓰여있으며 이를 보고 여러 학자와 문인들이 쓴 감상문이 잇따라 덧붙여지게 된다.


이상적은 이 그림을 받고 무척 감동하여 자신이 또다시 중국 가는 길에 세한도를 갖고 가 중국의 여러 학자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상적과 김정희와의 인간적인 의리에 감동하여 그림 끝부분에 자신들의 느낌을 덧붙여 나갔다.


발문을 단 한국인 세분은 누구나 익히 알고 존경하는 민족사학자 정인보 선생,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형 박사, 독립운동가 오세창 선생이었다.

이처럼 당대의 뛰어난 중국 학자 13인과 한국인 세분이 단 발문이 줄줄 달려있어서 그 길이가 무려 10m 넘는 길고 긴 두루마리 형태를 갖췄다.

특별전시실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라 대정 추사 전시관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국립제주박물관 첫 번째 전시실은 선사실.


제주 섬이 태어난 과정과 제주에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구석기시대 생활상을 유물 통해 보여주었다.

다음은 탐라실, 문화가 꽃 피기 시작한 탐라시대 모습과 주변 국가들과의 교류 양상은 고분 발굴 유물로 자세히 설명이 된다.

세 번째 전시실은 고려실로 제주도에서 활동했던 삼별초 군대가 사용한 철제갑옷·무기 등 대몽항쟁 흔적들이 유물로 출토되었다.

그 외에도 법화사 터에서 나온 중국제 청자 그릇이 전시돼 있다.

네 번째는 탐라순력도실, 숙종 28년에 만들어진 43면의 화첩인 탐라순력도가 자리 잡았다.

이 화첩을 통해 3백 년 전 제주의 생활상을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끝으로 조선실에는 조정에서 2~3년마다 파견하는 제주목사와 제주목 관아에 관한 여러 자료가 나와있다.

조선 조정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유배처이자 해류를 타고 표류한 외국인 통해 들어온 새로운 문화의 영향도 유물에서 가늠된다.

전시실 말미에 있는 기증실에는 제주와 관련된 유물을 여러 독지가가 기증한 문화재만 모아놓은 작은 코너가 별도로 있다.

유물의 수량은 적은 편이나 원체 넓은 공간이라 주마간산 식으로 대충 훑어본데 따른 미진함이 남는 곳.

따라서 언제든 다시 한번 더 방문해 찬찬히 감상할 기회를 갖도록 해야겠다.


선사시대 무문 토기/항파두리성터에서 발굴된 철갑옷 쪽

청자접시/ 목간첩

탐라제군사명 깃발/기와 막새

16세기 김정이 그린 <산초백두도>

추사 초상/이익태 초상과 제주목사로 임명될 때 받은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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