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화살꽃 그리고 인도

by 무량화


*오늘자 뉴스 관련 검색어 첫머리에 협죽도가 뜬다. 웬일? 내용인즉, 보험 사기를 벌인 사람이 살해를 위해 사용한 독초가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어서였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이 독초는 이미 온라인상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협죽도는 나무껍질과 뿌리, 잎 등에 네리안틴 성분이 있어 몸에 닿기만 해도 피부로 흡수돼 매우 위험하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협죽도는 독화살, 사약 등을 만드는 데 이용됐다. 실제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던 한 여학생이 젓가락으로 쓰려고 협죽도 나뭇가지를 잘라 김밥을 먹다가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다던가. 이 협죽도는 여름 내내 꽃이 피면서 대기오염을 정화시키는 효과가 크지만 맹독성을 지닌 식물이다. 따라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캘리포니아에선 도로 분리대로 심었고 해충 이동을 막고자 오렌지밭 생울타리로도 삼았던 나무다.


제주에 다시 와보니 1990년대 글과 달리 협죽도를 거의 제거한 상태. 대신 사려니숲이건 한라산 둘레길이건 곶자왈마다 흔한 맹독성 식물인 천남성에 대한 경고글이 곳곳에서 보인다. 초봄 새로 돋는 세 갈래 잎은 싱그럽고 탐스러우나 초여름 벌레잡이 통 같이 기묘한 생김새를 한 꽃을 피웠다가 가을엔 눈길 사로잡는 옥수수 모양의 새빨간 열매가 먹음직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천남성은 통째로 전부 다 맹독성을 지닌 식물, 장희빈이 마신 사약제였다고 알려져 있다.


제주 산간지역을 여행시 주의해야 할 천남성은 맹독성 식물




독화살꽃 그리고 인도/1996



작열하는 태양이 대지를 후끈 달구는 한여름.


그 꽃은 제철을 맞는다.

담 너머로 무성한 잎새 사이사이 소담히 피어난 희고 붉은 꽃.


꽃 무게에 지질려 숫제 가지가 휘늘어졌다.

대부분 홑꽃보다 겹꽃을 선호해 요새는 거의 다 꽃 무더기가 탐스럽다.

흐드러진 모양새에다 한낮의 열기까지 겹쳐, 보는 이로 하여금 숱 많은 머리처럼 탁한 느낌을 들게도 하는 꽃 유선화.



유선화 외에도 협죽도라 알려진 식물이다.

유엽도라고도 하고 유도화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생김새가 버들잎 닮은 유선형인 잎에서 연유함인가.

아무튼 잎새가 꽤 두터운 상록수로 여름철이면 꽃이 자못 볼 만하다.

발그레한 석류가 아기 주먹만 할 즈음, 곁에 선 유선화는 전성기를 맞는다.



유선화의 고향은 인도다.

아열대산 답게 온도만 맞으면 별다른 수고를 보태지 않아도 쑥쑥 자라준다.

여러 갈래의 큰 줄기가 한 포기인 양 어우러져
얼핏 보기에 덩치 우람한 나무 같기도 한 유선화.

하긴, 높이 5미터짜리도 있다 하니 정원수는 물론 가로수로 쓰임직하다.



유선화의 미덕은 아무래도 뛰어난 성장률과 왕성한 번식력에서 찾을 수 있겠다.

토질 별로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까탈 없이 자라는 데다 꺾꽂이, 휘묻이도 잘 되는 화목이다.

실한 가지 골라 엇비스듬하게 자른 다음 물 담긴 병에 꽂아만 둬도 꺾꽂이에 성공한다.

콩나물 잔뿌리 같은 하얀 실뿌리가 며칠 후면 내리기 때문이다.

구부리기 적당한 줄기를 휘어서 땅에 묻어 두어도 거기에서 새 뿌리가 난다.

그들을 알맞은 터에 옮겨 준 뒤 약간의 관리만 하면 무리 없이 활착이 돼 분가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성정이 술술하다보니 따뜻한 지역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는 유선화.

그와 나는 오십 년 지기(知己)다.

한량인 아버지가 화훼에 흥미를 가진 덕에 일찍부터 나는 희귀 식물들과 만날 수 있었다.

중학 시절, 우리 집은 근동에 꽃집으로 알려질 만큼 여러 종류의 색다른 꽃나무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나팔꽃, 채송화, 분꽃에 외래종이라야 달리아, 칸나가 고작이던 당시.

히비스커스며 아스파라거스와 베고니아에 관엽식물인 몬스테라. 소철 등 크고 작은 화분이 즐비했다.

제일 먼저 들인 식물은 냄새 희한한 제라늄, 이어서 속속 군자란 석란 등속에 낀 수국이며 유선화도 그중의 하나였다.

꽃이나 여타 식물 가꾸는 취미가 아버지와 비슷했던 나.

아마릴리스 구근은 분주(分株) 시키고 유선화나 수국은 삽목 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쏠쏠한 재미도 그때 누렸다.



유선화와 나의 관계는 언제부터인가 뜨악해지기 시작했다.

인도 풍습을 어느 책에서 우연히 읽은 다음의 일이다.

유선화 꽃으로 시신을 덮어 장례를 치른다는 내용의 글을 본 후 어쩐지 께름한 기분이 들었던 까닭이다.

예로부터 독화살을 만들고 사약 원료로 쓰일 정도의 맹독성을 지닌 유선화라 살균 작용도 한다고 여겼던가.

아무튼 죽음이라는 어두운 명제가 어른거려 기피하게 된 유선화와 다시 해후한 것은 대학 다닐 때 제주도에 가서다.

시가지 도처에 열을 지어 피어난 그 꽃의 장관 앞에서 포즈를 취할 즈음, 인도 풍습 따위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이후 남쪽 지방인 부산에 정착한 뒤로는 더 자주 접해 온 유선화.



몇 년 전 유럽 여행 중에도 의외로 유선화를 만났다.

아비뇽의 가로에서, 로마의 유적지에서. 때는 마침 여름. 한창 꽃이 만발해 있었다.

반가웠다.

마치 옛 친구와 우연히 재회한 양 감회마저 벅차올랐다.

어느 해 캘리포니아를 지나다 중앙 분리대 역할을 하는 무성히 검푸른 나무가 유선화라 감탄했던 기억도 난다.

강한 독성을 지녔음에 감히 병충해도 근접 못하고 다른 식물이 여간해서 얼씬댈 수 없음은 물론 배기가스쯤 끄덕 않는다는 유선화.

이처럼 식물치고는 꽤나 암팡진 생명체다.

그 끈덕짐으로 원산지 인도로부터 유럽이며 아메리카, 동쪽 끝 우리나라까지 널리 퍼져 살고 있는 유선화였다.




류시화의 시를 읽다 보니, 갠지스 강가에서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며 꽃을 흩뿌리는 장면이 나왔다.

그 꽃이 유선화일 것 같았다.


불현듯 인도에 가보고 싶어졌다.

직접 가서 갠지스 강변에 서보고 싶었다.

근래 들어 무슨 유행처럼 인도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더러는 몇 해씩 지내다 오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인도 탐방이 썩 내키지 않았다.

하긴 인도에 대해서 아는 바도 별로 없긴 하다.

영화 『시티 어브 조이』를 통해 들여다본 인도는 비참할 정도의 빈곤이 만연한 곳이었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여유롭고 평화스러웠다.

혼이 맑으면 어떤 경우라도 충만한 기쁨으로 살 수 있는 것인지, 그 경지는 거의 불가해한 영역이었다.

그 외에 생각나는 건 겨우 타지마할과 시성 타고르, 위대한 넋 마하트마 간디, 그리고 요가와 명상이 떠오른다.



어쩐지 고결한 영혼의 투명함과 상면할 수 있을 것 같은 나라.

현실보다 영생을, 육신보다 정신세계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들이 사는 신성한 나라.

불교 성지로 불자라면 당연히 관심이 있을 법한데 우선 나는 자신이 없었다.

그 냄새가 원인이다. 단지 그 냄새를 감당하기 어려워서이다.

서울발 런던행 에어 프랑스의 중간 경유지인 뉴델리 공항에서의 역겨웠던 인상은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쉬 잊히지 않는다.

단지 두어 시간 머물렀을 뿐이지만 온데 배어있는 인도 특유의 묘한 냄새에 단단히 질려 버린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약한 내 비위에 있긴 하다.

어느 민족이나 나름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지니고 산다.

우리는 한 끼도 김치 없이는 못 견디지만 대개의 외국인은 그 냄새에 코를 싸쥔다.

오랜 관습으로 굳은 식생활 형태의 차이를 인정은 하나, 정말이지 인도의 그 야릇한 냄새와 북경요리에 쓰이는 향채의 희한한 냄새는 강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공항 측에서 제공한 열대 과일이 그려진 쿠키는 무작정 달기만 했으며.

산뜻한 맛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던 음료수의 미적지근함이라니.

국제공항이건만 시설 면은 차치하고라도 관리가 거의 수준 이하라 여겨졌던 것은 화장실에서의 일 때문이다.

청소원인 듯 유니폼을 입은 맨발의 여자가 두루마리 휴지를 떼 주며 손을 내민다.

불필요한 친절도 반갑잖은데 거기다 노골적인 팁 요구가 부담스럽다.

그뿐인가. 재빨리 귀에 대고 코카인 코카인, 은근하고도 능숙한 유혹이다.

노소 가림 없이 상대가 누구든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상투적인 수법 같아서다.

요즘은 개선됐을까, 그게 또 궁금하다.



어느덧 여름은 가고 있는데, 유선화 꽃잎은 칙칙하게 시들어 하나씩 지고 있는데….

행여 꽃의 넋이 제 고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폄하한다고 화를 내지나 않을까.

하긴 세상사 어디를 막론하고 명과 암은 공존하기 마련.

내가 미처 모르는 밝은 면을 찾아 언젠가 나도 인도 땅을 밟아 보고 싶다.

삶의 근원, 삶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구도자 혹은 순례자의 길 떠남은 아닐지라도 어떠하겠는가.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자유’를 뜻한다고 한 라즈니쉬의 자취만으로도 충분히 가보고 싶은 곳.

아니, 갠지스 강바람에 흩날리는 유선화 꽃 이파리를 보기 위해서라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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